고난과 위로

어둠의 땅에서 오는 위안: 하나님의 날개 아래 쉬어가다

사신들이 구스의 강들 너머로 사라질 때에도, 고난 받는 자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그 산에서 평안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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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이사야 18:1-7

아, 날개의 짙은 그늘 아래 land, 구시 강 저편이로다! 신속한 사자들아, 가서 멀고도 먼 나라로, 내몰리고 쫓겨난 백성에게로— 혀 짧은 말을 지껄이는 나라로— 그 땅이 강들에 의해 갈라진 곳에 이르는 자에게로 가라! 그들이 물 위의 갈대 배로 사신들을 바다를 건너 보내도다! [이르라:] “세상에 사는 모든 자와 땅을 채운 자여, 산들에 기[旗]가 세워지면 주목하라! 숫양의 나팔이 울리거든 귀를 기울이라!” 이는 나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는 거처에 안주하여 평온하고 확신하니 [의지하리라] (욥기 6:19). 관련 명사 ‘맙바트’는 이사야 20:5, 6에서도 비슷한 뜻으로 쓰인다—더위를 먹인 후, 수확할 때의 더위 속의 비구름 같이.” 수확 전에, 순이 나온 뒤에, 꽃이 굳어져 열매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전지가위로 잔가지를 자르시며 늘어진 가지들을 베시리로다. 그것들이 다 산의 솔개와 땅의 짐승들에게 버려지리니, 솔개가 그것들 위에서 여름을 지내고 땅의 모든 짐승들이 그것들 위에서 겨울을 지내리라. 그때에, [공물이] 만군의 하나님의께 바쳐지리니, 멀고 먼 백성에게서, 내몰리고 쫓겨난 백성에게서— 혀 짧은 말을 지껄이는 나라에서, 그 땅이 강들에 의해 갈라진 곳에서—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 시온 산에서.

이사야 18:1-7은 '날개의 짙은 그늘 아래' 있는 땅의 엄숙한 모습으로 시작하여, 추수에 대한 경고와 가지치는 말씀을 거쳐, 마지막에는 만군의 주께서 거하시는 시온 산에서 그에게 조공이 바쳐지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장은 먼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하나님의 신적 안식에 대한 고요한 확신을 함께 모아, 고난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위로 안에 자리 잡게 합니다.

Narration

쿠시와 산들, 그리고 시온 산

이사야 18장은 먼 나라—"구스의 강들 저편에 있는"—을 다루며, 그 나라의 사절들이 나일강 같은 물줄기 위의 파피루스 배를 미끄러지듯 다닙니다. 선지자는 산 위의 깃발과 양피리 신호를 지키라고 소집받습니다. 땅의 모든 나라들이 주목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정학적 긴장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놀라울 정도로 평온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거하시는 곳에서 평안하고 안정하며, 싹이 돋아나는 뜨거운 열기처럼, 추수하는 때 더위 속의 비구름처럼 거하노라." 이 장은 두 가지 흐름을 아우릅니다—가지치기의 즉 판결할리움에 대한 경금과(잔가지), 이것은 솔개와 들짐승에게 남겨진 사체입니다), 그리고 먼 이 동일한 백성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 시온 산"으로 조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마무리 속 약속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장은 이사야가 짊어진 열방에 대한 심판(13–23장)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구스)와 이집트는 히스기야에게 아첨을 받았으나 앗수르에 대항한 믿을 수 없는 동맹군으로서 이사야의 책망을 받았습니다(잠시, 이사야 20장 참조). "날갯짓의 깊은 무거운 그늘에 있는"이라는 땅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는 그늘(시편 17:8; 36:7)과 죽음과 망명의 불길한 그늘(시편 23:4)을 모두 떠올리게 합니다. 이 그늘 속으로 하나님 스스로 내려오십니다—피난민이 아니라 그것 위에서 "안식하시는" 분으로. 제시되는 위안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안식하시며, 지키시며, 먼 자들을 시온으로 데려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오늘날 이 장을 읽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그 이미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사자들과 깃발과 나팔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추수는 실재하고 가지치기도 실재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 여호와는 평온히 앉히 계십니다. 그는 열방의 떠들썩함에 당황하지 않으시며, 약한 자의 부르짖음에 귀 막히시지도 않습니다. 이 장의 지리적 흐름은 구스의 강들에서 시온 산으로—그늘의 장소에서 이름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시공간: 파피루스 배, 언덕 위 신호, 그리고 이름의 산

첫 성전 시대에 배경이 잡힌 이 이야기는 예루살렘의 다윗 왕국과 니느웨의 앗수르 배경에 걸쳐 펼쳐지며, 이방의 지배 아래서 고난에 직면한 망명자들과 신실한 남은 자들이 씨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의미: 고난과 하나님의 안식

이사야 18장은 고난과 위안을 하나의 직물로 짜 넣는다. 고난은 여기서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첫 절의 존재론적 그림자, "날개 그늘 깊은 땅" — 이것은 보호하는 그늘일 수도 있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일 수도 있다; (2) 산 위 깃발과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나팔의 정치적 불안, 이익을 위해 서로 뒤엉키는 열방들; (3) 가지를 치고 잔가지를 찍어내어 사체들을 솔개와 들짐승에게 버려두는 추수 심판의 농업적 혹독함. 이러한 어떤 이미지도 부드럽게 표현되지 않는다. 이사야는 그림자를 부르고, 신호를 부르며, 포도즙 틀의 도살을 부른다. 그러나 위안도 마찬가지로 구체적이고 마찬가지로 낯설다. 하나님은 그림자를 제거하시거나 나팔을 잠잠하게 하시거나 추수를 멈추심으로써 위안하지 않으신다. 그는 쉬심으로써 위안하신다. "내가 나의 거하는 곳에서 고요히 안정된 가운데 쉬리라." 이 동사는 하나님 앞에서 still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이다(시 46:10 참조). 하나님의 안식이란 부동이 아니라 이미 결정을 정하신 분의 정해진 자세이다. 그는 교만한 싹을 시들게 하는 작열하는 더위와 같은 분이시며 의로운 뿌리를 적시는 비구름과 같은 분이시니 — 두 가지가 동시에, 그리고 바로 그 적당한 때에. 두 개의 위안의 그림이 장을 마무리한다. 첫째는 때에 관한 그림이다: "추수 전에, 그러나 싹이 나온 후에…" 하나님은 너무 일찍도 너무 늦게도 행하시지 않는다. 잘라야 할 것을 자르시고 보존해야 할 것을 보존하신다. 둘째는 목적지에 관한 그림이다: 멀리서 떠들어대며 시내를 사이에 둔 백성 — "내몰려 나가 먼 곳으로" — 가 언젠가 시온 산에 조공을 가져올 것이다. 가장 이질적이고 가장 멀고 가장 알아들을 수 없는 바로 그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고난이 마지막 말이 아니다. 조공이 마지막 말이다. 그리고 조공은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경외에서 나온다. 기독교적 읽기에서 날개 그늘의 모티프는 예루살렘을 두고 우시는 그리스도로 흘러간다(누가복음 13:34, "내가 너희 자녀를 닭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얼마나 자주 모으고자 하였던고"). 시온 산 목적지는 히브리서 12:22의 하늘 시온으로 흘러가는데, 거기서 무수한 백성들이 모든 이름 위에 계신 이름 주위에 모인다. 고난은 실재한다. 하나님의 안식이 더욱 실재한다.

적용: 뿔들이 울리는 가운데 안식하는 법을 배우다

1) 행동의 규율 이전에 주의의 규율을 배우라. 이사야의 첫 명령은 '편지를 보내라'도 '군대를 동원하라'도 아니다. '산언덕에 기가 세워지면 살피라! 나팔 소리 나면 들으라!'이다. 당신의 날의 경보에 답하기 전에 그것을 명명하라. 대부분의 고통은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공황에 의해 깊어진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광란의 스크롤이 아니라 경계하는 고요함으로 부름받았다. 2) 죽음의 그늘과 날개 그늘을 구별하라. 같은 히브리어 관용구가 둘 다 의미할 수 있다(시 23:4; 시 17:8 참조). 고난은 이 구별의 문이다. 깊은 그늘에 앉아 있을 때, 물어라: 이것이 어미 새처럼 나를 덮고 계신 여호와인가, 차가운 죽음의 그늘인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보통 비구름과 작열하는 더위를 찾아보는 것이다— 같은 들에서 동시에 심판하시고 새로 고치시는 하나님의 이중 위로. 3) '파피루스 배'에 대한 신뢰를 그만두라. 이 장의 사자들은 기술적으로 진보되어 있다—강 위의 파피루스 배들—그러나 그들의 메시지는 언약의 귀에는 횡설수설이다. 현대의 대응물들—생명공학, 금융, 군사 동맹, 바이러스적 플랫폼들—은 빠르고 인상적이지만 영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의 소망을 배가 항해하는 곳이 아니라 여호와 만군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에 닻을 내려라. 4) 당신의 공물을 지금 가져오라, 나중이 아니라. 장은 한때 '내쫓기고 멀리 밀려난'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 공물이 가져와지는 것으로 끝난다. 공물은 하늘까지 미뤄지지 않는다. 지금—고난의 장소에서, 예배와 값진 순종과 중보의 형태로—가져와진다. 하나님의 위로는 제물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제물을 시온을 향해 다시 방향 잡는 것이다. 5) 하나님이 그의 거하심 안에서 쉬시는 것처럼 한 시간을 오늘 쉬라. 잠이 아니다. 마비도 아니다. 당신이 '주여, 당신은 고요하시고 확신에 차 계십니다. 저는 그렇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제 불안함을 제 공물로 받으시고 당신의 안식을 주소서'라고 말하는 의도적 고요함.

되새김

어떤 고난은 시끄럽습니다. 언덕 위의 나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문을 통과해 달리는 전령. 그리고 어떤 고난은 고요합니다. 땅을 덮고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 날개의 짙은 그림자. 이사야 18장은 이 둘을 동시에 품고 있으며, 그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쉬신다고 선포합니다. 나팔이 울리는 가운데 쉬시는 것은 나팔의 부인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팔 소리를 듣는 귀를 지으신 분이 그 나팔 소리 위의 고요하고 작은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도 함께 지으셨다는 고백입니다. 배 안의 제자들이 이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바람 소리를 듣고 주님을 깨웠으며, 주님께서는 같은 숨결로 바람과 그들의 작은 믿음 모두를 꾸짖으셨습니다. 오늘 당신의 땅이 날개의 짙은 그림자 아래에 있다면, 담대히 하십시오. 그 그림자는 장의 끝이 아닙니다. 장은 시온에서 끝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 먼 곳이 더 이상 먼 곳이 아닌 곳, 알아들을 수 없는 혀의 재잘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경배의 공물이 되는 곳에서. 고난은 복도입니다. 위로 그 끝에 있는 방입니다. 천천히 걸으십시오. 쉬시는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시며, 늦지도 않으십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이사야 18장이 '날개의 깊고 짙은 그늘진 땅'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이는 좋은 징조인가요 나쁜 징조인가요?

히브리어 관용어 '날개 그늘'(셀 크나파이므)은 의도적으로 양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시편 17:8)을 뜻할 수도 있고, 죽음과 이방 세력의 차가운 그늘을 의미할 수도 있다(시편 23:4). 이사야는 이 양쪽 의미를 모두 살아 있게 유지하여, 독자가 그 땅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 쉬고 있는지 아니면 더 어두운 그늘 아래에 놓여 있는지를 즉시 분별할 수 없도록 한다.

하나님이 "내 처소에 안주하여 평안하고 담대하리라"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이 정말로 활동하지 않으신다는 뜻인가?

하나님의 '안식'은 무위(無爲)가 아니라, 이미 그 결과를 정하셨기에 흔들림 없이 자리잡은 평안함이다. 그는 오만한 싹을 시들게 하는 작열하는 열기와도 같으며, 추수하는 밭을 적시는 비구름과도 같다—이 두 가지를 동시에 행하신다. 하나님은 당황하여 결정하시지 않는다; 영원하고 견고한 뜻에서 다스리신다.

먼저 먼 곳의 백성이 시온 산에 조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은 성취되는가?

구약의 전망에서, 쿠시인들은 실제로 예루살렘에 왔습니다(사 45:14; 렘 38:7; 행 8:27-40, 에티오피아 내시와 비교하십시오). 더 풍성한 신약의 전망에서, 히브리서 12:22-24는 아무리 멀리 있는 모든 백성들이 하늘의 시온 산에 모이는 모습을 보여주며—이사야 18:7의 땅 끝에서부터 오는 예배를 성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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