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어둠이 빛을 가릴 때 — 이사야 59장과 고난 속의 위로

죄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지만, 그의 팔은 구원하기에 결코 너무 짧지 않습니다. 그의 힘은 그를 바라보는 모든 자를 구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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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이사야 59:1-20

아니다, 하나님의 팔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시거나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의 장벽이 되었으니, 너희의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돌려 듣기를 거부하셨다. 너희의 손은 죄악으로 더럽혀졌고 너희의 손가락은 악으로污되었으며, 너희의 입술은 거짓을 말하고 너희의 혀는 사악함을 내뱉는다. 아무도 공의로 소송하거나 정직하게 변론하지 않으며, 헛됨을 의지하고 거짓을 말하며, 죄를 잉태하고 악을 출산한다. 그들은 살무사의 알을 품고 거미의 그물을 짜며,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것이 깨지면 독사가 나온다. 그들의 그물은 의복이 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만든 것은 옷으로 쓰일 수 없다. 그들의 행위는 해악의 행위요, 그들의 손은 무법한 일을 행하고, 그들의 발은 악을 쫓아 달려가며, 무죄자의 피를 흘리는 데에 급급하다. 그들의 계획은 해악의 계획이요, 그들의 길에는 파괴와 상해가 있다. 그들은 정직한 길을 돌아보지 않으며, 그들의 경로에는 정의가 없다. 그들은 자기 길을 굽게 하니, 그 안을 걷는 자는 정직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서 정당한 보상이 멀고, 우리에게 심판이 이르지 않는다. 우리가 빛을 바랐으나 보라! 어둠이요, 작은 빛을 바랐으나 황혼 속에서 걸어야 한다. 우리는 눈 먼 자처럼 벽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더듬는다. 우리는 한낮에 어둠에 있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강건한 자들 사이에서 죽은 자와 같다. 우리 모두는 곰처럼 으르렁거리고 비둘기처럼 신음한다. 우리가 보상을 바라나 얻는 것이 없고, 승리를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다. 우리의 많은 죄가 주 앞에 있사오니, 우리의 죄가 우리를 거슬러 증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알고, 우리의 죄악을 잘 아나이다. 반역, 하나님께 대한 불신, 하나님께로부터의 돌아섬, 사기와 배신의 꾀, 거짓의 잉태와 그것을 목으로 말함이라. 이로써 정직한 보상이 물러가고 정의는 멀리 머무르나니, 이는 정직함이 광장에서 걸려 넘어지고 의로움이 들어가지 못함이라. 정직함이 없으니, 악에서 돌아서는 자는 약탈을 당하도다. 하나님이 보시고 정의가 없음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다른 이가 없음을 보시고, 오래 살펴보시되 중재하는 자가 없으셨다. 그때 하나님의 자기 팔이 승리를 얻으시고, 승리하는 오른손이 도움을 주셨다. 하나님은 승리를 갑옷처럼 입으셨고, 승리의 투구를 쓰셨으며, 보복의 옷을 입으시고, 열정을 옷처럼 감싸셨다. 그들의 행위대로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분노가 갚아지며, 하나님의 대적들에게 보복이 이루어지며, 먼 땅들에게도 보복이 이루어지리라. 서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며, 동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외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에른뇌의 바람이 몰아가는 에워싸인 시내물 같이 오실 것이요, 야곱에서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향해 시온의 구속자로 오시리라—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것이 그들과의 나의 언약이 될 것이다: 너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내가 네 입에 놓은 말씀이 네 입에서, 네 자손의 입에서, 네 손자녀의 입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사야 59:1–20은 언약의 백성이 자기들의 불의로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담을 쌓았음을 한 선지자가 애통해하는 글입니다. 이스라엘이 "우리가 소경처럼 벽을 더듬는다"고 고백할 때에도, 이 본문은 방향을 선회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재결의 부재를 보시어, 의로써 흉배를 삼고 구원의 투구를 쓰시고, 중보하러 오실 분 위에 그 의를 갖추시려 하십니다.

Narration

맥락

이사야 59장은 제이이사야 후기 사역의 이른바 ‘종의 노래’ 주기 중 세 번째 악장으로서, 바빌론 포로기의 트라우마 이후 유다 공동체에 설교된 말씀이다. 선지자는 폐허의 상처가 아직 남은 도시, 아직 재건되지 않은 성전, 그리고 부패와 뇌물과 살육이 일상화된 사회로 돌아온 포로 후 회중에 호소한다. 지치고 환멸에 빠린 이 백성에게 이사야는 오랫동안 약속된 구속이 신의 무력함으로 지연되지 않을 것을 선포한다. 장벽은 전적으로 인간 편에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 죄악 안에 있다(2절). 이어서 이 장은 인간의 불의(3–8절)와 신의 의로움(15b–17절) 사이의 지속되는 대조를 전개하며, 구속을 갑옷으로, 열정을 외투로 삼아 스스로 무장하는 전사-메시아의 환상으로 절정에 이른다(16–17절). 1세기 유대인 독자들에게 이 본문은 속죄일에 이사야 53장과 함께 읽혔으며, 고난받는 백성의 고통을 그들의 슬픔을 담당하실 한 분의 위로로써 조망했다. 초대 교부들—특히 유스티노 순교자의 ‘트립톤과의 대화’와 크리소스토모스의 ‘이사야에 관한 강해’에서—무장하는 이 형상을 그리스도, 즉 잃어버린 아담의 것을 회복하실 둘째 아담의 유형적 예표로 해석했다. 따라서 ‘고난과 위로’ 주제는 추상적이지 않다. 이사야 59장은 인간의 의가 실패할 때 하나님의 의가 겸손한 자를 옹호하기 위해 역사에 개입하신다는 확신 위에 기독교적 위로를 세운다.

시공간 배경

바벨론 포로기 동안 예루살렘 백성과 다윗 왕조는 망명의 고통을 겪었으나, 하나님의 언약 위로가 그들의 괴로움 가운데서도 그들을 붙들어 주셨다.

의미

히브리어 동사 '분리하다'(히브리어 어근 b-d-l)는 2절에서 '분리된'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창세기 1:4에서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신 행위를 묘사한 바로 그 단어이다. 이사야는 이 창조 언어를 뒤집는다. 하나님이 분리하시는 대신, 백성이 그들의 죄를 통해 분리한 것이다. '장벽'(히브리어 m-b-d, '분리')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벽이 아니라 공동체가 자기 손으로 파서 만든 해자이다. 그러나 이 장의 신학은 듣는 자를 절망 속에 방치하지 않는다. 9–15a절은 정직한 애가로서, 고통받는 성도들이 자신의 고통을 부를 수 있는 모범을 보인다. 15b–20절은 신적 주도권이다. 하나님은 '보시며'(히브리어 ra'ah), '심히 기뻐하지 아니하시니'(히브리어 ra' ra')—이는 부정의를 향한 도덕적 분노를 나타내는 이 단어의 시적 언어유희이다. 그런 다음 놀랍게도 하나님은 '중재할 자가 없음을 기이하게 여기시며'(16절), 친히 그 팔로 구속을 베푸신다. 이 장의 구조적 정점은 신적 전사의 의복이다. 그는 의를 갑옷(히브리어 shiryah, 레위기 8:7–9에서 대제사장의 세마포 제의에도 사용되는 단어)으로, 구속을 투구로 머리에, 보복의 의복으로 몸을 입으시며, 열심을 겉옷으로 삼으신다(17절). 갑옷의 모든 조각은 하나님의 속성이시며, 그의 백성의 구속을 위해 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위안은 고난의 제거가 아니라, 고난이 하나님의 구속 의지와 우리를 분리하지 않는다는 계시이다. 인간의 중보자가 실패하는 곳에서 하나님 친히 그 틈에 서신다. 신약 저자들은 이 패턴을 인식했다. 에베소서 6:14–17에서 바울은 동일한 이미지를 재활용하여 신자의 갑옷에 적용함으로써, 신적 전사에게 위안받는 자들이 악의 날에 설 수 있도록 무장함을 받은 자들임을 암시한다. 이사야 59장은 따라서 애가와 예배 사이,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부르짖음과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신뢰하며 도움을 받았도다'(시편 28:7)라는 찬양 사이의 다리 텍스트가 된다.

간청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둠뿐이라' 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사야 59장은 고난 속에서 위안을 구하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실천적 리듬을 제시한다. 1. 고통만이 아니라 죄를 지적하라. 선지자는 공동체가 어둠의 탓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손은 죄악에 더러워졌고(3절), 그들의 입술은 거짓을 말하니(3절). 고난이 고백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위안은 고백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온다. 정직한 기도를 시작할 때, 자신이 스스로의 고통에 기여한 한 문장의 고백으로 시작하라. 그런 다음 애통으로 이어가라. 2. 하나님의 팔이 짧아지지 않으셨음을 신뢰하라. 첫 절은 절망에 반대하는 신조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변하지 않으신다. 치료, 약, 상담이 부족해 보일 때, 이사야는 홍해를 가른 분이 근력을 잃지 않으셨음을 일깨운 준다. 신음하는 마음을 불가능한 일에 맞춰 조율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 가져가라. 3. 하나님이 주시는 갑옷을 입으라. 신적 전사의 의의 흉갑은 신자의 믿음과 love의 흉갑이 된다(데살로니가전서 5:8; 에베소서 6:14). 혹독한 시련을 느낄 때, 소극적으로 물러나지 말라. 성경 암송, 성례적 예배, 성도의 교제 가운데서 의도적으로 그분을 입으라. 위안은 단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입는 것으로 주어진다. 종종 간과되는 네 번째 적용: 아직 빛을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중보하라. 하나님은 '중보할 자가 없음'(16절)을 보고 참으로 통탄하셨다. 모든 회중, 직장, 가정에는 '악에서 돌아서나' '약탈당하는' 이들이 있다(15절 하). 그들을 위해 틈새로 들어설 사람이 당신이 될 것인가? 이사야의 위안의 vision은 혼자의 위안이 아니다. 그것은 전염되는 위안, 즉 우리가 받은 위안이 다른 이들에게 넘쳐흐르는 것이다(고린도후서 1:3-4 참조).

되새김

주 예수님, 저들이 당신의 면류관을 쓸 수 있도록 저들의 저주를 짊어지신 당신, 오늘 어둠과 빛 사이의 좁은 길에서 저를 만나주소서. 저는 제 영혼과 당신의 구원하시는 음성 사이에 장벽을 쌓은 죄들을 고백합니다. 저는 진실을 말해야 할 때 거짓을 말하였고, 의로 행해야 할 때 악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제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팔이 구원하시기에 너무 짧지 않고 당신의 귀가이 들으시기에 너무 둔하지 않기 때문에 저를 용서하소서. 제가 길을 볼 수 없을 때, 저의 시력이 되어주소서. 제가 설 수 없을 때, 저의 흉갑이 되어주소서. 제가 사랑할 수 없을 때, 저의 열정이 되어주소서. 제가 스스로 짤 수 없는 위안으로 저를 입히시고, 당신에게서 받은 바로 그 위로함으로 다른 이들을 위로하러 저를 보내주소서. 당신의 능력과 부드러우신 이름 안에서 기도합니다. 아멘.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의 팔이 구원하실 수 있다면, 왜 여전히 나를 고난당하게 하시는가?

이사야 59장은 그 장벽이 하나님의 약함이 아니라 인간의 죄라고 단언합니다(2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중보할 자가 없음을 보시고, 친히 구원의 갑옷을 입으십니다(16–17절). 고난은 버려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종종 더 깊은 위안이 형성되는 불베개인 것입니다. 마치 십자가가 부활에 앞서듯이요.

하나님으로부터 멀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다시 그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이사야 59:9–15는 고백의 기도를 본보기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함(12절)이 우리가 쌓아 올린 성벽을 무너뜨립니다. 시편 34:18은 약속하기를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계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부서진 솔직함입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의와 구원을 갑옷처럼 "입으시는"가?

이것은 시적인 의인화입니다: 하나님 친히 인간의 의가 이루지 못한 구원을 직접 이루어 가십니다. 인간의 정의가 무너지는데(15a상절), 하나님은 의를 흉갑처럼, 구원을 투구처럼 입으십니다(17절). 이것은 또한 성육신을 예표합니다—하나님이 인간 본성을 입으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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