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토기장이의 손 안의 진흙: 고난을 통해 우리를 다시 빚으시는 은혜

예레미야가 토기장이를 지켜보며 그릇이 부서지고 다시 빚어지는 것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은 조용히 자신의 손이 우리를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고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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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예레미야 18:1-20

여호와께서 나 예레미야에게 임하신 말씀이 이러하시니 내가 이르시되 너는 옹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옹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돌 물레로 일을 하고 있더라 그릇을 만드는 중에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서 상하므로 그가 다시 그 옹기장이의 보기에 옳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이 임하시기를 이르시되 내가 이 옹기장이와 같이 너희 이스라엘 족속을 다룰 수 없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옹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어느 때든지 어떤 나라나 왕국을 찢어 뽑아 멸하리라 하였다 하였으나 그 내가 말한 나라가 그 악에서 떠나면 내가 그 내리려 하던 재앙에 뜻을 돌이키리라 또 어느 때에 어떤 나라나 왕국을 세워 심으리라 하였다 하였으나 그 나라가 내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 베풀려던 복에 뜻을 돌이키리라 하시니라 그런즉 너는 지금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재앙을 베풀며 너희를 치려 하여 계책을 세우고 있으니 너희 각 사람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바르게 하라 할지라도 그들이 이르기를 이는 헛된 말이라 우리는 우리 경영대로 행하며 각기 악한 마음의 강훅대로 행하리라 하리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열방 중에 물어보라 누구 누구든 이같은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이스라엘 처녀가 심히 가증한 일을 행하였도다 Rocks from the 레바논 눈처럼 흘러내리는 Rocks from the 바위에서 솟는 찬물이 어찌 그치며 지리겠나 Rocks from the 내 백성이 나를 잊었나이다 그들이 허무한 것을 제사하며 그들이 그 길 곧 옛 길에서 걸려 넘어지고 사치니보다 빌지 아니한 사정길 사정길로 행하도다 이러므로 그들의 땅이 놀람과 치소거리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그리로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고개를 흔들리라 내가 동풍 같이 그들을 그 적 앞에서 흩으리로다 그들이 재앙의 날에 등을 향하고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로다 그들이 말하되 올지라 우리가 예레미야를 쳐서 계획하세 priest에게는 교훈이 없겠고 wise에게는 counsel이 없겠고 prophet에게는 oracle이 없겠지 우리를 치세 그의 모든 말을 더 들을 필요가 없게 하자 하니 그러하니 여호와여 아들 과 나의 원수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시옵소서 선을 악으로 보답하는 것이 옳나이까 그들이 나를 해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나를 위하옵고 그들을 위하옵고 내가 주의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여 주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돌이키게 하였사오니 그들 자녀로 기근에 내주고 칼에 내리우게 잡으시며 손길님들로 자녀와 남편을 잃어 과부가 되게 하시며 손길님들로 전염병에 내리우게 잡으시고 청년으로 칼에 싸움에서 죽임을 당케 하시며 손길님들 집에 소리가 들리게 하시옵소서 주께서 갑자기 군대를 이끌고 오시나이다 이는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웅덩이를 파고 내 발을 잡으려고 올무를 놓았음이라 오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나를 죽이려는 모든 계략을 아시나이다 주여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마옵시고 주의 앞에서 그들의 죄를 지우지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고 주의 진노의 때에 그들을 치시옵소서

예레미야 18:1–20은 성경이 제공하는 가장 친밀한 장면들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의 고난을 보여 줍니다. 질그릇 앞에서 무릎 꿇으시는 하나님, 나라가 스스로를 훼손하도록 내버려두시는 하나님, 그리고 다시—또다시—그 점토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시기로 선택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Narration

배경: 도공의 집과 위기에 처한 나라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의 통치 초기에 이 말씀을 받았다. 이 시기는 남왕국 유다가 수십 년간의 우상숭배, 실패한 개혁, 그리고 바빌론의 그림자 속에서 쇠약해진 시기였다. 이 나라는 영적으로 지쳐 있었다. 제도가 부식되고, 지도자들이 귀먹었고, 백성은 언약의 언어를 견딜 수 없었다. 예레미야 자신은 이미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회개하지 않으면 예루살렘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에 그는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이러한 의심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거의 터무니없는 일을 명하셨다. 성전 뜰을 떠나고, 의회장을 떠나서, 도예공의 작업장까지 걸어 내려가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 사람이 진흙을 다루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 이미지는 의도적으로 겸손하다. 왕들은 궁궐에 앉고, 선지자들은 광장에서 말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사자를 잠시 장인의 제자로 만드신다. 물레 위의 그릇이 흠이 나자 도공은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다시 다듬었다. 이 장 전체는 바로 이 렌즈를 통해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정적인 멸망의 선고를 내리시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백성에 대한 자신의 작업하는 자세를 계시하고 계신 것이다. 장은 그런 다음 법정 어조로 전환한다(7-10절). "내가 어떤 민족을 뽑고 뽑으라 명하더라도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떠나면 내가 뜻을 돌이키리라." 이것은 긍휼을 위한 신적 유연성이다. 백성은 응답한다. "소용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계획을 따르겠다." 이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고통, 즉 다시 빚어질 수 없을 만큼脆해져버린 백성의 고통이다. 장을 마무리하는 교차대칭구조 안에서 백성이 선지자를 모의하는 것(18-20절)은 시편 35편의 구조를 뒤집은 것이다. 시편 35편에서 시인은 "내 생명을 찾는 자들"과 "내 영혼을 요구하는 자들"(시 35:3, 4, 7, 9, 11, 12, 15, 17절 참조; 영혼을 향한 "구덩이를 판다"는 공유된 이미지도 참조, 시 35:7, 15절 참조; 또한 "그들이 … 되게 하소서" [35:8절]; "그들이 … 되게 하소서" [35:10절] 참조)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같은 히브리어 구절 "그의 영혼을 요구하다"가 에스겔 3:18, 20절에 다시 등장하여, 선지자를 그 백성의 운명과 결부된 고통을 짊어진 파수꾼으로 제시한다. 요세푸스는 이 시기에 대한 그의 개관에서 시위에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유다의 장인들이 그들의 직업을 계속했다며, 일상적인 삶—도공, 농부, 목자—이 예언이 펼쳐지는 무대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0.7.1 § 81-83). 이 장의 지리적 배경은 예루살렘의 아래 도시, 곧 도공들이 일했던 계단식 언덕이며, 곧 폐허가 될 성전이 보이는 곳이다.

시공간적 상상력: 도공, 물레, 그리고 흠이 난 질그릇

예루살렘의 첫 성전 시대, 다윗 왕정 아래를 배경으로 한 이 묵상은 바빌론 포로가 임박한 가운데 고난과 언약적 불신실함과 신의 긍휼 사이의 긴장을 다루며 이사야 48장을 성찰한다.

의미: 주권자이시며 고난을 받으신 도자기장(陶器匠)

이 장은 세 가지 흐름으로 전개되며, 각각 하나님이 곧장이시요 우리가 진흙이라는 의미의 깊이를 더합니다. 첫째, 주권은 경직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순서를 정하여 한 민족을 멸하라고 명하거나, 한 민족을 세우라고 명하더라도" (7-10절). 그 함의는 놀라움입니다. 하나님의 선포하신 심판조차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돌이키실 권리를 유보하십니다. 변덕이셔서서가 아니라 관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7-10절은 canon 전체가 되풀이하여 반향을 일으킬 원칙을 제시합니다: 주는 "긍휼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시 145:8)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의 이 장은 신적 주권의 교리가 담장이 되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입니다. 둘째, 흠은 현실입니다. "장인이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그의 손에서 그릇처럼 변한 때에"(4절)라는 구절은 그 패괴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진흙이 무너지는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결함입니다. 고난은 환각이 아닙니다. 진짜 진흙이 진짜 물레 위에서 무너집니다. 셋째, 다시 빚으심은 무료입니다. 장인은 새된 새들을 강제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는 "만드는 것이 합당하다"라 합심을 품으셨습니다(4절). 히브리어(바야쉬릿, "다시 만드셨다")는 주체성을 가리킵니다. 다시 지음은 과거 순종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새로운 선물입니다. 복음서 작가는 이를 듣고 새 피조물에 대해 기록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고후 5:17). 물레 위의 고난은 과거 실패에 대한 형벌이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형상의 산통입니다. 따라서 이 장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은 주권자가시되 경직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흠 있되 버림받은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고난은 그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이것이 참된 위로의 구조입니다. 위로란 물레를 치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장인의 손이 여전히 우리 위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적용: 오늘 도(道) 위에 앉은 우리

그러면 우리는 어찌하여 도예사의 물레에서 시작하여 법정에서 끝나는 한 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가? 세 가지 목회적 움직임이 뒤따른다. (1) 무너짐을 명명하라.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은 말했다, "소용없다"(12절). 그 문장은 냉소 이상이다. 그것은 다시 형상지워지기를 기대하기 멈춘 영혼의 증상이다. 무너짐을 명명하는 것이 은혜의 첫 행위이다. 그것은 시편 기자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내가 훼손되었다"(시편 38편에서 고난받는 자가 고백하기를 "내 살 건전함이 없다"고 함을 참조하라. 이 고백이 하나님의 임재에 앞선다). 고난은 부정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 정직한 고백에 의해 소화된다. (2) 물레에서 도망치는 것을 멈추라.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이 물레가 우리를 던질 때 마루에서 일어나려 한다. 우리는 무감각해지고, 주의를 돌리고, 도망친다. 도예사가 찰흙을 다시 덩어리로 으깨는 형상은 정확히 그것이 우리에게 그 탈출을 거부하기 때문에 불쾌하다. 도예사의 반죽은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형상과 다음 형상 사이의 유일한 길이다. (3) 마음의 변화를 신뢰하라.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뜻을 돌이킬지라"(8, 10절). 심판의 확정된 명령 아래 고난받는 이들에게 이것은 구약에서 가장 해방적인 문장 가운데 하나이다. 복음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복음은 마음을 바꿀 자유를 가지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해 그것을 바꾸기로 선택하실 때 일어나는 일이다. 그 최종적 재창조까지, 우리는 물레에 서서 불평하며, 때로 거부하며, 종종 그 압력을 잘못 읽는다. 그럼에도 도예사는 우리 위에서 노래하신다(스바냐 3:17) 그가 찰흙 위에서 노래하신 것을, "내가 놓지 아니하리라." 실천적 단계: 이번 주에 고난의 순간이 닥치면, 불평하기 전에 멈추고 물으라, "도예사가 무엇을 만들고 계신가?" 한 문장 일지를 쓰라. 시편 34:18을 소리내어 읽으라: "여호와가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spirit이 압제된 자를 구원하신다." 물레 위에 있는 친구 곁에 앉아 그들에게 조언하기를 거부하라. 우리가 제공하는 위로가 신학이 아니다. 그것은 임재이다.

되새김

주님, 저는 진흙입니다. 저는 망가져 왔습니다. 도자기사의 물레 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무너짐을 겪었습니다. 도자기사의 바닥에 덩어리째 누워서는 그 바닥이 제 마땅한 집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려 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믿음으로 제 손을 다시 주님의 손에 놓습니다. 주님께서 어떤 모양을 만들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물레가 멈추고, 덩어리가 굳어지고, 압박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압박이 벌이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은 아직 제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계시는 아버지의 움켜쥠입니다. 깨어진 곳 가까이 있어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에 다시 반죽되고 있는 사람들 가까이 있어 주옵소서. 물레에서 그들을 내려 주심이 아니라, 그 물레 위에서 함께 계시어 그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그 자체로 상하게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진흙,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옵니다. 아멘.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이 전지하시다면, 어찌하여 그의 마음을 "변하시겠는가" (예레미야 18:7–10)?

히브리어 동사 nacham은 종종 '관계를 안에서 자신의 입장을 조정하다'는 뜻이지, '새로운 정보를 얻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자기이신 하나님의 주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가 진실한 것이 되도록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 여지를 남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기초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택하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塑造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이 어찌하여 "소용없다"고 대답하는가 (렘 18:12)?

이것은 가장 깊이 있는 고난입니다: 절망 속에서 우리는 파업을 선언하며 "소용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스스로 내뱉은 절망 자체가 토기장이의 긍휼을 보여줍니다: 그의 응답은 놓아버림이 아니라, 더 깊이 반죽하는 것입니다.

pottery 이미지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어떻게 지적되나요?

토기장이 도가니 위에 몸을 굽히듯,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 몸을 굽히셨다. 겟세마네에서 '내 뜻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다오'라고 기도하신 아들은 죄로 인해 무너지지 않은 진흙이면서도, 우리의 멸망을 위해 스스로 빚어진 떡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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