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저수지의 위로: 예레미야의 고난과 에벳-멜렉의 용기

충성의 선지자가 진흙 웅덩이에 던져졌을 때, 구시 사람이 나아서 다가옵니다—고난 속의 위안은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옵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예레미야 38:1-20

스와랴의 아들 마탄의 아들 스바다야, 바스뢴의 아들 그달랴, 스므리야의 아들 유갈, 말기야의 아들 바스뢴이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남아 있는 자는 칼, 기근, 온역으로 죽으되 갈대아인에게 나아가는 자는 살겠고 그의 생명을 얻어 살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 왕의 군대の手에 넘어가리니 그가 취하리라" 하였더라 이에 그 관원들이 왕에게 말하되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 성에 남아 있는 군사와 모든 백성의 마음을 약하게 함이라 이 사람이 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화를 구하옵니다" 하니 시드기야 왕이 대답하되 "그가 너희 손에 있으니 왕이 너희를 막을 힘이 없노라" 하였더라 그들이 예레미야를 잡아서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넣으니 이 지사는 감옥 뜰에 있는 것이었더라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내려보내매 그 구덩이에 물은 없고 진흙뿐이었으므로 예레미야가 진흙 속에 빠졌더라 왕궁에 있는 구시 사람 에벳멜렉이 그들이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넣었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에 왕이 베냐민 문에 앉아 있었더라 에벳멜렉이 왕궁에서 나와 왕에게 나아가 말하되 "내 주 왕이여 저 사람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한 일이 악하니 그가 죽을 때까지 구덩이에 넣었나이다 성 안에 떡이 다하였사오니" 하였더라 왕이 구시 사람 에벳멜렉에게 명하되 "네가 여기서 삼십인을 데리고 가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기 전에 구덩이에서 끌어올리라" 하였더라 에벳멜렉이 그 사람들을 데리고 왕궁의 저택 저장고 아래에 들어가서 거기서 해어진 베옷과 닳은 천을 취하고 그것을 줄로 예레미야에게 구덩이 속으로 내려보내며 구시 사람 에벳멜렉이 예레미야에게 외쳐 이르되 "네 겨드랑 아래에 해어진 베옷과 천을 받쳐라" 하매 예레미야가 그대로 하였더라 그들이 줄로 예레미야를 끌어올리고 구덩이에서 내어내었더라 예레미야가 감옥 뜰에 머무니라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불러들이게 하고 여호와의 집 제삼 문에서 그를 만나게 하니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숨기지 말라" 하니 예레미야가 왕에게 이르되 "내가 만일 왕에게 아뢰면 왕이 반드시 나를 죽이겠고 내가 만일 왕을 권하면 왕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리이다" 하였더라 이에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우리의 이 생명을 주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너를 찾는 그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도 아니하리라" 하니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 나아가가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타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집이 살겠으나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 나아가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요 너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였더라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로 넘어간 유대인을 무서워하노라 혹시 그들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겨 능욕할까 염려하노라"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그들이 왕을 넘기지 아니하리이다 내 말하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내가 왕에게 일러 주는 대로 하면 왕이 잘 되리라 왕은 살겠고 이 성이 불타지 아니하리라 만일 왕이 나아가지 아니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바가 이러하니 곧 유다 왕궁에 남아 있는 모든 여인이 바벨론 왕의 고관들에게로 끌려 나갈 것이요 그들이 말하리되 `왕의 벗들이 왕을 꾀어 이겼더니 왕의 발이 진흙에 빠졌더니 그들이 왕에게서 등을 돌렸도다' 모든 왕의 아내와 자녀가 갈대아인에게로 끌려 나가고 왕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며 왕은 바벨론 왕의 잡히리니 이 성은 불타리이다" 하였더라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이 일을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요 만일 관원들이 내가 너와 말한 것을 듣고 와서 네게 말하여 `왕이 네게 무엇을 말하셨으며 너는 왕에게 무엇을 말하였으며 네게 무엇을 숨기지 말라 우리가 너를 죽이리라' 하거든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왕 앞에 간청하여 요나단의 집으로 돌아가서 죽지 않게 하여 달라 하였나이다' 하라 하니 모든 관원들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왕이 모든 그에게 명한 말씀대로 물었더라 그들이 더 묻기를 그치고 그 일이 알려져 나지 아니하였더라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이 함락될 날까지 감옥 뜰에 머무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니라

예레미야 38:1-20 (ESV) — 예레미야의 대적들이 그를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고발한다. 시드기야 왕이 그를 넘겨주었고, 그는 말기야의 구덩이에 내려져 진흙 속에 빠지게 된다. 왕궁의 에티오피아 환관인 구스인 에벳멜렉이 왕 앞에서 중재한다. 왕이 허락을 내리자, 에벳멜렉은 낡은 헝겊과 밧줄을 사용하여 예레미야를 구해낸다. 이 본문은 부당하게 받는 고난의 깊이와, 뜻밖의 구원자를 통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놀라운 긍휼을 함께 보여준다.

Narration

공성 예루살렘의 선지자

예레미야 38장은 바벨론의 기원전 586년 멸망 직전, 예루살렘의 마지막 절망적인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도시는 갈대아 군대(느부갓네살 왕의 신바벨로니아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습니다. 성벽 안에서는 기근이 극에 달했으며, 본문은 "성에 더는 양식이 없다"(9절)라고 명시적으로 기록합니다. 예레미야는 수십 년 동안 바벨론에 투항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예언해 왔으며, 이러한 메시지를 관리들, 군사 지도자, 그리고 많은 시민들은 반역적 협력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관리 넷—스바댜, 그다랴, 유갈, 바시홀이—예레미야를 고발하여, 그가 군사들의 사기를 꺾고 백성의 복지가 아니라 해를 꾀한다고 주장합니다.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시드기야 왕은 "그를 너희 손에 맡기노라, 왕이 능히 너희를 막을 자가 없느니라"(5절)라고 양보합니다. 선지자는 왕자 말기야의 소유인 구덩이에 내려져 옥 구역 안에 갇히게 됩니다. 그 저장소는 물이 없고 진흙뿐이었습니다—물이 있는 깊은 저장실과는 달리, 이 진흙탕 구덩이는 질식과 기아로 인한 서서히 죽어가게 만드는 환경이었습니다. 여기에 왕궁에 있는 환자 에벳멜렉이 등장합니다. 그의 직위는 궁정 관리로서의 역할을 암시하며, 아마도 왕 자신을 직접 시종들던 신임받는 가신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쿠시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아프리카인, 아마도 누비아인이나 에티오피아인—은 그의 변호를 더욱 주목할 만하게 만듭니다: 외국 출신의 궁정 종이 자신의 지위,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선지자를 구원하려 합니다. 왕이 앉아 있던 베냐민 문은 성으로 통하는 북쪽의 주요 출입구였으며, 보물고는 궁궐 단지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 지리적 세부 사항들은 제1성전 시대 말기, 다윗의 성 예루살렘에서 바벨론 군대가 성문에 이르렀던 시기에 서사를 확고히 자리 잡게 합니다.

시공간: 벽 속의 복도와 아래의 구덩이

바빌로니아 유배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예레미야 38장은 첫 성전이 멸망하기 직전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 안에서 고난을 묘사하며, 흩어진 유배자들 사이에서 신실한 자의 고난을 다룬 토비기의 이야기와 울림을 공유한다.

뜻: 구덩이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예레미야 38:1-20은 고난과 신적 위로에 관한 신학적 사례 연구이다. 세 겹의 의미가 드러난다. 첫째, 고난은 신실함으로 인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화되는 경우가 많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덩이에 갇힌 것이 아니라, 순종했기 때문에 갇힌 것이다. 그가 항복하면 생명이 보전될 것이라고 예언한 말은 진실이었고, 수개월 내에 역사적으로 옳음이 입증되었지만, 바로 이 진실된 말 때문에 그를 배신자로 몰아가는 것이다. 관리들은 그가 자기들의 '해를 꾀한다'고 고발하지만, 그가 경고하는 해는 실재하는 것이고, 그들이 그에게 가하는 해는 불필요한 것이다. 본문은 고난이 항상 신적 형벌과 상응하는 것이 아니며, 신실함이 세상에서의 옹호를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둘째, 하나님의 위로는 흔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경멸하는 인간적 대행자를 통해 임한다. 에벡멜렉은 환자이며, 이전 언약 법(신명기 23:1) 하에서 여호와의 회중에서 제외된 자이고, 이방인 곧 구시 사람이다. 그는 어떤 언약적 가문도 없고, 정치적 권위도 없으며, 신학적 훈련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구원의 도구가 된다.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보내시는 위로는 바로 그 시대의 종교적 기득권층이 무시했을 그런 사람을 통해 온다. 셋째, 이 본문은 제도적 권위의 도덕적 붕괴를 드러낸다. 시드기야는 자기 관리들을 '대항할 수 없는' 왕이다. 선지자를 보호해야 할 대신들이 오히려 그를 멸한다. 권력의 구조들이 무너지고, 남는 것은 한 명의 무고한 자가 진흙 속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고 결심한 궁중 종 하나의 결단이다. 따라서 이 본문의 '위로'는 고난의 부재—예레미야는 구원 후에도 여전히 갇혀 있다(13절)—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긍휼의 현존이다. 밧줄, 헌 누더기, 서른 명의 군사, 그리고 이방인 구원자가 언약 공동체가 그 길을 잃은 이 장에서 신적 위어를 이루는 어휘들이다.

적용: 오늘날의 웅덩이에서 에벳멜렉을 인식하기

우리는 이 본문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현대 독자에게 적용되는 점이 여러 가지 있다. 첫째, 문자 그대로의 위기, 우울증, 핍박, 부당한 고발, 혹은 장기적인 고난 등 어떤 '구덩이'에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 구덩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잃었다는 표적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했기 때문에 진흙 속에 있었지, 그 진흙이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는 뜻은 아니었다. 고난과 하나님의 부재는 같은 것이 아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에벳-멜렉을 주목하라. 위안은 기대하는 통로를 통해 오는 경우는 드물다. 구스 사람 환관인 에벳-멜렉은 하나님께서 종종 종교 세계가 간과하는 이들—이민자, 주변부에서 밀려난 사람들, 다른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신분이 없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고통받는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오신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만약 특권적 위치에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궁정을 떠나 왕에게 말하고, 삼십 명의 사내를 모아 누군가를 구해 낼 에벳-멜렉의 용기가 있는지를. 셋째, 낡은 천의 사역을 배우라. 에벳-멜렉은 직접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는다. 그는 밧줄과 부드러운 널빤지를 보내 예레미야의 겨드랑이 아래 몸을 보호한다. 때로 위안은 극적인 구출이 아니라 추가적인 상처를 막는 작고 실용적인 돌봄이다. 겨드랑이 아래에 꽂힌 그 널빤지들은 들어올림을 견딜 만하게 만들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이것은 식사를 제공하고, 침묵 속에 함께 앉고, 재정적 부족을 채워주며,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대변인이 되는 일이다. 넷째, 관료들의 논리를 거부하라. 그들은 예레미야가 백성을 '낙심시킨다'고 주장했는데, 마치 진실된 경고가 배신과 같은 것인 양 말하였다. 모든 세대에 선지자적 정직함을 해로움으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백성 위에서 우는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예레미야와,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첨하는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도록 부름받았다. 다섯째, 시드기야의 약함은 경고라는 점을 기억하라. 왕은 관료들을 '대항할 수 없었다'—이 문장은 부당함이 지속되도록 소극성을 통해 내버려두는 모든 지도자를 묘사한다. 어떤 형태든 권위를 가지고 있다면, 에벳-멜렉을 모범으로 삼아라.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접근을 가진 자가 없는 자들을 위해 사용하라.

되새김

이 장은 예레미야가 여전히 갇힌 채로 왕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하며, 대화가 계속 이어질 채로 끝난다. 이 이야기에서 위로가 결여되어 있지는 않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밧줄이 그를 웅덩이에서 들어 올리지만 그는 아직 자유롭지 못하다. 빵은 여전히 떨어질 것이다. 성은 여전히 함락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흙과 함락 사이의 이 순간에 결정적인 무언가가 일어났다. 무고한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홀로 죽게 내버려두어지지 않았고, 한 외국인이 선지자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되었다. 아마도 이 장이 제공하는 가장 깊은 위로는 이것일 것이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모든 웅덩이에서 즉시 들어 올리시지는 않지만, 그곳에 우리를 혼자 두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진흙은 몸을 기억하지만 몸은 밧줄을 더 기억한다. 신적 위로에는 결이 있다. 낡은 천, 서른 명의 남자의 힘, "이것들을 네 겨드랑이 밑에 대라"고 웅덩이 아래로 외치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것은 촉각적이며, 구체적이며, 육체를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위해 기도할 때, 답이 당신이 택함하지 않았을 사람을 통해,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물자를 가지고 오더라도 놀라지 마라. 하나님은 적절한 때에 적절한 손들을 보내심으로 웅덩이에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신다. 그리고 우리 나머지 사람들을 그러한 손이 되라고 부르신다.

자주 묻는 질문

왜 관리들이 예레미야를 죽이고 싶었습니까?

예레미야는 성에 남아 있으면 죽음이고 바빌론에 항복하면 생명을 얻는다고 예언했다. 관리들은 이 메시지가 군사와 백성의 사기를 꺾는다고 여기고, 그가 그들의 해를 꾀한다고 비난하며, 우유부단한 시드기야 왕에게 압력을 넣어 예레미야를 넘기도록 했다.

에벳-멜렉은 누구이며, 왜 중요한가?

에벳멜렉은 구스인(아프리카) 환자로서 왕궁에서 시중 들던 자였다. 비록 이방인으로서 주의 회중에서 배제된 자였으나, 그는 예레미야를 위하여 중보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걸었고, 직접 서른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그 선지자를 진흙 웅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의 정체성은 세상이 무시하는 자들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패턴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의인들로 고난을 겪게 하시면서도,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이방인을 보내시느뇨?

성경은 결코 세상의 고난이 신실함과 비례한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예레미야는 바로 하나님의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고난을 겪었다. 하나님의 위로往往是 예상치 못한 통로로 찾아온다–에벰-멜렉은 이방인이자 궁중 시종으로서 어떤 종교적 또는 정치적 지위도 없었으나, 신적 섭리의 도구가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흔히 '자격 있는 자'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뒤엎는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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