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경배할지니 부서진 땅을 가는 것: 고난과 위안의 약속

예레미야 4:1–20 — 칼이 가까이 다가올 때, 고난은 신이 그의 백성을 버렸다는 뜻인가?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예레미야 4:1-20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면 여호와의 말이니 나에게 돌아오되 네 가증한 것을 내 목전에서 제하여 버리며 떠나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사신다" 함을 참됨과 공의와 의로다 하며 마음으로 맹세하면 이방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자복하고 너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르시기를 너희 묵은 땅을 기름진 땅으로 만들라 가시덤불에 뿌리지 말라 너희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이니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 너희의 악행으로 인하여 내 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그 활활 타오를지라 무가 그것을 끄는 자 없으리라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에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 땅에 나팔을 불지며 "성읍들로 들어가서 도망하라" 하며 예루살렘에 향하여 표를 세우라 이는 북편에서 재앙과 크기 심한 멸망이 이르는 것이라 그 큰 사자가 자기 굴에서 올라 왔나니 열방을 멸하는 자가 일어나 처소를 떠나 네 땅을 황무케 하려 하니 네 성읍들이 무너져 빈 사람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굵은 베를 입으며 울며 애통하라 이는 여호와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함이라 그 날에 여호와의 말에 왕과 방백들은 혼이 빠지고 제사장들은 놀라고 선지자들은 깨이지 못하리라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속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평강하리라 하시나 칼이 생명을 위협하여 이르�나이다 그 때에 여 여호와의 말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가리켜 이르시되 광야 높은 곳에서부터 오는 불 같은 그 백성의 행위가 바람을 키질하여 타작할 수도 아니하며 정결케 할 수도 없나니 그러므로 나도 심판을 베풀겠고 원수들이 나를 치되 내가 그들이 행한 대로 갚겠음이라 파괴하는 자가 구름처럼 오며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은 독수리보다 빠르니 우리에게 화가 있다 우리가 멸망되었다 함이로다 예루살렘이여 네가 구원을 받으려면 네 악한 행위를 깨끗이 씻어 버리라 네 마음의 악한 생각이 어느 때까지 네 속에 머물겠느냐 단에서 재앙을 보지하는 자의 소리를 들으며 에브라임 산에서 화를 전하는 자의 소리로다 그들이 이방 나라에 고하기를 보라 저들이 온다 함이며 예루살�에 대하여 보라 북방에서 원군이 와서 그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높이 울리되 예루살렘이 도량 같이 사방을 둘러�나니 이는 여호와의 말에 그가 나를 대항하여 패역하였음이라 네 행위와 네 소위로 인하여 이것이 네게 당한 것이요 이는 네 고통이라 진실로 마음에 사무치는 바라 하로다 나의 아파하는 마음이 심히 아파하여 심장이 답답하여 심장이 내 속에서 소리를 내어 말하기를 내가 잠잠히 못하겠으니 이는 나팔 소리와 전쟁 경악의 소리를 들음이라 온 땅이 파괴되었는데 진영도 홀연히 파괴되고 장막도 순식간에 무너졌음이라 나팔 소리와 전쟁 경악의 소리를 어느 때까지 보리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 백성이 나를 알지 못하니 미련한 자라 깨닫지 못하고 못된 자식이라 행위를 행하기는 능하고 행위를 행하기는 능하지 못하도다 내가 땅을 본�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을 보즉 빛이 없으며 산들을 보즉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쫓겨나고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며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진하신 노로 인하여 무너지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온 땅이 황폐하리라 그러나 내가 전부 멸하지는 않겠음이라 이를 인하여 땅이 슬퍼하고 하늘이 위로부터 검 어두우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으며 내가 경영하였은즉 후회하지 아니하며 돌이키지도 아니하리라 기병과 활 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각 사람이 도망하여 자기 성으로 들어가니 모든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도다 너 멸할 자여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을 몸에 드리우고 눈을 가늘게 뜨며 너를 아름답게 하였으나 무하히 지나가는 바라 너를 사모하는 자가 너를 멸시하며 네 생명을 찾으리라 내가 슬프다 하는 소리 곧 첫 아이를 배는 여인의 구혼하는 소리니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손을 펴서 이르기를 내게 화가 되었도다 살륙하는 자가 나를 잡아 해치리로다 함이로다

예레미야 4:1–20 (ESV) — 유다가 북방으로부터의 침공을 맞이하기 직전, 회개로 나아가야 한다는 예언적 부름이다. 이 본문은 두 가지 현실을 서로 엮어 내어 놓는다. 즉, 임박한 심판의 고통과, 뜻밖에 주어지는 돌아오라 함의 긍휼이다.

Narration

맥락: "칼이 떨어지기 전 마지막 외침"

예레미야는 남쪽 왕국 유다의 마지막 위태로운 수십 년, 바벨론이 605년, 597년, 그리고 궁극적으로 586년 BC에 펼친 파괴적인 원정의 시기에 예언했습니다. 4장은 경고와 함께 예언집을 엽니다: 나팔이 울리고 시온을 향해 신호대를 올리라, 시민들은 '북방에서 오는 재앙'이 움직이고 있기에 견고한 성읍으로 도망치라 권면받습니다. '북방'은 메소포타미아 강대국에 대한 표준적 예언적 암호입니다 — 이전에는 앗시리아였고 이제는 바벨론입니다 — 그들의 군대는 덤불을 떠나는 사자처럼 또는 독수리보다 빠른 전차의 회오리바람처럼 레반트를 따라 남하합니다. 예레미야 자신은 10절에서 중보자의 고통을 외칩니다: '아, 주여 GOD이시여! 확실히 당신은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속이셨습니다. "너희가 평안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 그러나 칼이 바로 생명까지 위협합니다!' 이것은 가장 거친 형태의 고통의 신학입니다 — 선지자는 평화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임박한 파괴의 현실 사이의 불협화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장은 독자를 절망 속에 방치하지 않습니다. 1-4절은 경고에 앞서 오는 긍휼의 신언입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와 가증한 것들을 제거하고 마음의 굳은 밭을 깨뜨리면, 열방이 그로 인해 자기를 축복할 것입니다. 여기서 위안은 경고의 부재가 아니라 불이 내리기 전에 문을 여는 것입니다. 이 장은 따라서 두 가지 진리를 함께 붙잡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회개하는 자의 마지막 원수가 되기를 거부하시는 하나님의 뜻.

시공간: 파괴자가 이미 둥지를 떠났다

성전 제1기에 배경으로 한 이 묵상은 다윗 왕정 아래 예루살렘에서 펼쳐지며, 바빌론 포로가 임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통은 우리를 다시 불러오는 음성이다

예레미야 4:1–20은 고난을 목적이 없는 신적 형벌이 아니라 한 가지 특별한 종류의 말씀으로 드러낸다. 하나님은 침략을 통해, 왕들의 공포를 통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떨림을 통해 — 더 나아가 선지자 자신의 당황한 기도를 통해 말씀하신다. 이 본문은 세 가지 신학적 움직임을 가르친다. 첫째, 심판과 위로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짝을 이루는 것이다. 본문의 첫 단어가 '네가 만일 돌아오면'이다 — 경고보다 긍휼이 먼저 온다. 둘째, 마음이 표적이 된 밭이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라는 말씀은 안으로 향한 농업적 비유이다. 굳어진 것을 쟁기질해야 한다. 고난이 바로 그 쟁기이다. 셋째, 말만으로는 구원되지 않는다. 언약적 진실성이 그것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위선 가운데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 것' 자체가 가증한 일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입술뿐이 아니라 '밭 속 깊은 곳까지'의 공의와 의이다. '수풀에서 올라오는 사자'와 '구름처럼 올라오는 파괴자'가 끔찍한 것은 사람들이 변혁된 삶을 신앙적 어휘와 혼동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본문은 고통에 찬 마지막 질문 — '네가 악한 생각을 언제까지 품고 있겠느냐' — 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동시에 위협이면서 눈물이다. 열 절에 나오는 예레미야 자신의 혼란 ('주께서 이 백성을 속이셨나이다') 은 텍스트 안에서 설명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것은 정직한 애가이다. 따라서 이 본문에 있는 위고는 해결의 위안이 아니라 응답받고 있음의 위고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고 계신다. 칼이 가까이 있지만, 문은 아직 열려 있다.

적용: 고난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만일 우리가 예레미야 4장을 개인적으로 읽는다면, 세 가지 실천이 드러납니다. (1) 위기가 닥치기 전에 경고를 들으라. 본문은 선포와 도달 사이에 시간적 여백이 존재한다고 전제합니다. 우리는 영혼의 작은 경보들 — 불안, 무감각, 굳어진 양심 — 이 성문 앞의 사자가 되기 전에 그것들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宗教적 언어와 宗教적 삶을 구별하라. '주여, 주여'라 부르면서 '악한 꾀'를 품고 있는 것은,正是히 하나님이 거부하시는 위선입니다. 진심의 시험은 기도문의 우아함이 아니라 다음 날 아침 우리의 선택들이 지닌 결입니다. (3) 고난이 판결이 아닌 쟁기 역할을 허락하라. 이 장은 회개가 모든 결과를 제거한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그 이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겠다고 약속할 뿐입니다. 만성적 통증, 직업적 실패, 관계의 붕괴 속에 있는 많은 신자들이 고난을 하나님의 궁극적인 불쾌하심의 증거로 잘못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본문은 그러한 결론을 금합니다. 무릇 파괴자가 구름처럼 올라오더라도, 돌아오라는 초대는 바로 그 같은 숨결 속에서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이것은 다음을 뜻합니다. 위기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선지자의 질문 — '네가 언제까지 품 안에 악한 꾀를 품을꼬' — 곁에 앉아 그것이 천천히 외과수술을 행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구체적으로 자복하십시오. 수선할 수 있는 것은 수선하십시오. 그리고 경고하신 하나님이 또한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십시오.

되새김

예레미야의 정직함에는 이상한 위안이 있다. 그는 이해하는 척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 분명히 말한다. "당신이 이 백성을 속였다"고. 그는 제사장들이 벌벌 떨고 왕들이 당황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는 성벽 위에서 파수꾼의 목소리를 기다려 듣지만, 본문은 20절 중간에서 끊긴다. 우리는 바로 그 끊긴 문장 안에 살고 있다. 파괴자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와서 우리가 폐허 위에 서 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장은 "하나님이 곧 이 문제를 고쳐 주실 것이다"라는 쉬운 위안을 허락하지 않고, 대신 "하나님은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며,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라는 더 어려운 위안을 제공한다. 이것이 나중에 복음이 되풀이하여 울리는 바로 그 위안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사자가 여전히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을 때, Christ는 죽으셨다. 고통의 쟁기는 이미 예루살렘 밖의 십자가에서 가장 깊은 일을 마쳤다. 남은 것은 마음이 깨어지는 것을 천천히 기꺼이 허락하는 일이다. 마침내 경작되지 않은 땅이 열어져 긍휼의 씨앗을 받으려는 바로 그 일이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의 삶이 그 열린 흙이 될 때, 열방이 우리로 인해 자기를 복되게 여길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는 살핀다. 우리는 씻는다. 그리고 경고하신 분이 또한 집으로 맞아들이고 계심을 신뢰한다.

자주 묻는 질문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백성을 "기만하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진실성과 모순되지 않느냐?

모순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고통을 표현하며 거짓 선지자들의 '평화'라는 메시지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참 말씀에 대립되는 말입니다. 선지자는 자신의 혼란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드러내는데, 이는 시편과 애가에서도 나타나는 전통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을 약속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거짓 교사들에 의해 왜곡되었고, 예레미야는 그 왜곡에 대해 통곡합니다.

북방에서 올 재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레미야 시대에 "북쪽"은 메소포타미아 강대국들 — 처음에는 앗시리아, 그 다음에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기원전 605년 갈기스 전투 이후 바빌론이 유다의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으며, 마침내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과 첫 번째 성전을 멸망시켰다. 따라서 "북쪽"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신학적 암호 역할을 한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위안을 어떻게 체험할 수 있는가?

예레미야 4장은 하나님의 위로가 고난 전에 초대(”만일 네가 돌아오면...“)로,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말씀하고 계시다는 확신으로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고통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위로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회개할 것을 권면받고, 여전히 쪼개진 땅을 기꺼이 경작하라는 초대를 받으며, 여전히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초대를 받기 때문에 위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시편 34:18은 이 진리와 나란히 놓이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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