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쓰라린 잔과 은자의 부르짖음: 예레미야 9장의 애통과 위로

충성이 소진되면 선지자는 광야를 동경하고, 상처가 깊어지면 하나님께서 친히 남은 자를 정제하신다. 고난은 끝이 아니다 — 정제 이후에는 위안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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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예레미야 9:1-20

오호라 내가 광야에 있어 객들의 여장이 되었으면 하고, 내 백성을 떠나 그들과 멀리 떠나고 싶도다. 이는 그들이 다 음란한 자의 무리요, 사기꾼의 떼임이로다. 그들이 다 활 같이 혀를 놀리니, 땅에서는 진실로 강하나 요로다. 악에서 악으로 나아가며, 나를 알지 못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각기 이웃을 삼갈지니, 형제라도 믿지 말지니, 이는 형제마다 속이고, 이웃마다 비방하며, 각기 그 이웃을 속이고, 진실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혀를 거짓을 말하도록 익히고, 그 악을 행하기에 지치며, 너의 가운데에欺诈가 있도다. 그들이 欺诳으로 나를 알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성 때문에 어찌 할꼬, 반드시 내가 그들을 시험하리라, 이는 내 백성이 가난함이라. 그 혀는 연한 살이 된 화살이니, 입으로 거짓을 말하며, 그 동무에게 입으로는 화평을 말하나 마음에는 그를 엎드리게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이런 일들을 그들에게 보응하지 아니하겠으며, 이런 나라에 내 마음을 갚지 아니하겠느냐? 산 위에서 내가 곡읍하며 애통하겠고, 광야의 목장에서 기별하리라, 이는 그것이 황폐하여 지나가는 자도 없으며, 거기서 소리의 소리도 들을 수 없음이라. 공중의 새와 짐승들도 다 도망하여 가 없도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이루고, 시리아의 굴을 만들겠으며, 유다의 성읍들로 사람이 거주하지 아니하는 황무지로 만들리라. 누구든지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으며, 누구든지 여호와 입이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그 땅이 어찌하여 황폐하며, 광야 같이 되어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는지 그 뜻을 알게 하라.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앞에 세운 법을 버리고,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사악한 대로 행하며, 그 열조가 가르쳐준 바알들을 따랐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할 것이요, 그들과 그 열조가 알지 못하던 나라들 중에 그들을 흩으며, 그들의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하기까지 할지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이제 들어라, 애가를 부르는 자를 청하여 오게 하고, 슬프게 우는 여자들도 불러오게 하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빨리 울어서, 우리 눈이 눈물을 흘리고, 우리 눈동자가 물을 쏟게 하리라, 이는 시온에서 애통하는 소리가 들려 오도다, 우리가 어찌 그리 된 것이냐, 우리가 크게 수치를 당하여, 우리가 반드시 땅을 떠나, 우리 집들을 버리리라. 너희 여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며, 너희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며, 너희 딸들에게 애가를 가르치며, 서로 비통함을 가르치라, 이는 죽음이 우리 창문으로 올라오고, 우리 궁중에 들어가서, 거리에서 어린 아이와, 광장에서 젊은 남자를 끊으려 함이로다. 너는 이같이 말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의 시체가 밭 위의 분토 같이, 추수하는 자 뒤의 단 더미 같이 되어, 그것을 주워 담는 자가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하지 말 것이요, 용사는 그 용력을 자랑하지 말 것이요, 부한 자는 그 부함을 자랑하지 말 것이요, 자랑하는 자는 오직 나를 아는 것과, 내가 여호와여서 인자와 공평과 의를 세상 중에 행하는 줄을 알고, 나를 의지하는 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할례받지 못한 자와 할례받은 자를 벌할 것이라,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과 모압과, 그 머리카락을 깎은 광야에 거하는 모든 나라들이라, 이는 이 모든 나라들이 할례받지 못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마음이 할례받지 못하였느니라.

예레미야 9:1–20은 선지자가 그의 백성을 위해 통곡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쑥을 주겠다고 약속하시며 그들을 흩으시는 것으로 끝난다. 슬픔과 심판이라는 두 극점 사이를 관통하는 한 가닥 실이 있으니, 곧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실 때에도 그들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Narration

맥락: 포위된 남은 자와 상처 입은 선지자

예레미야는 제1성전 시대 마지막 수십 년,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 직전의 시기에 예언했다. 도시는 여전히 서 있었지만, 그 도덕적 토대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가족들이 서로 배신하며(4절), 혀는 거짓을 위해 활처럼 휘어졌으며(3절), 백성이 율법을 버리고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에 땅 자체가 황무지가 되어가고 있었다(13절). 예레미야의 첫 절규인 "내가 광야에 나그네의 여숙소를 가졌으면, 내 백성을 떠나 그들에게서 멀리 떠나고 싶다"는 말은 휴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제사장으로서 자기 친족들이 거짓을 택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끼는 고통이다. 하나님은 정련의 이미지로 응답하신다. "내가 그들을 녹이고 시험하리라"(7절), 이것은 은을 불순물로부터 가려내는 은세공사(銀細工師)의 언어이다. 지리적으로는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머지않아 닥쳐올 바벨론의 위기가 배경이며, 시대적으로는 제1성전의 황혼기이다.

시공간 이미지: 산 위의 눈물, 폐허가 된 도시

이 고난에 대한 묵상은 다윗 왕조의 예루살렘에서 제1성전 시기와 바빌론 포로기에 이르는 것으로, 신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민족적 재앙과 개인적 비극에 부딪히는 시기로부터 나온다.

의미: 정련으로서의 고난, 도가니 이후의 위안

예레미야 9장은 현대 독자들이 종종 분리하여 생각하는 두 가지 진리를 연결한다. 고난은 실제 도덕적 반역에서 비롯되며(13절), 그럼에도 하나님의 징계는 형벌적이지 않고 목회적이다. '단련하고 시험하다'는 동사(7절)는 야금술적 용어이다. 하나님은 합금을 버리지 않으시고, 정제하신다. '쑥과 쓴 즙'(14절)은 강한 약과 같이 기능한다. 불쾌하지만,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의사가 처방한 것이다. 이 장의 위안은 쓴맛의 부재가 아니라 불로 안에 함께 계시는 정제자의 존재이다. 선지자의 눈물은 두 번째 층위의 위안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중보자의 고통을 존중하신다. 예레미야는 울음을 멈추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의 눈물이 사기와 거짓에 대한 하늘의 슬픔과 일치한다고 말씀하셨다.

적용: 예레미야 9장에서 위안 얻기

첫째, 그 속임을 이름을 붙이라. 예레미야는 구체적인 죄들을 짚어 말한다―활처럼 굽어진 혀, 매복하는 친구들―우리도 그래야 한다. 자복 없는 위로 sentimentality가 된다. 둘째, 정련자의 손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이 쓰린 경험을 보내실 때, 종종 성경에서 그 경험을 정확히 '쑥'이라 부르시는데 이는 징계를 포기하심으로 오해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셋째, 정직하게 울음을 멈추지 말라. 이 장은 눈물로 시작하여 흩으심의 약속으로 끝난다; 둘 다 진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면제되지 않지만, 어느 것도 최종적인 말이 아님을 약속받는다. 실천적으로: friendship이 당신을 배반할 때, 당신의 마음을 겨냥한 말들이 상처를 남길 때, 공동체가 파당으로 무너질 때―예레미야의 말씀을 빌려 그 고통을 기도 속에 가져오라. 하나님이 당신을 감별하시고, 찌꺼기를 제거하시며, 은이 되는 것을 보존하실 것을 구하라. 예레미야가 동경한 광야는 도피가 아니다; 속임의 소음에서 떨어진 곳에서, 정련자의 음성이 마침내 들릴 수 있는 조용한 곳이다.

되새김

예레미야 9장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백성 사이에서 살아가는 비용을 담백하게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이 장은 허무주의적이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눈물은 충성이 실패한 곳에서도 사랑이 지속됨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정련하는 심재는 심판이 재만물까지 제거될 때까지 시중되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이 구절에서 고난은 두 현실의 고통스러운 교차점입니다: 인간의 죄와 신성한 사랑. 위안은 고난의 소거가 아니라 그 재지향입니다 — 거짓을 징벌하는 같은 불이 또한 진실을 말하는 자를 정화합니다. 예레미야 9장과 함께 앉는 신자는 울 수 있으나 홀로 울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백성을 시험하는 분은 또한 그들과 함께 용광로에 앉으시며, 불태워야 할 것과 보존해야 할 것을 가려냅니다. 오늘 그 이미지를 붙잡으십시오: 면밀히 지켜보는 정련자,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시는 하나님, 그리고 쓴 잔이 생수의 강으로 바뀌는 미래.

자주 묻는 질문

예레미야가 왜 자기 백성을 떠나 광야로 가고 싶어하는가?

의무를 회피해서가 아니라, 속임과 배신이 그를 둘러싼 모든 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 가까운 관계일지라도 신뢰할 수 없다. 슬픔이 너무 무거워서, 광야에서의 고독이 마치 숨 쉬기 위해 남은 유일한 정직한 공기처럼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녹이고 시험하리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징벌인가 치유인가?

둘 다, 그러나 치유를 목표로 한다. 야금학적 이미지는 하나님이 합금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 그분은 그것을 정제하신다. 쓴 잔은 원수가 부은 독이 아니라 의사가 처방한 약이다.

오늘날 신자들은 이 본문으로부터 어떻게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죄와 상처를 일컫고, 정금자의 손을 받아들이며, 기도 가운데 정직하게 눈물을 흘리라. 하나님은 고난이 마지막 말씀이 아니시라 — 그의 임재가 있음을 약속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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