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부르심

사막 골짜기에서 목적을 찾다: 시냇물이 마를 때

욥기 6장은 고통의 참혹함과 친구들의 실패를 드러냅니다—그러나 이 암울한 풍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더 깊은 목적へと 이끄시는 목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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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욥기 6:1-20

그때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받은 고통을 저울에 달고 내 재앙을 천칭에 올리면 그것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내가 경솔히 말한 것은 이것 때문이다. 전능자의 살이 나를 찌르고 내 영혼이 그 독을 흡수하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대적하여 벌이어 있다. 들나귀가 풀이 있을 때에 소리를 내겠으며 소가 꼴이 있을 때에 울겠느냐? 맛 없는 것을 소금 없이 먹겠으며 씀바귀 즙의 맛이 있겠느냐? 그 음식이 내 병들 때와 같으므로 내가 차마 손대지 못하겠도다. 나의 요구를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구하노라 곧 하나님이 나를 꺾으시기를 기뻐하시며 그의 손을 펴시고 나를 끊으시기를 내가 원하노라 그리하면 내가 무정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때에도 이것이 나의 위안이 되리라 내가 거룩한 자를 향하여 말을 억누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내가 무엇을 의지하여 참으리요 내 수명이 얼마나 되기를 참으리요 나의 힘이 바위와 같은가 내 살이 청동과 같은가 내가 나를 도울 힘이 없으며 오히려 슬기로운 말을 잃었도다. 곤란한 자에게는 친구가 의로워야 할 것이니 그가 전능자의 경외를 버릴지라도 나의 벗은 시내물과 같으며 그 강물의 흐름과 같도다 얼음 때문에 그 물이 어둡고 눈이 그 위에 덮여 있으나 그러나 따뜻하여지면 물이 줄고 더위에는 그 자리에서 마르나니 그 흐름은 구부러져 건조한 땅으로 흘러 들어가서 사라지도다 데마의 대상들이 그것을 바라보며 스바의 행렬들도 그것을 의지하여 그들이 소망을 그곳에 두고 이르러서는 오히려 부끄러워하느니라 너희도 이러하니 재앙을 보거든 두려워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내게 물건을 내라 혹 너희의 재물로 나를 위하여 뇌물을 주라 나의 원수의 손에서 나를 건지며 강한 자의 권세에서 나를 구속하라 하였느냐 나를 가르치라 내가 잠잠하리니 내 죄가 어디 있나 알려주라 정직한 말이 얼마나 힘이 있느냐 그러나 너희의 책망은 어떠하뇨 너희는 나를 책망하는 말을 도모하되 절망한 자의 말을 바람 같이 여기느냐 너희는 고아를 위하여 제비를 뽑으며 너의 벗를 팔아 넘기느니라 이제 너희는 내 얼굴을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돌이키라 너희에게 부정이 없기를 원하노라 돌이키라 나는 오히려 의로운 사람이니 내 혀에 부정이 있겠으며 내 입이 악을 분별하지 못하겠느냐

욥기서 6:1–20은 욥의 두 번째 담론으로, 자신의 고통의 진실성을 변호하며, 안식으로서 죽음을 갈망하고, 동료들의 배신을 한탄한다. 마른 하천으로 마무리되는 이미지는 신뢰할 수 없는 위로와 가시적인 자원이 모두 사라졌을 때 인간이 의미를 찾는 모습을 강력하게 비유한다.

Narration

맥락

욥기 6장은 위대한 첫 번째 시가 순환(욥 3–14장) 안에 놓여 있다. 엘리바스가 4장에서 자신의 첫 책망을 이미 전했는데, 의인은 결코 진멸로 멸하지 않으며 욥의 고난은 그러므로 반드시 감추어진 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욥은 회개로 응답하지 않고, 애통의 여과되지 않은 어휘로 응답한다. 그는 자신의 재난을 바다의 모래보다 무겁게 달하며(6:2–3), 전능자의 화살이 그의 영을 관통하였다고 고백하고(6:4),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 가장 대담한 구절들 중 하나인, 하나님께서 자신을 으깨어 주시기를 간구한다(6:8–9). 장의 후반부(6:14–20)는 유명한 '마른 강' 본문이다: 친구는 실패하는 자에게도 충성을 보여야 할 것이지만, 욥의同伴자들은 대상 행로에서 물을 약속하다가 더위 속에서 사라지는 사막의 시내 같아졌다. 배경은 우스 땅, 고대 근동의 동쪽 가장자리 어딘가이며, 아마도 욥의 세 친구들이 각자의 집에서부터 여행하는 시리아-아라비아 사막에 위치한다(엘리바스는 데만에서, 빌닷은 수아에서, 소발은 나아마에서). 시대는 불확실하다—대부분의 학자들은 족장 욥을 족장 시대에,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동시대에, 그리고 왕정과 첫째 성전이 건축되기 훨씬 전에 위치시킨다. 후보 목록에 시대가 기재되어 있지 않으므로, 우리는 이를 'unknown.'로 표기한다.

시공간

족장 시대 우스 땅에서, 욥은 깊은 고난 가운데 목적이소명의 의미를 놓고 씨름하며, 상실과 침묵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뜻

욥기서 6장은 세 가지 흐름 속에서 목적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킨다. 첫째, 욥은 자신의 괴로움이 공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달아보고 싶어 한다(6:2). 이것은 부르심의 언어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셨는지 알기 전에, 먼저 우리의 실제 상황을 드러내도록 허락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직해질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을 더듬거리며 살아간다. 욥은 목적을 추구하는 기초적인 행위의 본을 보인다. 연기를 그만하고, 저울질을 시작하라. 둘째, 욥은 하나님의 침묵에 맞선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 안에 있으며 내 영이 그것의 독을 흡수한다"(6:4). 그는 이것이 제자도라고 가장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부른다—거룩한 분에게서 쏘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한 번에 부수시기를 원하지만(6:9), 이 소망 자체가 하나의 신학을 드러낸다. 욥은 여전히 하나님이 부수심을 행하시는 분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주도권을 가지고 계심을 뜻한다. 여기서 목적은 고난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통치권을 하나님의 손에서 운명, 친구, 우연으로 옮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셋째, 욥은 공동체의 실패를 드러낸다. "친구여, 그가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그만두더라도 그 위급한 자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느나"(6:14). '위급한'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아살)는 striking하다. 그것은 '어리석게 되다' 혹은 '도덕적으로 실패하다'를 의미할 수 있지만, 이 맥락에서 그것은 가장 가능성이 높게 '비틀거리다', '실족하다', '궁지에 처하다'를 뜻한다. 참된 부르심은 거의 고립 속에서 지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 곁에 두시는 사람들이 때로는 6:15-20절의 하천처럼 마르기도 한다. 데마와 스바의 대상들은 그 시내들에 의지하며, 그것들이 사라질 때 어안이 벙벙해한다. 욥은 우리에게 부르심이 어떤 관계들이 진짜이고 어떤 관계들이 한시적이었다를 드러낸다고 말하고 있다. 종합하면, 욥기서 6장은 목적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훈련을 통해 벼려진다는 것을 가르친다. 고통에 대한 정직, 하나님의 권위를 옮기는 것에 대한 거부, 그리고 변함없는 동료들이 떨어져 나가도록 내버려 둘 willingness.

신청

오늘 자신의 소명을 찾는 사람에게 욥기 6장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가? 1. 당신의 실제적인 무게를 명명하라. 욥은 말했다, "내 고통이 저울에 달렸다면" — 'How heavy is my grief! Would that it were weighed!'라고. 우리 대부분은 이름 붙이지 못한 짐을 지고 있다. 이번 주에 한 시간을 내어 적어라 — 게시하지 말고, 보여주지 말고, 단지 적어라 — 지금 당신에게 실제로 무거운 것이 무엇인지. 소명은 비전 선언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진실한 목록 작성으로 시작된다. 2. 끊어진 시냇물에 당신의 갈증을 해소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그만두어라. 당신의 결정을 형성하는 목소리들을 정직하게 살펴보라. 그것들이 더위 속에서 증발하는 와디와 같은가? 삶이 편할 때만 따뜻한 친구들, 당신이 실패할 때 사라지는 멘토들, 당신이 성공할 때 번영하다가 그렇지 않을 때 사라지는 교회들. 당신은 그것들을 비난할 필요가 없지만, 당신의 방향 감각을 그것들에게 의존하는 것을 반드시 멈추어야 한다. "실패하지 않는 시냇물"(시편 46:4; 예레미야 17:7-8 참조)을 찾아서 당신의 뿌리를 거기에 내리라. 3. 하나님께 계속 말하라, 특히 하나님이 화살을 쏘는 것처럼 보일 때 — 바로 그럴 때. 욥은 전능자께 등을 돌리지 않는다; 그는 그분께 더 강하게 향한다. 당신의 소명은 고난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주권자의 손 아래서 신실하게 жизнь을 돌보는 것이다. 정직하게 기도하라. 애통의 시편들을 기도하라. 욥이 여기서 기도하는 방식 그대로 기도하라 — 저주까지도 포함하여. 정직함은 신앙의 반대편이 아니다; 그것은 신앙의 가장 초기 열매 중 하나다. 4. 당신이 가지길 원했던 벗이 되어라. 욥기 6:14는 도덕적 고발이자 동시에 소명이 된다: "패배한 자에게 벗은 충성의 의무가 있다." 만약 당신의 목적의식이 고난을 통해 정제되었다면, 이제 당신은 마르지 않는 동반자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 목적은 우리가 와디를 살아남고 그 옆에서 어이없어 서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되새김

욥기 6장에는 이상한 위안이 있습니다. 욥은 괜찮지 않습니다. 괜찮은 척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말하고, 여전히 씨름하며, 자신의 불평을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누구에게로 돌리기를 여전히 거부합니다. 이것이 성숙된 소명의 모습입니다. 고통의 제거가 아니라 신뢰의 재배치가 아닙니다. 당신 인생의 마른 개울들—떠난 멘토들, 당신의 무너짐을 감당하지 못한 우정들, 물을 약속하고 재를 가져다준 계획들—은 결코 근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것들은 당신을 존재하시는 분께로 다시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시내가 마른 계절에 이것을 읽고 있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당신은 길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욥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명이 더 이상 진로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가 되는 그 자리에서. 그리고 이 장에서는 침묵하시지만 이 책에서는 결코 부재하지 않으신 거룩하신 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의 모래보다 무겁고 사막의 시내보다 더 영속적인 무언가로 당신을 이끄시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요한 계시록 6장은 삶의 소명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욥은 자신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버티어 서는데, 이는 바로 자신의 진짜 무게에 대한 솔직함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재배치를 거부하는 것이며, 정확히 자신의 부르심을 추구하기 위한 출발 자세이다.

욥이 어찌하여 그의 친구들을 마른 시내에 비유하는가?

그들이 옵이 번영할 때만 영적 '물'을 제공하고, 그가 참으로 넘어졌을 때에는 사라져 버렸으니—테마와 스바의 대상队伍이 시냇물에 의지하다가 어이없게 당한 것 같도다.

하나님이 화살을 쏘는 분처럼 보이신다면, 여전히 그의 부르심을 구할 수 있을까요?

예. 욥은 하나님께 찔림을 당하지만, 결코 주권성을 하나님의 손에서 옮기지 않습니다—부르심은 종종 고통과, 상처를 주시는 바로 그분께 향한 정직한 기도로 정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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