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향, 종려나무 가지, 그리고 믿음의 발자국

베다니에서의 식사와 예루살렘에서의 환호성 사이에서, 신앙은 조용한 방에서 열린 길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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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요한복음 12:1-20

예수께서 유월절 전 엿새를 베다니에 이르시니 거기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다는 식수하고 나사로는 예수의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마리아가 순전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 발에 부으니 그 향유 값이 매우 귀한지라 집이 그 향기 가득히 되더라.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팔게 될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팔아 은 삼백 데나리온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어찌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라 자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은 것을 빼앗는 자라 하니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로 저 버리지 내 장사하는 날을 위하여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더라. 이에 유대인의 무리가 예수 거기 계신 줄 듣고 나사로도 보고자 함이요 또한 예수만 보려 함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라. 이에 대제사장들이 나사로도 죽이려고 의논하니 이는 나사로 인하여 유대인의 무리가 많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라. 이튿날 큰 무리가 명절에 올려 왔는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져가서 맞으로 나가여 호산나여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찬송하리로다 하더라. 예수께서 나귀 새끼를 얻으신 대로 그 위에 앉으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한 것 충족하려 하심이라. 제자들이 이 일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였으나 후에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렇게 한 것을 기억하더라.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을 목격한 무리가 증거하므로 나사로 인하여 또한 무리가 나아와 예수를 맞으니 이는 예수가 이 표적을 행하심을 들었음이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너희가 보라 너희 하는 일이 도무지 소용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더라. 명절에 승상하여 예배하러 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어 갈릴리의 벳새다에 있는 빌립에게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뵙고자 하노라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나아가 말하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홀로 있으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제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고 세상에 미워하는 제 생명을 지키는 자는 영생하리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내 시종도 있으리라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하시리라. 지금 내 마음이 괴로와니 내가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이 때에서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하시더라. 아버지여 주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는지라 무리가 곁에 서서 들은 자들은 우뢰쳤다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저에게 천사가 말하였다 하더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나를 위하여 나지 않고 너희를 위하여 났느니라. 지금 이 세상의 심판이 이루어지겠고 이 세상의 군주가 쫓겨나리라. 내가 땅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 이것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표시하여 하신 말이라.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어찌하여 인자 들려야 한다 하시나이까 이 인자는 누구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깐 동안 너희 중에 빛이 있나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니라 어두움이 너희를 합격하지 못하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빛의 아들이 되게 하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떠나 저희에게 숨으시더라. 그러나 예수께서 저희 앞에서 이 많은 표적을 행하셨으나 저희가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주여 우리 전한 것을 믿은 자 누구뇨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나였는고 하였고 또 이사야가 또 말하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며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가 고치게 함을 면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의 영광을 보았음이라 이는 예수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원 중에도 예수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을 인하여 드러내지 못하니 이는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을 면치 못할까 함이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함이라.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12장 1-20절은 연속된 두 가지 신뢰의 행동을 포착합니다: 마리아가 사적인 집에서 행한 값비싼 기름 부음, 그리고 축제를 향해 가는 길에서 군중이 공개적으로 외친 "호산나"입니다. 둘 다信仰이 대가를 치를 때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드러냅니다.

Narration

맥락

유월절 전 엿새에 예수님은 나사로가 부활된 그 베다니 마을로 돌아오신다(요 11:1 참조). 이어지는 식사는 소규모의 친밀한 자리다: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나사로는 식탁에 누워 있으며, 마리아는 거의 일 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순수한 나드 한 파운드를 깨뜨린다. 유다가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의 항의는 그의 마음을 드러낼 뿐 마리아의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한편 예루살렘에서는 나사로의 무덤을 여셨던 그분이 이제 도시에서 걸어 올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소식이 퍼진다. 이미 유월절을 맞아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순례자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를 맞으러 나아간다. 이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시온의 왕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이 이루어진光景이다(마 21:17; 막 14:3). 대제사장들은 '그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 다수가 떠나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도 살해할 것을 모의한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신뢰가 얼마나 disruptive한 것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조치이다.

시공간

첫 성전 시대 베들레헴, 나사렛, 그리고 다윗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십자가 발치에서 신앙이 시험받는 다락방에서 절정에 이르는 이야기.

의미

信仰과 신뢰는 여기서 두 가지 보완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값진 헌신과 값진 증언. 마리아의 anointing은 안으로 향한 믿음이다, 계산할 수 없고, 환불할 수 없으며, 허락을 구하지 않는 예배이다. 예수께서 그것을 자신의 burial을 위한 준비로 해석하신다: '나의 장사를 향하여 그녀가 그것을 간직하였다.' 그녀는 십자가의 완전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녀 앞에 있는 분을 신뢰하며 그녀가 가진 것을 쏟아붓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다는 모든 것을 거래로 취급한다; 그의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은 돈을 하나님 자리에 놓은 마음의 언어이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 위에서, 믿음은 공개적이 된다. 무리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것을 들었으며', 많은 이들이 또한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것'을 들었다. 증인을 신뢰하는 것 자체가 믿음의 행위이며, 요한은 그것을 강조한다: '무덤에서 나사로를 불러낼 때 그와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하였다. 이 까닭으로 또한 무리가 나아가 그를 맞았다.' 종려나무 가지와 '호산나'라는 외침은 단순한 민족주의적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소망이 무덤에서 거리로 끌려나온 사람들의 응답이다. 그러나 요한은 또한 어떠한 승리주의도 부드럽게 책망한다: 이 왕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며, 전쟁용 말 위에 계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 자신도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만' 그 그림을 파악한다. 참된 신뢰는 정복하시는 주님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예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적용하다

마리아와 무리는 함께, 실제 방 안과 실제 길 위에서 믿음이 어떤 모습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1) 공개적인 순간 이전에, 사적으로. 신뢰는 먼저 등불이 켜진 곳에서 형성됩니다. 당신의 '나드 향유 한 근'는 무엇입니까? 비밀이 지켜지는 기도의 습관, 값비싼 나눔의 행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을 작은 순종이 당신을 더 큰 시대를 위해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리아의 기름 부음은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응답이었습니다. 2) 거래하는 마음 없이. 유다의 질문은 우리 시대가 계속해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이 돈이 더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었을 텐데?' 믿음은 마리아로 답합니다. 어떤 것들은 예배이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는 너희가 항상 함께 있으니 나를 너희가 항상 함께 하지는 못하리라'는 말씀은 가난한 자에 대한 돌봄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질서를 예수께서 밝히신 것입니다. 3) 증언할 용기를 가지고. 무리는 '들었을 때에' 나아갔습니다. 믿음은 듣고, 그다음 움직입니다. 당신의 증언이 동료와의 대화이든 공공장소에서의 외침이든, 그것은 예수께서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들은 데서 자라나며, 특별히 당신이 한때 무덤이라 생각했던 곳들에서 그러합니다. 4) 바로잡은 기대를 가지고. 제자들은 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을 만났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온유함에 놀라지 않겠다는 거부가 아닙니다. 나귀 새끼를 선택하시는 구원자를 따르기를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분의 영광은 뒤돌아보아야만 온전히 이해될 것입니다.

되새김

매혹적인 것은 요한복음 12장에 기록된 두 가지 가장 아름다운 신뢰의 행위가 십자가 사건을 일주일 남짓 앞둔 시점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마리아의 향유는 집 안을 채우고 장례를 예고한다. 종려나무 가지는 골고다에서 끝나는 길을 따라 깔린다. 결국 faith는 곧 weak함의 부재도 아니고, 해피엔딩의 보장도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기 전에 가장 값진 것을 내어놓고 가장 외친 "호산나"를 외칠 willingness이다. 승리의 입장을 오해한 같은 disciples들이며, 며칠 후에는 라자로를 죽이고 싶어하는 권력을 두려워하여 locked doors 뒤에 숨었다. 그러나 부활 후에 '그들이 remember했다.' 신뢰 underground에서 자라는 seed이다. 그러므로 보통 화요일의 조용한 anointing을 despise하지 말라. 작은 congregation에서 외쳐진 작은 Hosanna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집은 연고의 fragrance로 가득 찼고, 길은 crowd의 fragrance로 가득 찼다. 하나님은 숨겨진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모아 같은 이야기로 묶으신다. faith의 work는 예수님이 계신 자리에 presence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give하며, 우리가 그를 fully 해석할 수 없더라도 그가 우리의 예배를 interpret하실 것을 trust하는 것이다.

자주 묻는 질문

마리아가 값비싼 나르향으로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은 이유는 무엇인가?

마리아의 행위는 깊은 신뢰와 사랑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값진 것을 예수께 부어 드렸고, 예수님은 이것을 자신의 장례를 위한 준비로 설명하셨습니다.

유다는 진정으로 가난한 자들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인가?

요한은 유다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여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는 도적이라 돈 궤에 넣은 것을 가지고 가는 자였음을 명백히 하였다.

군중들이 왜 야자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까?

야자수 가지는 유대교에서 승리와 왕의 입성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중이 외친 "호산나"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예수님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왜 나사로를 죽이려 했습니까?

냐고로가 부활된 것이 많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떠나 예수를 믿게 함으로써 그들의 권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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