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구름 아래서 그분의 음성을 듣다: 믿음과 신뢰가 만날 때

변형은 믿음의 신울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보는 기적이 아니라 구름에서 나온 '그의 말을 들으라'는 아버지의 명령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마가복음 9:1-20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은 자를 맛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또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시매 그들 앞에서 변형되시니 그 옷이 빛나고 지극히 희게 세상 어떤 빨래도 그렇게 할 수 없더라.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예수에게 나타난지라 그들이 예수와 말씀하더니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고, 하나는 모세를 위하고,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리라 하니 이는 자기가 무엇을 말할지 알지 못함이요 저들이 심히 두려워함이라.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아들이라 너희는 그를 들으라 하시니 문득 둘러보아 보니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니 그들이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죽은 자 가운데서의 살다니 무엇이냐 서로 물으니라. 또 묻기를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 함은 어찌 됩니까 하니 이르시되 엘리야가 먼저 와서 만물을 회복하리라 인자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받게 될 것이 기록된 것을 너희가 어찌 알지 못하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매 사람이 기록된 것과 같이 그에게 임의로 행하였느니라 하시더라. 그들이 제자들 이르러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에워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변론하는지라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더라. 예수께서 묻되 너희가 무엇을 변론하느냐 하시니 무리 중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내가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사오니 어디든지 그를 잡으면 넘어뜨리며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옵니다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능히 하지 못하옵니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지 아니하는 세대여 내가 너희와 함께 얼마나 있으랴 내가 너희를 얼마나 참으랴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니 데려오매 귀신이 예수를 보자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여 땅에 엎드러져 거품을 흘리게 하거늘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묻되 이가 얼마 동안 이러하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 그러하옵니다 이가 불에도 물에도 자주 빠져 죽게 하옵니다 그러하오니 만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면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느냐 하시되 무릇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옵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벙어리이며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오매 그 아이가 죽은 사람같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 그러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으시니 일으키매 일어서더라.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묻되 우리가 어찌하여 능히 내어쫓지 못하였나이까 하니 이르시되 이런 종류는 기도 외에는 아무것으로도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더라. 거기서 떠나 갈릴리를 지나가시되 아무도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이르시되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후 삼 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그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무엇을 의논하더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아서 열두 제자를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품에 안고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하시니라. 요한이 이르되 선생님 우리가 누구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보았나이다 그 사람이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내가 능히 빨리 악하게 말할 자 없으리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하여 물 한 잔이라도 주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넘어뜨리는 자는 큰 맷돌을 그 목에 매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마가복음 9:1-20은 두 장면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높은 산에서의 변화산(1-13절)과 제자들이 고칠 수 없었던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절박한 아버지(14-20절)가 그것입니다. 이 두 장면은 함께 믿음과 신뢰에 대한 놀라운 교훈을 형성합니다. 산 위의 제자들은 보이는 영광에 눈이 멀었지만, 골짜기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앞으로 올 보지 못하는 시련들을 견딜 수 있도록 믿음을 강하게 주시기 위해 허락된 것입니다.

Narration

장면 설정

마태복음 9장은 엄숙한 약속으로 시작합니다. 예수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임하는 것을 볼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엿새 뒤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산은 전통적으로 갈릴리 지역의 헤르몬산이나 다볼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변화되셨습니다. 그의 옷은 눈부시게 희게 되었고,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과 말씀하시는 것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세 초막을 짓겠다고 제안한 것은 그 보이는 영광의 순간에 머물고 싶어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구름이 그들을 감싸고, 아버지의 음성이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내 아들 곧 사랑하는 자니, 그를 들으라.' 산에서 내려오시자, 예수님과 세 제자들은 즉시 큰 무리와 서기관들이 다른 제자들과争论하는 광경을 만나셨습니다. 한가운데에는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이 있는 아버지가 서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로 갈았으며, 불과 물에 던져졌습니다.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시대를 꿰뚫는 말씀으로 이 비극을 진단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산 위와 골짜기에서

갈릴리 바다 주변의 복음서 시대, 북부 이스라엘의 어촌과 언덕 사이에서 예수께서 믿음에 대해 가르치셨던 시기에 배경하여.

信仰と信頼の真の意味

마가복음 9:1-20은 두 가지 신앙을 나란히 놓는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빛의 신앙을 체험한다 - 눈부신 옷, 과거의 알아볼 수 있는 영웅들,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 골짜기의 아버지는 부르짖음의 신앙을 체험한다 - '만일 무엇이든지 할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여 도와주소서'(본문 중 22절). 예수님의 대답,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리라'는 결단을 강요한다: 신앙은 산 위에서 본 환상의 크기가 아니라 골짜기에서 외치는 정직이다. 이 본문에서 '신앙'(피시스)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얽힌 음을 지닌다. 첫째,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신앙이다 -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아버지의 음성은 정체성의 문제를 영원히 해결한다: 영광이 사라지고 구름이 걷힐 때, 예수님만 남으신다. 둘째, 그의 말씀에 대한 신뢰이다 - '그의 말을 들으라.' 신뢰는 신앙의 작동하는 형식이다; 구름이 침묵할 때 어둠 속을 걸어가는 신앙이다. 산 위의 제자들은 내려와서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는 신뢰가 필요했다. 골짜기의 아버지는 다른 제자들이 이미 실패한 후에라도 그의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려는 신뢰가 필요했다. 또한 엄숙한 세 번째 음이 있다. 예수님은 '믿지 아니하는 세대'(19절)에 대해 말씀하신다. 베드로의 세 초막처럼 끊임없이 보이는 영광을 요구하는 신앙은 미숙하다. 아버지의 '만일 할 수 있거든'과 같이 우리 조건대로 기적을 요구하는 신앙은 상처받았다. 성숙한 신앙은 한 번 아버지의 음성을 들은 후, 그 아들을 신뢰하여 모든 골짜기를 - 귀신에게 고통받는 아이의 골짜기와 다가올 십자가의 골짜기를 포함하여 - 걸어가는 종류의 신앙이다.

오늘 실천하기

이 본문에서 일상적인 믿음과 신뢰에 관한 세 가지 적용이 흘러나옵니다. 첫째, 산꼭대기를 소중히 여기되 그곳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절정 경험 — 예배의 밤, 수련회, 부인할 수 없는 임재의 순간 — 을 좇다가 변화산 사건 직후에 예수님의 명령이 내려오는 것이었다는 것을 잊습니다. 베드로가 성막을 짓고 싶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골짜기로 걸어 내려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최근에 강력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곳에 머무르려 함으로써 그것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아버지의 말씀 — '이는 내 아들이다' — 를 여러분의 평범한 한 주일 속으로 가지고 내려가십시오. 산을 내려가는 믿음이 산에 머무르려 하는 믿음보다 더 강합니다. 둘째, 아버지의 기도를 배우고 기도하십시오. 22절에서 그의 외침,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하는 것을 도와주옵소서,'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정직한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것은 믿음과 고백이 합쳐진 것입니다. 고백 없는 믿음은 망령됨이 되고, 믿음 없는 고백은 절망이 됩니다. 둘이 함께 신뢰를 이룹니다. 자녀, 결혼, 직장, 혹은 여러분의 방황하는 마음을 위해 기도할 때,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기도를 드리시고, 갈릴리에서 절박한 아버지에게 응답하셨던 그 아들이 여러분 자신의 골짜기에서도 여러분을 만나실 것을 신뢰하십시오. 셋째, 사역이 실패할 때, 논쟁하지 마십시오 — 무릎 꿇으십시오. 골짜기에 남아 있던 아홉 제자들은 아이가 발작을 일으키는 동안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질문,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랴?'는 우리의 평판을 변호하는 것과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 사이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프로그램, 심지어 우리의 은사가 부족할 때, 적절한 응답은 논쟁이 아니라 의존입니다. 다시 한번 깨어진 자를 진정으로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께 데려가십시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그분이 행하실 것을 신뢰하십시오.

되새김

주 예수님, 당신은 사랑받는 아들이시며, 아버지께서 친히 우리에게 당신의 말을 들으라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광의 산에 머물기를 원하면서, 보이지 않는 필요의 골짜기에서 당신을 신뢰하지 않은 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믿음을 우리 비전의 크기가 아니라 우리 부르짖음의 정직함으로 재었던 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아들을 둔 아버지와 함께 합니다. '주님, 저는 믿습니다. 제 믿지 못하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당신을 볼 수 없는 곳에서도 당신을 신뢰합니다. 구름이 침묵할 때에도 우리는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섬겨야 할 당신의 백성이 있는 모든 골짜기로부터 우리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시고, 지금이라도 당신의 나라가 능력과 함께 임하게 하소서. 아멘.

자주 묻는 질문

예수님이 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세 사람만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을까요?

이 세 사람은 중요한 순간들(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증인의 원을 이루었다. 변화산 사건은 십자가의 시련에 앞서 그들이 그의 영광 안에 굳건히 서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변형된 글이 유독 난해합니다.

모세는 율법을,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했습니다. 이 둘의 함께 나타남은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 모두의 성취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현현은 또한 제자들의 엘리야의 강림에 대한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을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왜 귀신을 내어쫓지 못했느냐?

예수님은 그것을 '믿지 않는 세대'라 하셨다. 그들의 믿음은 보이는 능력에 기대었으나, 참된 믿음은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과 신뢰의 차이 무엇인가?

믿음(피스ティス)은 토대이며, 신뢰는 움직이는 믿음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믿는 것이고, 신뢰는 자신의 삶을 그분께 맡기는 행위이다 — 마치 아들이 예수님께 데려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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