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믿음은 보기도 전에 항복하는 것이다

요한 세례사의 목 베임과 오천 명 먹이시기의 사이에서, 제자들은 믿음의 가장 깊은 교훈을 배웠다: 신뢰는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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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마태복음 14:1-20

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세례 요한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이런 능력이 그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하더라 헤롯이 요한을 잡아 결박하고 헤로디아를 인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헤로디아가 그의 형 빌립의 아내이기 때문이라 요한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그 여자를 취하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음이라 그러나 헤롯의 생일이 되어서 헤로디아의 딸이 무리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되 그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은 그가 말하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다오 하더라 왕이 근심하되 그러나 맹세와 그와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명하여 주게 하고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 그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가져다가 그 어머니에게 주더라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알리니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광야 곳으로 떠나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에서 걸어서 따라가니라 예수께서 나오시매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가 말하되 이곳은 광야이고 때도 이미 늦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게 할 것이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여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나이다 하니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시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妇人과 아이들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강권하여 배에 올라 자기를 앞서 반대편으로 건너가게 하시며 무리를 보내시더라 무리를 보내신 후에 따로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시니 저녁이 되시매 거기 혼자 계시더라 배가 이미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나 파도로 심하게 괴로워하나니 이는 바람이 맞은 까닭이라 밤 사 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를 걸는 것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 말라 하시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주여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주께로 오게 하옵소서 하니 이르시되 오라 하시거늘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잠기는 고로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worship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더라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인 줄 알고 그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고 모든 병든 자를 데려오며 그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 주기를 간구하니 만진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마태복음 14:1–20은 두 위대한 사건을 아우른다 — 그리스도 이전 마지막 위대한 선지자의 목소리를 침묵시킨 세례 요한의 순교, 그리고 공급하시는 자비로운 선지자-왕으로 예수님을 계시하신 무리의 먹이주심. 그 경첩은 제자들의 두려운 계산('때가 이미 지났도다')과 예수님의 그것을 조용히 무시하심('저희가 갈 필요가 없도다 너희가 먹일지니라')에 있다. 믿음은 정확히 인간의 자원이 신적 충분하심과 만나는 그 지점에서 태어난다.

Narration

장면 설정

마태복음 14장은 세례 요한의 사역이 저무는 시기에 열린다. 갈릴리와 페레아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와의 불법적인 혼인을 공개적으로 규탄한 이유로 마카이루스에 요한을 가두고 있었다(누가복음 3:1; 마가복음 6:14). 요세푸스는 이 정치적 배경을 확인해준다. 헤롯은 백성에 대한 요한의 영향력을 두려워했으며, 마카이루스 성채에서 열린 생일 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소름끼치는 청원을 허락했고, 선지자의 목숨을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깨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8.2.2). 제자들은 요한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한 뒤 가서 예수께 알렸다(마가복음 6:29). 이에 예수께서는 "거기서 배를 타고 오직 광야에 있는 외로운 곳으로 떠나셨다" —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슬픔 때문이셨고, 아마도 제자들에게 함께 애도할 공간을 주시기 위하셨다. 그러나 무리들은 갈릴리 호수 북서안의 여러 성들에서 걸어서 따라왔다. 저녁이 되었을 때, 제자들은 세상의 산수로 위기를 헤아렸다. 광야이고, 늦은 시각이고, 먹을 것도 없고, 돈도 없었다. 예수께서는 다르게 헤아리셨다. "떠나갈 필요가 없으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누가복음 9:7-9과 마가복음 6:14-29의 교차참조는 세 복음서 저자 모두가 이 기적을 요한의 죽음 소식 직후에 배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끝나가는 옛 선지자와 새롭게 드러나시는 분을 의도적으로 문학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대조시킨 것이다.

공간과 시간 속 장면

첫 성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묵상은 갈릴리 바다와 여리고를 잇고, 갈릴리의 사역 무대와 유대 광야에 걸친 신앙을 탐구합니다.

여기서 믿음이 의미하는 것

세 가지 신학적인 움직임이 이 본문의 신앙과 신뢰에 대한 가르침을 형성합니다. 첫째, 신앙은 두려움이나 슬픔의 부재가 아닙니다. 제자들은 막 친구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을 잃었습니다. 예수님 본인도 그 소식을 들으시고 물러나셨습니다. 본문은 슬픔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것을 거룩하게 합니다. 신앙은 비극이 비극이 아니라고 가장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나중에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이 '그는 계신 이이시며,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이시라 함을 믿어야' 할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히 11:6). 그 '해야 한다'는 말은 고통을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고통을 통해 신뢰를 세웁니다. 요한의 죽음 이후 제자들의 신앙 있는 행위는 단순히 예수께 가서 알리는 것(막 6:29)입니다. 예수께 알리는 것 자체가 신앙의 행위입니다. 둘째, 신앙은 자신이 가진 작은 것을 내어놓을 용의입니다. '우리에게 여기 오직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족함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자원을 날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가난을 목록화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헬라어는 데우테 — '이리로 오라', 초대입니다. 신앙은 작은 것을 큰 분 앞으로 옮기는 움직임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든 —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두 해의 신실함, 깨진 밤 하나 — 가져오라. 신앙은 내어놓는 손이지, 계산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셋째, 신앙은 보통 중보자들의 손을 통해 그 응답을 받습니다. 순서를 주목하십시오. '저녁을 축사하시고 떡을 떼시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마 14:19). 무리는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손에서 직접 떡을 받지 못했습니다 — 제자들의 분배를 통해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과 사역에서의 신실함은 대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자신의 공급을 이미 부르신 사람들을 통해 흐르도록 기적을 연출하십니다. 제자들이 나중에 물 위를 걸으며 '주님, 당신이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떡을 늘리시는 분이 폭풍도 걸으신다는 것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논증에서 논증으로 자라지 않고, 기적에서 기적으로 자랍니다. 마지막으로, 신앙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기억합니다. 헤롯은 말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마 14:2). 세상은 예수님을 죽은 영웅 틀에 끼워 넣음으로써 설명합니다. 신앙은 반대로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작은 것과 불가능한 것 모두를 그분께 신뢰합니다.

당신이 있는 방에서의 믿음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실천해 나가는가? 네 가지 정직한 단계로 말할 수 있습니다. 1) 해결하려 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께 고백하십시오. 요한이 죽은 후 제자들의 첫 반응은 전략이 아니라 교제였습니다. "그들이 가서 예수께 알렸다." 계산하기 전에 그의 임재 속에서 슬퍼하십시오. 믿음은 눈물이 없음이 아니라 눈물의 방향입니다. 2) 자신이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십시오. 제자들은 충분한 것을 가지고 있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뿐입니다." 고백이 증가에 앞섭니다. 하나님 앞에서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그는 여러분의 부풀려진 추산에 감동받지 않으십니다. 정직한 추산에 감동받으십니다. 3) 아무리 작더라도 그것을 그분께 가져오십시오. "이르시되 그것들을 내게 가져오라."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빵을 제단으로, 돈을 헌금판으로, 주일을 모임으로, 깨어진 대화를 친구에게로 가져가십시오. 큰 손에 놓인 작은 손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입니다. 4) 단순한 받는 사람이 아니라 통로가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예수께서 떡을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눌 수 있도록 빵을 주십니다. 개인적인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면, 공개적인 기적을 놓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팔도 지쳤습니다. 여러분의 팔도 지칠 것입니다. 그 피로함은 기적의 부정이 아니라 기적의 일부입니다. 5) 시끄러운 손실 뒤에 있는 조용한 섭리를 주목하십시오. 요한이 죽었고, 무리가 왔고, 예수께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순교를 헛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애통을 잔치로 바꾸셨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여러분의 장례식에서 그가 준비하고 계신 잔치를 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읽고 있는 장(chapter)만이 아니라 저자(Author)를 신뢰하십시오.

되새김

이 본문에는 모든 신자가 결국 마주치는 한 순간이 있다. 때가 이미 늦었고, 곳은 메마르며, 계산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 보통은 자기 자신이 — 말한다, "군중을 보내라." 그 문장은 체념의 언어이다. 그것은 믿음이 말을 마치기 전의 믿음의 소리이다. 예수님은 체념에 명령으로 응답하신다: "제 갈 필요 없나니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는 근심을 꾸짖지 않으신다. 그는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이끄신다. 떡은 마을들에 있지 않다. 그것은 너의 가방 안에 있다. 공급은 저 바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여기, 네가 들고 있는 떡 안에, 오늘 남은 시간 안에, 네 곁에 있는 사람들 안에, 가볍게 느껴지는 기도 안에, 더 작게 느껴지는 믿음 안에 있다. 그는 말씀하신다, 네가 가진 것을 가져오라. 다섯을 가져오라. 둘을 가져오라. 의심도 가져오라. 슬픔도 가져오라. 늦은 시간도 가져오라. 광야도 가져오라. 그리고 나서 그는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신다: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축사하시고, 떡을 떼시고, 나누어 주신다. 순서를 주목하라. 그는 축사하시고 그냥 두시지 않는다. 그는 축사하시고 떼신다. 깨짐은 축복의 일부이다. 당신은 지금 다른 사람들을 위해 깨지려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을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을 위해 깨지려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지금 그의 손 안에 있으며, 그의 손 안에 있는 것은 곱하여진다. 내일에는 또 다른 헤롯이, 또 다른 접시가, 장사지낼 또 다른 슬픔이, 타고 갈 또 다른 배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요한에 대한 소식을 들고 물러나 자신의 사람들과 함께 애도하신 그 예수님은 갈릴리의 풀밭에 서서 열두 바구니에 남은 것을 채우신 바로 그 예수님이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바로 그 자비가 겟세마네 문 앞에서 포효했다. 믿음은 내일이 고통스럽지 않으리라는 확실함이 아니다. 믿음은 내일의 떡이 어제의 떡을 떼신 바로 그 손에서 오리라는 확실함이다. 그러니 네가 가진 것을 가져오라. 때는 늦었다. 장소는 광야이다. 필요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는 친절함을 멈추지 않으셨다.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하도록 허락하셨는가?

요한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뜻 안에 있었습니다. 마태는 한 장 안에서 요한의 목 베임을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과 의도적으로 나란히 놓았습니다. 순교자의 피와 군중의 떡이 나란히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한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시대를 닫고 새로운 시대, 곧 더 큰 영광으로 빛나실 새 선지자가 나타나실 시대를 여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마 11:11-13).信仰는 하나님께서 모든 순교에 대해 설명하시기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 긴 장을 쓰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왜 "군중들을 보내라"고 했는지에 비해 예수는 왜 "그들을 먹여라"고 하셨는가?

제자들은 세상의 산수를 사용했다: 광야, 저녁, 은전 없음, 양식 없음 — 결론은 흩어보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산수를 사용하셨다: 그들이 가볼 필요가 없다 — 결론은 머물러서 베푸는 것이었다. 각자 자신이 본 것을 말하였다(요한복음 6:5–7 참조). 믿음은 부족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가진 바 적은 것을 여전히 주님의 손에 맡긴다.

믿음과 신뢰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믿음(피스티스)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인정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그 확신을 살아 실천하는 행동입니다 — 빵을 그분께 내밀고, 하루를 그분께 맡기고, 두려움을 그분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전에 고백하는 것이며, 신뢰는 보지 전에 행하는 몸짓입니다. 본문에서 두 단어가 한 순간에 함께 살아 있습니다: 광야의 황혼 속에서 제자들은 '오직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나이다'라고 고백함과 동시에 그들의 손을 예수님께로 내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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