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왕이 나귀 위를 달리셨다: 믿음과 신뢰 속으로의 입문

종려주일 주간에 예수님은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며, 단순한 신뢰로 그를 따르도록 제자들을 부르신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마태복음 21:1-20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러 벳바게에 와서 감람 산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그 안에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거든 주께서 이것이 필요하다 하시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의 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너의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하라 한 것이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그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시니 그가 그 위에 타시니라 무리의 대부분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others는 나무 가지를 잘라 길에 깔더라 앞서 가며 뒤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하늘 높은 데서 호산나 하더라 그가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니 무리가 이르되 이는 갈릴리 나사렛의 선지자 예수라 하더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사고 파는 모든 사람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뒤엎으시며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 맹인과 절름발이가 성전 안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가 행하시는 놀라운 일과 성전 안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분하여 이르되 네가 이 사람들의 하는 말을 듣느냐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너희가 차마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네가 어린 아이와 젖먹이들의 입으로 찬양을 온전하게 하셨다 하셨더라 그리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로 가서 거기서 유숙하시니라 아침에 그가 성으로 돌아오실 때에 시장하셨는데 길가에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가셨으나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그 나무에게 이르되 이제부터 영원히 너에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즉시 말라 버리더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즉시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일어나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기도하되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으리라 하시고 그가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에 가르치시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리라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에게로부터냐 그들이 마음으로 스스로 궁리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우리가 무리를 두려워하리라 하고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면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아들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가겠소이다 하였으나 행하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한 이같이 이르니 대답하여 이르되 가겠소이다 하였으나 가지 아니하니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맏아들이라 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으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고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후에 뉘우쳐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니라 다른 비유를 들으라 한 사람이 집 주인이 되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 술틀을 팟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의 때가 가까이 왔을 때에 그의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치고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들을 보내니 그들도 또한 그와 같이 하였더라 후에 그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그들이 공경하리라 하였으나 농부들이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그를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더라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무엇을 할꼬 와서 그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주리라 너희가 성경에서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이라 하신 것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것은 깨어질 것이요 이것이 누구든지 위에 떨어지면 그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 흩어버리리라 하시니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줄 알고 잡고자 하였으나 무리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알았음이더라 그리고 예수는 다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마치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과 같으니 궁전에 들어가 자기 신하들을 불러 혼인 준비한 자들을 청하였으나 그들이 오기를 허락하지 않더라 그들이 새벽에 나아와 자기 포도원이 마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주인에게 이르되 주인이 가서 그것을 넘어지게 하라 하시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서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이 말하신 것은 즉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였더라 모든 백성이 이 말씀을 듣고 놀라더라

마태복음 21:1–20(ESV)은 왕의 입장, 성전 정화, 그리고 눈 먼 자와 병든 자의 치유를 기록합니다 — 이는 힘이 아니라 항복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시는 메시아 왕의 모습입니다.

Narration

배경: 예루살렘의 봄

장면은 예루살렘 맞은편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 감람산에서 시작되며, 각 지역에서 몰려든 순례자들이 유월절을 맞으러 그 도시로 물결처럼 흘러 들어오고 있다. 예수는 갈릴리에서부터 의도적인 여정을 시작하여(누가복음 17:11), 옛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함을 선포했던 그 수도에 가까이 다가가고 계신다. 올리벳 산의 동쪽 경사면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벳바게에서, 예수는 두 제자를 앞서 보내며 알쏭달쏭한 지시를 내리신다 — 그들이 한 나귀와 그 새끼매거가 함께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하리니, 그것을 풀어 끌고 오라는 것이다. 누가 물으면 그 대답은 단순하다. '주께서 필요로 하시나라.' 마태는 이 세부 사항이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것은 시온의 딸이 자기 왕이 나귀와, 나귀의 새끼인 암나귀의 망아지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스가랴의 예언의 성취이다. 두 복음서 기자가 이 동일한 길을 따라간다. 마가복음 11:1과 누가복음 19:28은 바로 이 같은 좌표에서 도시로 향하시는 예수의 접근을 기록한다. 감람산은 수 세기 전에 스가랴 선지자가 마지막 날에 주께서 서 계시리라고 예견했던 바로 그 산마루이며(스가랴 14:4), 예수가 후에 종말 때에 관하여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앉으실 곳이기도 하다(마태복음 24:3). 예수가 들어가시는 그 도시는 헤롯 왕 시대의 영화를 누리던 예루살렘이다 — 거의 완공된 제2성전, 북서쪽으로 우뚝 솟은 안토니아 요새, 그리고 구속의 절기를 축하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

그 장소에서, 그 순간에

복음서 시대, 예수님의 사역이 펼쳐지신 다윗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며, 이스라엘에게 믿음이 처음으로 주어진 시내 산의 언약적 지리학을 되새기는 이야기입니다.

의미: 신앙과 신뢰의 형태

이 본문에서信仰은 감정이 아니라 자세를 말씀하옵니다. 제자들에게는 터무니없는 행동을 요구하시나이다 — 낯선 마을로 들어가고, 남의 짐승을 가져가며, 이름 모를 주인이 기꺼이 허락할 것을 신뢰하라 하시나이다. 그들이 순종한 즉, 그 결과는 옹호받음이 되나니 — 나귀는 청하면 곧 그들의 것이 되옵니다. 여기서의 신앙은 붙잡고 있는 것을 놓고, 계획이 불투명할 때도 앞으로 나아가며, '필요'하신 분이 또한 채워 주실 줄 신뢰하는 것으로 보이나이다. 반면에 신뢰는 왕 자신께서 드러내시는 주제이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때를 신뢰하시나이다 (종려주일은 아직 유월절 금요일이 아니니이다).祂께서는 자기 행보를 해석하실 성경을 신뢰하시며, 오늘은 '호산나'를 외치다가 금요에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할 그 불완전한 무리를 신뢰하시나이다. 祂께서 전마가 아닌 나귀를 타시나니, 이는祂의 나라가 정복이 아니라 희생을 통해 이룸이니이다. 무리의 호산나 — '우리에게 구원하옵소서!' — 는 곧 필요의 고백이옵니다. 성전에 그분께로 나아온 소경과 저는 같은 고백을 본떠 보이나니, 그들은祂 없이는 오를 수도, 볼 수도, 걸을 수도 없음이니이다. 그분께서 그들을 고쳐 주시니, 어린아이들이 또한 종교 지도자들을 당혹케 하는 같은 호산나를 따라 외치나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신뢰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옵니다. 풀린 줄에, 빌린 짐승에, 먼지 낀 길을 덮는 겉옷에, 아버지의 뜻 앞에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시는 왕의 항복에,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아는 자들의 부르짖음에 그것들이 행하여지는 것이니이다.

적용: 믿음과 신뢰를 삶에 나타내기

1세기 행진을 우리 일상의 질감 속으로 어떻게 번역할까? 제자들이 시작한 곳에서 시작하라: 한 마디 말씀에 순종하는 것. 예수님은 그들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 가서, 풀고, 데려오기를 요구하신다. 나귀가 주어지고, 길이 열린다. 우리 시대에도 믿음은 종종 좁은 지시로 시작된다 — 이 사람을 용서하라, 이만큼 주라, 이 이웃에게 말하라, 이 편안함을 떠나라. 그 지시는 결과에 비해 불균형해 보일 수 있으나, 순종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오는 나귀이다. 둘째, 호산나의 자세를 길러라. '호산나'는 '구원하소서, 내가 구하나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아는 자의 기도다. 맹인들과 절름발이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로 나아왔다. 그들은 자격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기를 기다렸다. 가까이 있기를 실천하라. 자신의 필요를 혼자 처리하지 말고 그의 임재 속으로 가져가라. 셋째, 왕 자신이신 예수님에게서 배우라. 신뢰는 종종 연약함처럼 보인다. 그는 나귀를 타신다. 그는 상한 자들을 고치신다. 그는 불의한 것을 뒤엎으시고, 그 도성을 향해 우신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권능은 과시가 아니라 절제를 통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대제사장들이 '분노로 가득 찼다'라는 것을 주목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저항하는 자기 보존의 자세이다. 믿음은 중단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며, 신뢰는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다가오는 한 주는 힘들 것이다. 십자가에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나귀 위에서 시작되며, 그 나귀로도 충분하다.

되새김

이 본문에는 쉽게 놓칠 수 있는 한 순간이 있습니다. 마태는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그대로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논의도 없었습니다. 위원회도 없었습니다. 플랜B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분부하셨기에 나귀를 풀었고, 나머지는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믿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결입니다 — 작고, 즉각적이며, 순종하는 — 그리고 이는 우주의 왕이 우리의 평범한 월요일을 찾아 들어오시는 문입니다. 나귀는 빌린 것이었습니다. 옷도 빌린 것이었습니다. 가지조차 타인의 나무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헌신된 남의 것들의拼 조각들로부터 하나님은 구원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연출하셨습니다. 아마 이것이 마태복음 21장의 초대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질 때까지, 자원이 충분해질 때까지, 길이 끝까지 환하게 비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고. 매인 것을 풀라. 가진 것을 가져오라. 그것을 자기가 필요로 하시는 분 앞에 내려놓으라. 그가 그 위에 앉으실 것이다. 그가 지나가실 것이다. 그리고 어느 왕도 지나기엔 너무 좁아 보이던 그 길이, 그가 당신을 구원하시러 오시는 거리가 될 것이다. 주간이 무거워지기 전에 오늘 호사나를 외치라. 나귀면 충분합니다. 왕은 그보다 훨씬 더 넘치십니다.

자주 묻는 질문

예수님은 왜 군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셨는가?

나귀는 겸손과 평화를 상징하며(스가랴 9:9 참조), 그의 왕국이 군사적 힘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으로 세워짐을 보여주었습니다.

호산나란 무엇을 뜻합니까?

호산나는 본래 히브리어로 '저희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간청으로(시편 118:25 참조), 예수님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메시아를 인정하는 환호의 외침이 되었습니다.

성전 정화는 믿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성전을 정화하신 것은 Genuine trust가 commerce와 religious power와의 compromise에 맞서서 하나님의 권위와 예배를 His house 안에서 다시 세우는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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