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광야에서 믿음으로 나아감

슬로브핫의 딸들이 회막 문 앞에 나서서 믿음으로 말하였으니, 약속된 땅이 보이기 전에 이미 그의 신실하심을 호소하는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옳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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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민수기 27:1-20

셀로헤핫의 딸들 곧 므낫세 족속 중 요셉의 아들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 길르앗의 아들 헤벨의 아들은 므낫세 족속이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 노아, 홉라, 밀가, 디르사라 그들이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나아와 회막의 문 앞에서 말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고라의 무리에 속하여 여호와를 대적하던 무리에 속한 자가 아니요 자기 죄로 죽었나이다 그가 아들이 없으니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족속 중에 없어지게 하지 마시고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 우리에게 기업을 주옵소서 모세가 그 송사를 여호와 앞에 나아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셀로헤핫의 딸들의 말은 옳도다 그들이 아버지의 형제 중에 기업을 얻을 것이라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가령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산업을 딸에게 주라 딸도 없으면 그 산업을 그 형제에게 주라 형제도 없으면 그 산업을 아버지의 형제에게 주라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그 산업을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주어 얻게 하라 하라 하라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규례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보라 그것을 보고 너도 네 형 아론 같이 조상에게로 돌아갈지니 이는 신인 광야 가데스에서 여호와의 물로 인하여 너희가 분쟁할 때에 나를 거룩히 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이 물은 신인 광야 가데스에 있는 므리바 물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들 앞에 나가고 들어가고 그들을 인도하여 나가게 하고 들어오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능력이 있는 자니 너는 그 위에 네 손을 얹고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를 위임하여 네 권위 중 일부를 그에게 주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그가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 판결을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엘르아살의 인청대로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 위에 손을 얹으며 위임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였더라

민수기 27:1–20에는 두 가지 신앙의 행적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기업의 상속을 구한 다섯 딸과, 아바림 산에 올라가 그가 들어가지 아니할 땅을 보도록 명받은 모세입니다. 이 두 순간은 모두 결과가 우리가 기대하던 것과 달라 보이더라도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Narration

장면 설정

민수기 27장의 사건은 약속된 땅의 문턱에서 일어난다. 이스라엘은 광야의 방랑을 마치고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요단 강을 마주 보고 있다. 가데스에서 반역했던 세대는 모두 죽고, 새로운 세대가 건너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결정적 순간에 므낫세 지파의 다섯 여인 — 말라, 노아, 흘갈, 밀가, 디르사 — 가 나아간다. 그들의 아버지 셀로렛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르면 그의 이름과 토지 소유권은 지파 등록부에서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딸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들은 회막의 입구에 모세, 제사장 엘르아살, 족장들, 그리고 온 회중 앞에 나서게 된다. 그들은 신중하게 신학적인 논변을 펼친다: 그들의 아버지는 고라의 반역이 아니라 자신의 죄로 죽었으나, 아들이 없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의 간청은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가족에게서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세는 혼자 판결하지 않는다. 그는 이 사건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고, 하나님의 판결이 임한다: 이 간청은 정당하다. 이스라엘을 위한 새로운 법규가 제정된다 — 상속은 아들이 없을 때 딸에게, 그 다음은 형제에게, 그 다음은 숙부에게, 그 다음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로 넘어간다. 그 다음 장은 모세 자신에게로 전환된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바림 산 꼭대기에 올라 땅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그도 역시 므리바 가데스의 물 사건으로 인해 그의 친족에게로 모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즉시 하나님께 그의 후계를 이을 지도자를 임명해 주시기를 청한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목자 없는 양 떼와 같이 되지 않도록. 요세푸스는 광야 시대의 이야기를 다시 서술하면서 셀로렛의 딸들에 대한 기억을 보존해 놓았으며, 딸들의 용기가 이후 이스라엘 전통에서 법적 추론의 기준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요세푸스, 고대사 4.7.5). 배경은 진입 전 마지막 정착지이며, 정서는 기대와 슬픔이 뒤섞인 상태이다 — 이스라엘이 건너갈 것이라는 기대, 모세는 건너지 못한다는 슬픔. 이 두 가닥의 정서는 신앙에 관한 동일한 교훈을 향해 장을 이끌어 간다.

시공간 스냅샷

출애굽-법 시대에 모압 평원, 약속의 땅 변두리에 놓인 이 장면은 민수기 27장에 기록된 것으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 준비하는 가운데 지도력과 유산의 결정적 전환을 이룹니다.

본문의 의미

민수기 27장은 신앙과 신뢰를 두 가지 다른 양상으로 드러냅니다. 첫째, 슬로핫의 딸들은 능동적 신뢰를 보여줍니다 — 몸과 목소리를 움직이는 에무나(믿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 상황을 해결하실지를 보며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약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개적 공간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의 주장 또한 하나님의 성품을 향한 신뢰의 행위입니다. 그들은 이집스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이 obscure한 가족의 이름이 약속하신 땅에서 사라지지 않게 돌보시는 분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법적이며, 신학적이며, 용감하게 공개된 것입니다. 둘째, 모세는 수용의 신앙을 체현합니다. 그는 올라가서 바라보되, 들어가지는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의 이전 메리바-가데스에서의 죄가 그와 땅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장은 모세가 변론하거나 협상하는 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후계를 세워 주실 것을, 공동체를 위해 요청함으로써 응답합니다. 그의 신뢰는 여기서 더 어려운 종류의 신뢰입니다 — 하나님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신뢰, 그리고 자신의 순례가 국경에서 끝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돌봄이 그를 통해 계속된다는 신뢰입니다. 신학적 중심은 신앙이 상실이나 제한의 부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의 사건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가져가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들일 willingness입니다 — 딸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유업의 허락이 그 판결이든, 모세에게 주어진 것처럼 들어가지 않고 바라보게 함이 그 판결이든. 두 응답 모두 이스라엘을 위한 전진적 움직임을 야기합니다. 새로운 유업 법과, 백성을 이끌도록 위임된 지도자. 따라서 이 장의 신앙 신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그것은 관계적이며, 사건들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그것은 공동체적이며, 왜냐하면 판결이 온 회중에게 주어져 이스라엘이 땅을 분배하는 방식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말론적이며, 아직 완전히 누리지 못하는 소유를 — 모세에게, 그리고 곧 요단을 건너려 서 있는 온 세대에게 — 가리킵니다.

살아내는 삶

어떻게 우리가 셀로핫의 딸들과 모세의 믿음을 한 장 안에서 살 수 있을까? 본문에서 세 가지 습관이 드러난다. 첫째는 정직하게 그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것이다. 딸들은 자기 아버지의 죄를 축소하지 않았다. 그들이 아버지가 자기 죄로 죽었다는 것을 인정한 다음 정의의 문제를 강력히 제기했다. 믿음은 삶이 복잡하지 않은 척하지 않는다. 복잡함을 짚어 이름 붙이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다. 두 번째 습관은 하나님의 판결이 공동체의 기준을 다시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 딸들의 사례에서 나온 법도는 대대로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바꾸어 놓았다. 믿음은 때때로 아직 회중 안에서 아무도 감히 묻지 못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의미하며,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 그 적용을 다듬으실 수 있음을 신뢰한다. 세 번째 습관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세는 요단을 건너지 못하지만, 그가 가치 있는 후계자를 정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계속 백성을 돌보았다. 믿음은 슬픔과 앞으로의 움직임을 함께 붙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받지 못할 것을 애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받을 것에 기꺼이 헌신하는 것을 허락한다. 일상적으로 이것은 특정한 결말을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아이의 다음 발걸음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는 부모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혹은 자신의 평생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 이후까지 이어질 사역을 위해 기금이나 기도를 베푸는 신자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민수기 27장에서의 믿음과 신뢰는 얻음과 잃음 어느 한쪽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양쪽을 동시에 붙드는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향한 방향이다.

되새김

주 하나님, 만물의 숨결의 근원이시여, 우리에게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정직한 일을 당신 앞에 가져오는 용기와, 우리 희망과 다르더라도 당신의 판단을 신뢰하는 모세의 겸손을 주소서. 우리를 가르치시되, 신앙은 한계의 부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당신과 함께 걸어가려는 의지임을 알게 하소서. 모압 평야의 이스라엘처럼, 당신이 약속하신 모든 곳으로 건너가도록, 그리고 그 길에서 우리 곁에 두신 백성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소서. 아멘.

자주 묻는 질문

성막 앞에서는 어찌하여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던고뇨

그들은 회막 앞으로 나아왔으니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 그의 송사를 들으시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온 회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아온 것은 그들이 여호와께서 온 회중 앞에서 의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신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세에게 아바림 산으로 올라가라고 명하는 같은 장에서 왜 후임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는 것인가?

모세의 신앙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백성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중보하는 것을 포함함을 보여준다. 그는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누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들어갈 것인지를 염려한다.

이 장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어떻게 faith(신앙)와 trust(신뢰)를 적용하고 있습니까?

믿음과 신뢰는 단지 조용한 기다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딸들처럼 정당한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용기와, 우리가 스스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하는 수용을 포함합니다 — 믿음은 용기와 수용을 함께 붙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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