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싸움 속에서 믿음을 견지함

믿음은 단순한 신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명령하시는 분을 신뢰하는 순종이며, 그 명령이 이행하기 어렵게 여겨질 때에도 그러하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민수기 31:1-20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미디안 사람들에게 보복하라. 그러면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되, "너희 중에서 군사를 택하여 파견하라. 그들로 미디안을 치러 가서 하나님의 복수를 미디안에게 행하게 하라.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천 명씩 그 전쟁에 보내라." 이스라엘 각 지파의 군대 중에서 각 지파의 천 명, 곧 전쟁에 선발된 일만 이천 명이 장비를 갖추었다. 모세가 그들을 전쟁에 보내셨는데, 각 지파의 천 명씩이요,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전쟁에 동행하되, 성기들과 나팔을 갖추었다. 그들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치러 나가서 모든 남자를 죽였다. 그들은 또 다른 죽임 당한 자들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곧 에위와 레겜과 술과 훌과 레바 미디안의 다섯 왕이요,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미디안의 여인들과 비전투 남자를 사로잡고, 그들의 가축과 생축과 재물을 노략물로 가져갔다. 그들이 거주하던 모든 성읍과 그들의 진영을 불로 태웠다. 그들이 노략한 모든 것, 사람과 짐승을 다 거두어 모아, 사로잡은 자와 노략한 것과 약탈한 것을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로 가져왔다. 그 곳은 모압 광야의 진영이요, 여리고 맞은편 요단 강 가에 있었다.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모든 족장이 진영 밖으로 나와서 그들을 맞았다. 모세가 군대의 천부장과 백부장 곧 전투에서 돌아온 지휘관들에게 노하셨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자를 다 살려 두었느냐! 그것들은 발람의 꾐을 좇아 이스라엘 자손을 비벵의 일로 하나님께 범죄하게 한 자들이니, 이로써 하나님 회중에 전염병이 내리게 하였다. 그러므로 비전투자 중의 모든 남자를 죽이고, 남자와 함께 육 관계를 가진 여자도 죽이라. 그러나 남자와 육 관계를 가지지 않은 비전투 여성은 너희희 삶을 위해 남겨 두라. "그리고 너희는 진영 밖에서 칠 일을 지낼지니, 너희 중이나 너희 사로잡은 자 중에 사람을 죽인 자나 사체를 만진 자는 제삼 일과 제칠 일에 스스로 정결하게 하라. 또 의복과 가죽 그릇과 염소 털로 만든 모든 것과 나무로 만든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라." 제사장 엘르아살이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규례이니, 금과 은과 놋과 철과 주석과 납, 곧 불을 견딜 수 있는 모든 기구는 불을 통과시켜 정하게 하되, 정결하게 하는 물로 더 정결하게 하라. 또 불을 견딜 수 없는 것은 물을 통과시키라. 제칠 일에 너희는 너희 의복을 빨아서 정하게 하라. 그 후에야 진영에 들어올 수 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회중의 가문의 어른들은 사로잡은 노략물, 곧 사람과 짐승의 수를 세어, 전쟁에 참여했던 전사들과 나머지 회중에게 똑같이 나눠 가지게 하라. 너희는 하나님을 위하여 거두어 낼 것을 정하라. 전쟁에 참여했던 전사들의 반분에서 사람과 소와 나귀와 양의 오백분의 일을 취하여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삼고, 나머지 이스라엘 자손의 반분에서도 매 오십분의 일 곧 사람과 소와 나귀와 양 곧 모든 짐승을 덜어내어 하나님의 성소를 관리하는 레위 사람에게 주라.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군대가 약탈한 것을 제외한 노략물의 수효는 양이 육십칠만 오천 마리, 소가 칠만 이천 마리, 나귀가 육만 일천 마리, 그리고 남자와 육 관계를 가지지 않은 여자가 합 삼만 이천 명이니라. 전쟁에 참여했던 자의 반분은 이러하니, 양의 수효가 삼십삼만 칠천오백 마리이요, 그 양 중에서 하나님의 몫은 육백칠십오 마리요, 소가 삼만 육천 마리이요, 그 중에서 하나님의 몫은 칠십이 마리요,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이요, 그 중에서 하나님의 몫은 육십일 마리요, 사람의 수가 일만 육천 명이요, 그 중에서 하나님의 몫은 삼십이 명이니라. 모세가 하나님을 위하여 거두어 낸 것을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이니라. 전투에 나갔던 자에게서 모세가 덜어 낸 나머지 이스라엘 자손의 반분은 양이 삼십삼만 칠천오백 마리요, 소가 삼만 육천 마리요, 나귀가 삼만 오백 마리요, 사람이 일만 육천 명이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반분에서 모세가 매 오십분의 일 곧 사람과 짐승을 덜어내어 하나님의 성소의 직무를 수행하는 레위 사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이니라. 군대의 천부장과 백부장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말하되,

민수기 31:1–20은 하나님의 명령 아래 이스라엘이 미디안에 대해 행한 원정을 기록합니다. 여기서 신앙이란 소극적인 신뢰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값비싼 순종입니다. 각 지파에서 천 명씩, 제사장 비느하스가 이끌고, 성기(聖器)와 나팔을 가진 채로 나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백성이 흔들릴 때(발람이 선동한 브올 사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마침내 신실함으로 응답할 때 신뢰가 어떤 모습인지를 드러냅니다.

Narration

이스라엘의 미디안에 대한 최후의 심판

민수기의 마지막에서 이스라엘은 모압의 초원에 진을 치고 있다. 요단 강 건너편, 여리고 맞은편, 약속된 땅의 입구에. 이스라엘이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상처를 째야 한다: 브올의 유혹이다. 발람의 권고(민수기 31:16)를 통해 미디안 여인들이 이스라엘을 브올에서 우상 숭배와 성적 음란으로 끌어들였고, 재앙이 진영을 휩쓸어 2만 4천 명이 죽었다. 이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자손을 미디안 사람에게서 보복하라. 그런 다음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31:1-2). "그런 다음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라는 표현은 이 마지막 사명의 순종을 모세 자신의 죽음과 연결한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지만, 여기서 그의 신실함이 그의 길을 완성한다. 각 지파에서 천 명씩, 모두 합해 1만 2천 명이 소집되고, 브올에서 그 부부를 창으로 찔러 재앙을 물리친(민수기 25:7-8, 11) 바로 그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성기(聖器)와 신호용 나팔을 들고 그들을 이끈다. 이 글은 기본 본문 너머의 추가 TSK 상호 참조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그림은 민수기 자체에서 그려져야 하며, 브올 사건과 성전(聖戰)의 제사장적 틀에 고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리학은 동쪽 광야, 곧 모압의 초원, 여리고 근처의 요단, 그리고 그 선의 남쪽과 동쪽에 있는 미디안 영토이다.

지상과 공중에서

모압 평지, 곧 여리고 맞은편 요단 건너편,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어귀에 진을 치던 곳.

뜻: 신뢰하는 것은 끝까지 순종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민수기 31장은 전쟁 서술이며, 현대의 독자들은 종종 그 앞에서 움츠러든다. 信心与信靠(신심과 신뢰)의 렌즈를 통해 읽으면, 이것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곧, 언약의 백성이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초상화이다. 이 장은 세 가지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흐름은 신뢰의 서로 다른 면을 시험한다. 첫째, 집회의 순종이 있다. 모세는 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으며, 명령을 더 먹기 좋게 만들기 위해 협상하지도 않는다. 각 지파에서 천 명, 총 일만 이천 명이 '뽑혀' 갖추어진다. 여기서 신앙은 수적이고 가시적이다. 그것은 모습을 드러낸다. 둘째, 동행의 순종이 있다. 군대는 비느하스와 법궤의 기구와 나팔과 함께 나아간다. 신앙은 자기가 좋을 대로 싸우지 않는다. 그것은 거룩하게 싸운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마음을 찌르는 부분인데, 분별의 순종이 있다. 군대가 여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서 돌아오자 모세는 노여워한다(31:14). 왜냐하면 이 여자들은 바로 '발람의 꾀에 따라 브올의 사건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거스르게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31같이 16). 위험을 무시하는 긍휼은 신앙이 아니라 감상주의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동정심이 일어나는 대상뿐 아니라 현재의 위협이 누구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 신앙은 낙관이나 따뜻함이 아니다. 그것은 정렬이다. 명령과, 하나님이 한가운데 놓으신 거룩한 것들과, 하나님이 부패시키는 것에 대해 내리시는 verdict(판결)와 나란히 선다.

적용: 오늘날 우리가 신뢰하는 방식

우리들 중 군대에 편성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예수님의 모든 제자는 대가를 요구하는 전투에 징집됩니다. 본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세 가지 적용이 나옵니다. (1) 거룩한 것을 가지고 나서라. 비느하스가 거룩한 기물을 가지고 나섰습니다. 이것은 누가率领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표지였습니다. 새 언약에서 거룩한 것들은 성령, 말씀, 그리고 모인 교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험, 도덕적 실패, 관계의 전쟁, 문화적 표류를 혼자 또는 맨손으로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방법을 가져오십시오. (2) 정해진 분배를 받아들이라. 일만 이천 명이 택함받았지 온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을 같은 때에 같은 보직으로 부르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천에 시기하지 않고, 그가 정해 주신 특정한 몫, 곧 당신의 천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께서 표시하신 것을 아끼지 말라. 모세의 분노는 교훈을 줍니다. 본문 끝에서는 "[아이들] 중 모든 남자를 죽이라"고 명령하며 남자를 알지 못한 자들만 살려 두라고 합니다. 이 원칙은 앞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삶에는 살아 있고 심지어 불쌍해 보이는 영향력, 관계, 습관, 그리고 심지어 사역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 안에서 계속하여 브올의 원인, 곧 우상 숭배와 부정으로 이끄는缓慢한 유혹의 매개체가 되어 왔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감정의 판단보다, 아무리 아프더라도 하나님의 판단을 신뢰합니다. 참된 신뢰는 부드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복한 것입니다.

되새김

믿음과 신뢰는 결국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자태이다. 베오르에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감정이 있었다 — 그들은 여전히 그분께 제사를 드렸다 (민수기 25:2) — 그러나 그들의 감정은 그들을 모압 여인의 장막에서 막지 못했다. 민수기 31장의 이스라엘은 이만 사천 개의 무덤을 통해 감정들이 소진되었고, 남은 것은 조심스럽고 값비싼 순종이다. 내게 남는 이미지는 나팔들이다. 비느하스는 소리를 내기 위해 그것들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주기 위해 들고 다닌다 — 이동을 위한 긴 신호, 집회를 위한 날카로운 신호, 앞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것들을 위한 지속되는 음이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로 올바른 신호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울릴 때 움직이는 일이다, 그 방향이 거친 땅 속으로 향한다 할지라도. 어쩌면 오늘 당신의 삶에서 나팔이 울리고 있고, 그것이 가리키는 길은 당신이 택함하지 않았을 길일 것이다: 어려운 대화, 값비싼 순종, 당신을 서서히 부패시켜 온 무언가로부터의 분리. 우리 앞에 있는 장은 말한다: 하나님이 주신 분량대로 거룩한 것들과 함께 그 길을 들어라, 그리고 전쟁을 명령하시는 분이 또한 당신을 집으로 데려오는 방법을 아신다는 것을 신뢰하라.

자주 묻는 질문

이스라엘이 미디안에 대한 복수를 취하라고 명하신 이유가, 신앙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발람의 권고로 미디안 사람이 브엘브올에서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와 음란으로 유혹하매 진영에 재앙이 휩쓸었더라(민수기 25장; 31:16). 이 복수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거룩함을 지키시기 위한 질투이심이다. 여기서 신앙이란 우리의 동정에 맞추어 그의 명령을 수정하는 대신, 위험한 것과 거룩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 비느하스가 왜 군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나요?

비느하스는 그의 열심으로 브올의 재앙을 멈추었던 그 제사장이었다(민수기 25:7-13). 그는 성물과 나팔을 들고 이 전쟁이 주님께 속한 거룩한 전쟁임을 알렸다. 신앙의 순종은 성소에서 이끌리고 준비되며, 들판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세가 돌아온 장교들에게 왜 분노하였는가?

그들은 미디안 여인들을 살려두었으니, 바로 그들은 브올에서 이스라엘을 죄로 끌어들인 자들이었다(민수기 31:15–16). 타락의 매개체를 보존하는 긍휼은 신앙이 아니라 순진함이다. 신앙은 긍휼 안에서도 분별력을 요구하며, 결백해 보이는 것이 모두 무해한 것은 아님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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