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상처를 헤치고 나아가다: 고난과 위안 사이에서

마카비告别는 충성이 배반을 만날 때, 하나님이 여전히 전사의 발 아래 반석으로 남아 계심을 보여줍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마카베오상 16:1-20

요단이 가사자라에서 올라와서 그의 아버지 시몬에게 겐드베우스가 행한 일을 알렸다. 시몬이 그의 두 아들인 장자 유다와 요단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형제들과 내 아버지의 집은 우리 청년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전쟁을 위하여 싸워 왔고, 우리의 손에 일이 형통하여 우리가 여러 번 이스라엘을 건져 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늙었고, 너희는 그의 긍휼로 나이가 무르익었다. 너희는 나와 내 형제의 자리를 이어 받아 나가서 우리 민족을 위하여 싸우라. 그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이 너희와 함께 있기를 빈다.” 그리하여 요단이 그 지방에서 2만 명의 전사와 기병을 택하매 그들이 겐드베우스를 향해 행군하여 모데인에서 밤을 지냈다. 이른 새벽에 그들이 일어나서 평지로 행군하니, 보라, 보병과 기병의 큰 군대가 그들을 맞아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시내가 놓여 있었다. 그때에 요단이 그의 군대와 함께 그들을 향하여 줄을 세웠다. 그가 그 병사들이 그 시내를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그가 먼저 건넜다. 그의 군인들이 그를 보고 그의 뒤를 따라 건넜다. 그런 다음에 그가 군대를 나누어 보병의 한가운데에 기병을 배치하였으니, 이는 적의 기병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팔을 불었더니 겐드베우스와 그의 군대가 도주하였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부상하여 엎어졌고, 나머지는 요새 속으로 도망하였다. 그때에 요단의 형제 유다가 부상을 입었으나, 요단이 그들을 추격하여 겐드베우스가 세운 곳인 케드론에 이르렀다. 그들은 또 아소투스의 들에 있는 망대 속으로 도망하였고, 요단이 그것을 불로 살랐으며, 그들 가운데 약 2천 명이 쓰러졌다. 그가 유대로 무사히 돌아왔다. 시몬과 그의 아들들의 살해 이제 아부부스의 아들 프톨레미가 여리고 평원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있었는데, 그가 은과 금이 많았으니, 이는 그가 대제사장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그는 그 나라를 장악하려 결심하고, 시몬과 그의 아들을 없애 버리려고 그들에 대하여 배신적인 계획을 꾸몄다. 시몬이 그 나라의 여러 성을 돌보며 그들의 필요를 돌보고 있었는데, 그가 그 백칠십칠 년, 곧 쉐밧월인 열한째 달에 마태야스와 그의 아들 유다와 함께 여리고로 내려갔다. 아부부스의 아들이 그가 세운 작은 요새인 독에서 그들을 배신적으로 맞아들이고,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그 곳에 사람들을 숨겨 두었다. 시몬과 그의 아들들이 취하였을 때에 프톨레미와 그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들의 무기를 잡고 잔치장에 있는 시몬에게로 돌입하여, 시몬과 그의 두 아들과 그의 종들 가운데 몇을 죽였다. 그리하여 그가 큰 배신의 행위를 저지르고 선에 대하여 악으로 갚았다. 요단이 시몬을 이어받아 차지함 그때에 프톨레미가 이 일들에 관한 보고서를 써서 왕에게 보내어 그에게 군대를 보내어 자기를 도우며 그 성들과 그 나라를 자기에게 넘겨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가 요단을 죽이려고 다른 사람을 가사자라로 보냈고, 그에게 은과 금과 선물을 주려고 그들이 자기에게 오도록 요청하는 편지를 지휘관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과 성전 산을 점령하려고 다른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앞서 달려가서 가사자라에 있는 요단에게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이 죽었으며, 그가 “또한 당신을 죽이려고 사람을 보냈다”고 알렸다. 요단이 이것을 듣고 크게 놀랐으며, 자기를 멸하러 온 그 사람들을 잡아서 죽였으니, 이는 그가 그들이 자기를 멸하려고 꾹하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요단의 남은 행적과 그의 전쟁과 그가 행한 용맹스러운 행위들과 그가 쌓은 성벽과 그의 업적들은, 그의 아버지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때로부터, 그의 대제사장 역대의 기록에 기록되어 있다. 보라, 그것들이 거기 기록되어 있다.

1 마카베오 16:1-20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들에게로 전해진 신앙의 훈련과, 고난이 언약 공동체 내부에서—곧 시몬의 사위인 프톨레마이 자신에게서—올 수 있다는 아픈 현실을 함께 담고 있다. 이 장은 슬픔과 용기를 같은 손에 쥐고 있다.

Narration

배경: 하스몬 왕조의 황혼기

마카보기 1권 16장에 이르러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치명타는 옅어져 가고 있었지만 유다의 땅은 여전히 셀레우코스 왕조의 잔존 세력, 이웃 민족들, 그리고 하스몬 왕조 내부의 야망 사이에 다투는 변방 지대였다. 맛디야의 살아남은 아들 시몬은 수십 년에 걸친 반란 이후 유대를 안정시켰다. 그의 장남 요안 히르카누스는 후계자로 준비되고 있었다. 1–10절의 군사적 에피소드는 규모가 작다— 모데인에서 켄데베우스와의 작은 교전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의 신학은 거대하다. 시몬은 지휘권의移交을 정치적 승계가 아니라 언약적 청지기직으로 제시한다. 나와 내 형제들과 내 아버지의 집은 우리의 청년기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의 전쟁들을 싸워왔으며, 우리의 손 안에서 일이 형통하여 우리가 여러 번 이스라엘을 구원해 왔다. 그분의 긍휼로(ἐν τῷ ἐλέει αὐτοῦ)라는 표현이 그 단서가 된다. 마카보기의 승리조차 하스몬의 근육이 아니라 신적 긍휼에 귀속된다. 본문后半(11–20절)에서는 예리고의 총독이자 시몬의 사위인 아부부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가 등장하는데, 그의 마음이 들떴다. 배신은 이제 더 이상 외부에 있지 않다. 그것은 혼인 반지를 끼고 있다. 이것이 후에 최종적이고 신실한 다윗적 왕에 대한 신약의 동사들이 자라나게 된 구약과 신약 사이의 토양이다.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 1.2.3–4권과 고대사 13.8.1권에서 동일한 사건들을 기록하며, 프톨�레마이오스가 곧 다크에서 잔치 중에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살해할 것임을 지적한다— 우리가 받은 본문을 괴롭히는 그 야만적 행위.

시공간: 모딘, 케드론, 그리고 아소돗의 탑

첫 성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묵상은 다윛 시대의 예루살렘 맥락과 여리고附近的 유다 풍경에 기대어, 언약의 징계 아래 고난과 신실함에 대해 깊이 되돌아보게 합니다.

뜻: 고통의 두 가지 근원

이 장은 고난이 두 방향에서 동시에 온다는 점, 그리고 위로도 그 두 방향 모두에 응답해야 한다는 점을 조용히 가르친다. 첫 번째 출처는 명백한 것이다: 외부의 적들. 싯두베우스는 하나님의 백성 위에 가해지는 적대적 세력들의 끊임없는 압력을 대표한다. 요한의 대응은 모범적이다—병사를 모집하고, 계획을 세우고, 먼저 건너편으로 건너가, 군대를 나누고, 기병대의 우세를 신뢰하며, 나팔을 울린다(민수기 10장의 제사장의 신호).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고난은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3절)에 근거한 단련된 용기로 맞선다. 두 번째 출처는 더욱 참혹하다: 신앙의 가정 내부에서 오는 배신. 프톨레마이는 시므온의 사위로, 시므온이 민정 권한을 부여하고 언약의 경제에서 나온 은금으로 채워준 인물이다. 그의 '마음이 교만해졌는데'—이는 바로 파라오, 웃시야,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와 동일한 히브리적 심리다. 내부로부터 오는 고난은 요한의 기병대 전략으로 물리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인내할 수 있을 뿐이며, (이후 성경이 명시적으로 드러내듯) 로마서 8장 28절이 언젠가 명료하게 진술할 신뢰, 곧 하나님이 만사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신뢰로만 이길 수 있다. 이 장이 제공하는 위로는 따라서 두 배가 된다. 외부의 위협에 대해서는: 용기를 내어 시내를 건너고 나팔을 울리라; 하늘은 먼저 나서는 자들을 돕는다. 내부의 배신에 대해서는: 슬퍼하되 직책을 버리지 말라; 위로는 상처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의 youth(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 긍휼을 베푸신 주님의 현존이다. 요한의 형 유다는 부상을 입는다(8절)—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부상을 입는다. 이 단일 동사가 이 책의 더 큰 신학을 암시한다: 의로운 자는 상처를 입으나 궁극적 멸망은 당하지 않는다.

용도: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내부에서 배반당할 때

거룩한 자들이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가장 어려운 싸움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겐데베우스는 다루어낼 만한 상대이다. 그는少なくとも 자기를 멸하려는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프톨레미는 상처다—신앙의 가족 안쪽에 있는 사람, 권위를 위임받은 자, 언약의 관대함에서 재물을 얻었으나 이제 잔치의 상에서 모의를 꾸미는 자.这样的 순간에 마카비의 형상을 가진 제자도是什么样的 세 번째로, 상처는 끝이 아님을 기억하라. 유다는 상처를 입었으나(8절) 그 장은 그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종종 이 장(章)에서 상흔을 허락하시어 다음 장의 사역이 피를 흘렸던 사람의 신뢰성을 지니게 하신다. 네 번째로, 프톨레미의 논리를 거부하라. 높아진 마음은 배신이 임박한 진단적 증상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설득하여 더 많은 권위, 더 많은 재물, 더 많은 통제를 정당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여리고의 잔치에 있다.这样的 순간에 우리가 붙드는 위안은 부정이 아니라 고백이다. '그의 긍휼로 인해'—2절에서 시몬이 사용하는 바로 그 표현—는 신앙의 가정을 젊음에서 늙음까지 붙들어 왔으며, 우리 또한 붙들어 줄 것이다.

되새김

1 마카베오서 16장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을 때에는 특별한 아픔이 있다. 몇 구절 안에서(21–22), 프톨레마이는 닥에서 시몬과 그의 아들들을 살해할 것이다. 전쟁의 영웅은 전장에서 죽지 않고 잔치에서 가족에 의해 살해된다. 그럼에도 이 장은 우리를 짓누르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도움'이 여전히 신뢰할 만하다고 믿는, 그러므에도 하늘의 도움이 상처를 막기에는 제때에 이르지 않는 상황에서도 신뢰할 만하다고 믿는 저자에 의해 쓰여졌다. 아마 이것이 성경적 위로의 가장 깊은 형태일 것이다: 우리가 피를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것이 마지막 장을 쓰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시몬의 믿음은 요한이, 요한의 믿음은 그의 후손들이, 그리고 궁극적으로 다윗의 더 위대한 아들이신 분에 의해 이어질 것이다. 그분 또한 아는 자들로부터 상처를 입고 성벽 밖에서 살해되시지만, 그분의 부활은 모든 프톨레마이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응답이시다. 그 응답이 우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요한이 한 것을 한다: 먼저 강을 건너고, 나팔을 울리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은 새 힘을 얻으리라'(이사야 40:31)를 신뢰한다. 상처는 진짜이다. 위로는 그것보다 더 오래되었다.

자주 묻는 질문

시몬이 어찌하여 그 승계를 하나님의 긍휼에 돌리는가?

시몬은 자신의 청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하스몬 전쟁이 벌어진 것을 하나님의 긍휼로써 지속되어 왔다고 인정한다. 마카베오 신학은 하늘이 주신 것을 인간의 무력에 돌리는 것을 거부한다.

유다가 왜 부상만 입고 죽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것이 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살해됨'이 아니라 '상처 입음'이라고 신중히 언급함으로써, 의로운 자가 최종적인 멸망이 아닌 상처를 입는다는 신학을 암시하며, 이는 성경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패턴이다.

오늘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프톨레마이의 배신은 무엇을 경고하는가?

믻레이타사이의 들뜬 마음과 그의 은과 금은 모두 언약 공동체 안에서 나왔으니,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보이는 전장 위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 함께하는 식탁에서 종종 비롯된다는 엄중한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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