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기다림 가운데 봄: 초대 제자들의 믿음과 신뢰

예수님이 승천하셨을 때, 제자들은 그들이 제어할 수 없는 기다림 속으로 부름받았고 — 바로 그곳에서 믿음과 신뢰가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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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사도행전 1:1-20

테오필로여, 내가 첫째로 쓴 글은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그가 성령으로 택하신 사도들에게 명하시고 그들에게 보여 주신 그 날, 곧 그는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 기록한 것이니라. 그는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여러 확실한 증거로 보여 주시되,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나타나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하셨고, 또 함께 모이셨을 때에 그들에게 명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내 들은 바 되었느니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모여 있을 때에 예수께 여쭈되, 주여, 이 때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겠나이까 하니, 그가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으로 정하신 때와 시기는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니라. 너희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이 볼 때에 그는 들려 올라가시며 구름이 그들을 떠나 그를 데어가더라. 그가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향하여 눈을 돌리고 있을 때에 갑자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옆에 서서 말하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예수는 너희가 올라가는 것을 보던 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하더라. 그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 가도록 가까운 거리라. 들어가서 그들이 거하던 다락방에 올라가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인 시몬과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거하였고, 그들이 모두 일심으로 여자와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아우들과 함께 기도에 힘쓰더라. 그 날 중에 형제 중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모인 사람의 수가 약 백이십이라),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여 예수를 잡은 자들을 끌던 유다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여야 하리니, 이는 그가 우리와 같이 그 수를 받은 자이요 또 이 직분에 참여한 자라. (이 사람이 죄의 값으로 받은 밭로써, 거꾸러져 배가 터져 모든 창자가 쏟아졌더니.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그 밭을 그들의 방언으로 악헬다마라 하니, 곧 피 밭이라 하더라.) 시편에 기록된 바,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고, 거기 거하는 사람 없게 하시며, 또,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시던 때부터, 곧 요한의 세례로부터 그가 우리에게서 들려 올라가신 날까지 항상 함께 한 사람 중에서 하나가 그 부활의 증인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한 사람이 될 것이니라. 이들이 두 사람을 세우니, 하나는 바르사바라 하는 요셉으로 별명은 유스도라 하고,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만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하사, 이 직분과 사도의 직무를 받게 하옵소서, 유다가 이 직분을 버리고 자기 곳으로 가더이다. 그들이 두 사람을 위하여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맛디아에게 떨어지매 그는 열한 사도와 함께 든히 세운 바 되었다.

사도행전 1:7-20은 구원사의 결정적 전환점을 기록한다. 히나코는 사십 일 동안 많은 확증으로 자신이 살아 계심을 입증하신 후, 마지막 명령을 내리신다: "머무르라, 기다리라, 그리고 받으라." 본문은 승리적 정복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빌은 무리를 거느리고 텅 빈 하늘을 응시하다가, 그런 다음 다락방으로 돌아가 기도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Narration

맥락

사도행전은 두 권으로 구성된 저작의 두 번째 권으로, 누가복음 1:3에서 소개된 동일한 독자 데오빌로에게 보내진 글이다. '이전 책'(누가복음)은 부활과 승천으로 끝났다. 이 새로운 책은 제자들이 감람산에 서서 방금 예수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배경 설정이 결정적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 거리(약 2,000규빗) 떨어진 곳, 도시와 성전을 내려다보는 감람산의 능선 위에 서 있다. 십자가로부터 40일이 지났다. 예수는 나타나시고, 음식을 드시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제 떠나신다. 누가복음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천사적 사자들을 연상시키는 흰 옷을 입은 두 남자(누가복음 24:19; 마태복음 4:23–24는 예수의 치유와 증언 사역을 기술한다)는 이 순간을 재구성한다. 이 떠남은 버림이 아니라 대관식이다. 제자들의 질문—"주님, 이 때에 이스라엘에 왕국을 회복하시겠나이까?"—은 그들의 믿음이 여전히 메시아에 대한 정치적 상상에 매달려 있음을 드러낸다. 예수는 그들을 꾸짖지 않으신다. 그들의 신뢰를 재구성하신다. 때와 계절에 대한 권능은 아버지께 속한다. 그들의 부르심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까지 지리적으로 나아가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누가복음 3:23의 예수의 족보와 마태복음 11:5가 그리는 메시아의 사역의 초상은 신학적 배경을 형성한다. 왕국은 이미 인격으로 오셨고, 이제 그 확장은 성령 충만한 평범한 갈릴리 사람들에 의해担이 운반될 것이다. 본문은 14절에서 문장 중간에 끝난다. 마지막 만찬의 장소로 전통이 알려진 바로 그 다락방에서 공동체가 모이고, 열한 사도와 여성들,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 본문에서 믿음은 아직 2장의 대담한 선포가 아니다. 그것은 기다리라 고지받은 자들의 떨리는 자세이다.

시공간

초대교회 시대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을 중심으로 다윗의 도시에서 시내 산의 메아리까지 뻗어 있으며, 승천 이후 사도적 신앙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의미

이 본문은 현대 교회가 종종 저항하는 방식으로 faith와 trust를 정의한다. 여기서 faith는 아직 확신에 찬 고백이 아니다. 여기서 trust는 아직 보이는 기적이 아니다. Faith는 모든 본능이 행동하라고 말할 때 다락방에 머무는 것이다. Trust는 아직 보지 못한 약속이 '며칠 못 되어' 이루어지리라 믿는 것이다. 이 본문에는 여러 신학적 맥락이 흐른다: 첫째, faith는 기다림의 순종이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 명을 받는다. 세상에서 이 순종은 무위(無爲)로 보인다. 그러나 본문은 이 고요함을 성령을 받기 위한 필요한 토양으로 다룬다. 하나님의 때를 앞서 달려가는 신자는 충만함을 잃고, 거함(거하며 머무름)하는 신자는 능력을 받는다. 둘째, trust는 시간표의 항복이다. 제자들이 묻는다, "주님이 이 때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겠나이까?" 예수님은 때와 기한이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다고 답하신다. Faith는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다. Faith는 "내 시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편 31:15의 정신을 반영하여)라고 말하는 정착된 영혼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달력을 그의 보존에 맡기는 것이다. 셋째, faith와 trust는 체계적이기 전에 개인적이다. 제자들에게 "능력을 받으리라" 그리고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둘째 인칭에 주목하라. 이 약속은 운동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름 있는 열한 사도 각각, 여인들 각각,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각각 — 그들이 충만함을 받을 자들이다. 증인을 위한 능력은 전략이 아니라 공동체 안의 개인들에게 주어진다. 넷째, faith는 지리적으로 미래를 향해 있다. 그 궤적은 예루살렘, 그리고 온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이다. Trust는 적대 앞에서 후퇴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확장된다. 다락방에서 역사하는 동일한 능력이 사마리아에서도 역사할 것이다 — 제자들이 한때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려 한 지역에서(누가복음 9:54). 마지막으로, faith는 텅 빈 하늘에 의해 형성된다.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의 시선을 위를 올려다보는 것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돌린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이와 같은 manner'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제자들은 하늘을 응시하지 말아야 한다 — 그들은 복음을 열방에 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기다리되, 농부가 기다리듯 — 두 손을 흙에 묻고 기다린다.

적용하다

적용은 본문이 시작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기다리라는 명령과 함께. 대부분의 현대 독자들은 행동보다 기다림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성령의 충만은 열한 제자처럼 한 장소에 '함께 모여' 있는 자들에게 약속된다. 이것은 현시대를 위한 세 가지 구체적인 자세를 제시한다. (1) 한 장소를 택하고 거기에 계속 돌아오라. 제자들은 다락방이 있었다. 현대 신자들은 이에 상응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 의자, 산책길, 저널, 소그룹 — 자신의 간구를 일관되게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곳. 믿음은 강렬함보다 반복에 의해 형성된다. 본문은 그들이 '간절히 기도하며 계속하였다'고 말한다 — 단속적이 아니라 지속된 실천이다. (2) 자신의 일정을 아버지께 내려놓으라. 만일 당신이 '주님, 지금이 때입니까?'라고 묻으며 안절부절못한다면 — 그것은 예수께서 다루시는 바로 그 질문일 수 있다. 신뢰는 시간표를 놓아준다. 여전히 일할 수 있다. 다만 결과를 고집하지 않을 뿐이다. (3) 자신의 위치를 신뢰하라. 성령의 권능은 장소가 아니라 궤적을 위해 주어진다. 당신은 자신의 예루살렘 — 자신의 집, 자신의 익숙한 환경에 있을 수 있다. 다음 이동은 유대 — 자신의 확장된 공동체이다. 그리고 사마리아 —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극한 끝 — 도달되지 않은 자, 낯선 자들이다. 믿음은 단계를 건너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4) 비어 있는 하늘에 대해 자신에게 전도하라. 예수가 감각에서 숨겨지실 때 —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을 때, 예배가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때, 하늘이 침묵하는 것 같을 때 —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을 기억하라. 승천하신 동일한 예수가 다시 오실 것이다. 그의 부재는 유기(遺棄)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성령이 오셔서 기다리는 모든 자 안에 거하시기 위한 사이의 시간이다. (5) 이름을 받으라. 본문은 사도들을 구체적으로 이름 붙인다 —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심당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알고 계신다. 우리는 명령하시고 안에 거하시는 분에게 익명이 아니라는 것을 신뢰할 때 믿음이 자란다.

되새김

기다림의 방 안에서만 성숙해지는 믿음이 있다. 그 윗방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예수님과 동행하고, 함께 식사하고,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다시 살아나심을 본 열한 명의 사람들 — 이들은 초보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도행전 1장에서 그들의 믿음은 작고 떨리고 있었다. 그들은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품고 있었다. 그들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하늘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보지 못하는 약속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서로가 있었고, 오실 성령이 있었고, 말씀하신 곳에 머물라는 조용한 순종이 있었다. 이 본문에서 믿음은 아직 영웅적이지 않다. 그것은 기다리라 하시니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것은 자신의 시간표를 자기 뜻을 품으시는 아버지께 내려놓는 사람들의 신뢰이다. 그것은 예수를 데려가신 그 구름이 언젠가 다시 그를 데려오실 줄 아는 사람들의 확신이다. 여러분이 자신만의 윗방에 있다면 — 고요함의 계절, 응답 없는 기도의 한篇章, 구름이 주님의 모습을 가려버린 길의 한 구간 — 여러분은 좋은 동료 안에 있는 것이다.最初の제자들은 여러분이 바로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이해하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머물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셨다. 머무는 법을 배우자. 때와 시기를 아버지께 맡기는 법을 배우자. 한마음을 이루어 기다리는 자들에게 증인의 능력이 주어지는 법을 배우자. 그리고 텅 빈 하늘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읽지 못한 성령 충만의 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을 배우자. 믿음은 질문의 부재가 아니다. 믿음은 질문으로 가득한 방 안에서 기다리겠다는 의지이다.

자주 묻는 질문

예수께서 제자들을 즉시 보내지 않고 기다리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다림 자체가 순종의 행위이며, 성령의 부으심을 받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예수께서 명시적으로 말씀하시기를, '기다리라 … 며칠이 못 되어'라 하셨다. 권능은 성령에게서 오며, 일정은 아버지께 속한다. 성령의 충만之前에 행하는 것은 육체의 능력 안에서 일하는 것이며, 기다림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일하도록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에게 왕국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질문은 믿음의 표시였습니까, 아니면 약한 믿음의 표시였습니까?

그 질문은 메시아에 대한 정치적 기대로 여전히 물들어 있는 신앙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그들의 신뢰를 재구성하십니다 — '언제'에 대한 질문에서 '무엇'에 대한 질문으로 그들을 이동시키십니다. 신앙은 그 대상이 프로그램에서 인격으로, 그리고 시간표에서 사명으로 옮겨갈 때 성숙합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믿음'과 '신뢰)'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믿음은 믿어지는 내용이다 — 아버지의 약속, 부활하신 주님, 신실하신 성령. 신뢰는 취하는 자세다 — 기다리며, 때를 내려놓으며, 예루살렘에 머물며, 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 가운데 계속하는 것. 믿음은 손이고, 신뢰는 벌려진 손바닥이다. 첫 십 절은 믿음이 붙들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12–14절은 신뢰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묘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기다림과 신뢰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정된 곳을 택해 기도하며 계속하라. 너의 일정을 아버지께 맡겨라. 예루살렘–유대와 사마리아–땅 끝까지의 궤도를 따라 너의 믿음을 확장하라. 승천하신 주님이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을 기억하라. 다락방은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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