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폭풍 속을 나아가며: 믿음과 신뢰의 시험

박해의 폭풍이 예루살렘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 때, 제자들은 복음을 사마리아까지 옮겨 갔으며 — 그 꺾이는 한가운데서 신앙이 벼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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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사도행전 8:1-20

사울이 그의 죽음을 승낙하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나서 사도들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온 지방으로 흩어지니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반을 장사하고 그를 위하여 크게 통곡하더라. 그러나 사울이 교회를 훼파하며 집마다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가두더라. 그러므로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말씀을 전하더라. 빌립이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니라. 무리가 일심으로 빌립의 말을 듣고 그 행하는 표적을 볼 때에 다 그 말을 좇더라. 이는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많은 데서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가고 또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음을 얻음이라.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그 성에 전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있어 마술로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기를 어떤 큰 자라 하더니 모든 사람이 적든 크든 다 그를 좇아 이 사람은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 하더라. 그가 오랫동안 마술로 그들을 놀라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그를 좇더라.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빌립을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더라. 시몬도 스스로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빌립과 함께 있어 놀라운 표적과 큰 능력을 보므로 크게 놀라더라.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니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니 이는 아직 그들 위에 내려온 자가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람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그들이 성령을 받더라. 시몬이 사도의 손을 안수함으로 성령이 받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돈을 주며 이 권능을 나도 달라 내가 누구에게 안수하든지 성령을 받게 하라 하더니 베드로가 그에게 말하되 네 은이나 너와 함께 망하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얻으려 한 줄 알라 네가 이 일에 분깃이나 요깃이 없으니 이는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네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실까 하라 내가 보니 너는 쓸개 안에 쓴 것과 불의의 매인 줄에 빠져 있도다 시몬이 대답하여 말하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너희가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라 하더라. 두 사람이 증언하고 주의 말씀을 말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 복음을 전하더라.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 남방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이는 광야라 하니 그가 일어나 가더라 보라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대신 재상을 총감독하는 내시 된 사람이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자기 병거에 앉아 이사야 선지자를 읽더라. 성령이 빌립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병거에 붙이라 하니 빌립이 달려가서 이사야 선지자를 읽는 것을 듣고 가로되 너는 읽는 것을 깨닫느냐 대답하되 내가 누가 가르쳐 줌이 없이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더라. 그가 읽던 성경 말씀은 이 뜻이니라 죽임에 끌려가는 양 같이 되었고 털 깎는 자 앞의 어린 양이 잠잠함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낮아짐을 받으매 그의 공의가 빼앗겼되 그의 세대를 누가 능히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더라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여 가로되 청하노라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냐 자기를 가리키는 것이냐 타인을 가리키는 것이냐 하니 빌립이 입을 열고 이 성경에서 출발하여 그에게 예수를 전하더라.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가로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기에 무엇이 거리겠느냐 하니 빌립이 가로되 네가 마음으로 온전히 믿으면 가하다 하니 내시가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줄 믿노라 하더라. 이에 병거를 세우게 하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더라.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매 주의 영이 빌립을 데려가시니 내시가 그를 다시 보지 못하되 기뻐하며 길을 가더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가며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더라.

사도행전 8:1-20은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고통스러운 흩어짐,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성령 충만한 사역, 그리고 새 신자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한 베드로와 요한의 사도적 방문을 기록하고 있다. 이 본문은 사울의 폭력적인 반대에서 성령의 넘치는 은혜로운 부으심으로 전환되며, 세계가 흔들릴 때 진정한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낸다.

Narration

역사적·지리적 배경

사도행전 8장은 스데반의 돌 세례(참조, 사도행전 7:58) 직후로부터 시작되는데, 거기서 청년 사울은 '그의 죽음에 찬성하고 있었'습니다. 사울 자신이 주도한 박해의 물결 — 그는 '교회를 황폐하게 하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남녀를 끌고 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 가 헬라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의 각 지역으로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수도에 남아 어머니 교회를 닻처럼 붙잡고 있었고, 그 반면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선교자들이 되었습니다. 유대사학자 요세푸스는 이 시기에 총독들 통치하의 예루살렘에서 반복되는 소요가 있었으며, 여기에는 폭도의 폭력과 로마 시민권滥用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유대고대사 18.2.2; 참조, 유대전쟁사 2.12.1). 이것은 누가가 서술하는 사회적 불안정성을 맥락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지리적으로, 행동의 중심축은 예루살렘 — 다윗의 소망의 도시와 성전이 있는 산 — 에서부터 북쪽으로 사마리아로 옮겨갑니다. 사마리아는 그 혼합된 혈통과 그리짐 산에 있는 대적의 성소 때문에(참조, 열왕기하 17:24-41) 오래도록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경멸받아 온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경멸받는 변경 지역으로 빌립이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그의 전도는 표적들로 확증되었습니다. 부정한 영들이 소리쳐 나왔고, 중풍병자와 저는 자들이 치유되었으며, '그 도시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다시 옮겨가는데,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듣고, 새 신자들을 위하여 안수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보냅니다. 믿음, 지리, 권위가 한 순간에 수렴합니다 — 사도들의 손을 안수함으로써 사마리아인들이 '성령을 받게 된' 바로 그 순간에 말입니다.

시공간 배경

초대교회 시대에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해 확산되었는데, 이는 신자들이 박해와 망국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를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신학적 의미

사도행전 8:1-20은 고통과 하나님의 주도하심을 배경으로 하여, 믿음이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신학적 드라마입니다. 1. 고난은 교회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배가하게 합니다. 누가는 냉정한 현실주의로 기록합니다 — 사울이 교회를 '잔혹하게 핍박하였으되' 곧바로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말씀이 전파하니라'라고 보고합니다. 흩어짐이 곧 파송입니다. 핍박의 맞바람이 선교의 순풍이 됩니다. 여기서 믿음은 폭풍의 부재가 아니라 그 한복판을 걸으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 — 알곡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요한복음 12:24) — 를 환기시킵니다. 2. 믿음은 신앙과 세례와 지속되는 교제의 합입니다. 빌립이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그것이 신앙으로 응답되었고, 그 신앙은 '남녀를 막론하고' 세례와 연결되었습니다. 시몬은 '스스로 믿고, 세례를 받은 뒤, 빌립과 함께 항상 함께하니라'. 참된 신앙은 사적인 의견이 아니라 공적(公的) 편입입니다. 이것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의미입니다 — 그의 이름, 그의 소유권, 그의 이야기로 옮겨짐을 뜻합니다. 3. 믿음은 사도들의 기도를 통해 성령을 받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미 믿었고, 세례도 받았으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성령이 그들 위에 아직 임하지 아니하시니라'. 성령의 완전한 임금은 사도들의 안수(按手)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일회성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충만 속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보편 교회가 —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 예루살렘과 멸시받던 북쪽 지역이 — 여기서 가시적으로 연합합니다. 4. 믿음은 아무리 화려할지라도 마술이 아닙니다. 서사는 빌립의 표적에 대한 두 가지 반응을 의도적으로 대조합니다 — '믿은' 군중들과, '크고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보고' '놀란' 시몬. 누가는 두 반응에 같은 단어 '놀람'을 사용하면서도, '믿었다'라는 단어는 전자에게만 부여합니다. 순종 없는 기적은 믿음이 아니라, 성령을 사고자 하는 마음의 선조(先祖)에 불과합니다(v. 19). 이 대조는 믿음의 본질을 더 날카롭게 합니다 — 은사를 사로잡는 경외가 아니라, 주시는 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5. 믿음과 신뢰는 이미 깨어들어 온 것과 완전히 임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서 시험받습니다. 제자들은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 사도들을 맞아야 했습니다. 시몬은 경외(敬畏)와 경탄(驚嘆)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습니다. 각각은 작은 순교, 곧 자기를 의지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오늘의 적용

1. 흩어짐을 예상하고, 흩어짐 속에서 선포하라. 이주, 실직, 교단 분열, 또는 슬픔의 격변을 겪고 있다면, 주님의 이 말씀을 들으라: '일어나라, 그리고 가라 ...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들에게 보내리라' (사도행전 22:21, 사울의 후일의 간증을 인용함). 당신을 넘어뜨리는 그 바람은 종종 당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일한 성령이시다. 당신의 다음 지리적 위치 — 당신의 사마리아 — 는 당신의 선교 현장이다. 2. 놀라움과 경배를 구분하라. 우리는 이적, 놀라운 일, 인격자, 그리고 플랫폼으로饱和된 시대에 살고 있다. 시몬의 예를 거울로 삼아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권능에 끌리는가, 인격자에게 끌리는가? 나는 어떤 브랜드, 지도자, 운동 — 혹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가? 신앙은 매혹이 아니다; 그것은 fiducia — 자아를 재정렬하는 신뢰이다. 3. 세례 후 성령의 더 풍성한 임명을 위해 기도하라. 만약 당신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면, 여전히 안수에 해당하는 것 — 신적으로 성숙한 신자들의 기도, 성화의 성례적 은혜, '너희가 성령을 받기 위하여' 간청하는 공동체와의 일관된 걸음 — 가 필요할 수 있다. 신앙은 그러한 통로를 통해 충만함으로 자라난다. 4. 멸시받는 자를 멸시하지 말라.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갔다. 베드로와 요한은 수 세기에 걸친 민족적 경계를 넘어갔다. 주님이 당신을 누구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보내고 계신가 — 바로 당신의 전통이 피하라고 가르쳐온 사람들인가? 신앙은 편견이 거부하는 곳에서 행한다. 5. 스테판의 장례와 사울의 폭력이 당신의 양심에 압력을 가하게 하라.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판을 장사하고 그를 위해 크게 울었다.' 위기 속에서도 교회는 순교자들을 애도한다. 그리고 3절의 박해자가 9장 25절의 사도가 된다. 주님은 구부러진 선으로 곧은 글자를 쓰신다. 당신 이야기 속의 그 사울을 그에게 맡겨라.

되새김

주 예수님, 높이 들림 받으시고 예루살렘에서 먼저 그 이름이 선포된 후 사마리아에서도 전파된 이여, 흩어짐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제게 주소서. 환난의 돌들이 떨어지고 제가 알았던 집들이 수색당할 때, 빌립의 길 — 아래로, 밖으로, 제 마음이 피하라고 배워온 자들을 향한 — 을 제 발이 찾게 하소서. 눈을 멀게 하는 경이로움과 항복하는 예배를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거듭 거듭 주의 이름 안으로 세례 베풀어 주시고, 신실한 손들의 안수로 성령의 충만함이 내게 임하게 하소서. 파괴와 도래 사이, 흩어짐과 모임 사이, 십자가와 왕관 사이의 틈 속에서 주님을 의지합니다. 아멘.

자주 묻는 질문

제자들을 흩어버린 박해가 왜 오히려 복음을 퍼뜨렸는가?

누가는 박해와 선포를 병치하여 서술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낸다. 세상적인 바람은 신자들을 움직이게 하지만, 성령의 바람은 복음을 새로운 토양으로 옮겨간다. 예수님은 이미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그 메시지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리라고 약속하셨다. 박해는 이야기의 역행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전진을 위한 연료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왜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는가?

이것은 그들의 신앙의 부족에 대한 평이 아니라 신학적인 배열이다. 곧 사도들의 방문 때까지 성령의 강림이 보류되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이에 가시적인 연합이 세워지게 된다. 성령은 사도의 안수(按手)를 통해 임하므로, 유대인과 사마리아 신자들 동일한 주님과 동일한 몸에 속함에 대한 보증이다.

시몬은 믿었는데 — 왜 나중에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 했는가?

누가는 시몬의 '믿음'(지적 동의)과 그의 '놀라움'(기적에 대한 매혹)을 명확히 구별한다. 그의 믿음은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 않고서야 빌립의 능력을 인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성령이 주어질 때 그가 원하는 것은 영향력이었으며, 거룩함이 아니었다. 참된 믿음은 획득이 아니라 신뢰이다.

사도행전 8장은 신앙과 신뢰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보여줍니까?

사마리아인은 신앙을 보여줍니다 — 그들은 빌도의 전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는데, 이는 받는다는 객관적 행위입니다. 빌도는 신뢰를 본떠 보여줍니다 — 그는 위협이 있는 적대적인 지역으로 '내려갔으며', 이는 영혼의 능동적 자세입니다. 핍박받는 제자들은 고통의 형태로서의 신뢰를 본떠 보여줍니다 — 그들은 도망자임에도 '말씀을 전하며 다녔습니다'. 믿음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이고, 신뢰는 특히 바람이 거세질 때 믿는 자의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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