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흉패의 이름들: 신뢰의 돌들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설 때, 그의 가슴판에 새겨진 보석들은 열두 지파를 나타내었으니—이는 믿음이 기억되어 하나님 앞에 제시됨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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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출애굽기 39:1-20

파란색, 자색, 홍색 실로 그들도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제의 옷을 만들었으니 곧 아론의 성의 옷을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에봇은 금과 파란색, 자색, 홍색 실과 곱게 꼬아 짠 세마포로 만들었더라. 그들이 금덩이를 두드려 얇게 펴서 파란색, 자색, 홍색 실과 세마포 사이에 섞어 넣을 실을 쳤더라. 그 위에 견장짝을 만들었으니 두 끝에 붙이게 하였더라. 그 위에 있는 장식띠도 그것과 같이 한 조각으로 금과 파란색, 자색, 홍색 실과 곱게 꼬아 짠 세마포로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그들이 청옥을 금테로 둘러 깎아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인새김처럼 새겼더라. 그들을 에봇의 견장짝에 기념의 보석으로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흉패를 에봇 모양대로 금과 파란색, 자색, 홍색 실과 곱게 꼬아 짠 세마포로 만들었더라. 네모졌고 그들이 흉패를 두 겹으로 만들었으니 한 뼘 길이에 한 뼘 너비로 두 겹이며 새긴 보석을 네 줄로 꽂았는데 첫째 줄은 홍옥, 황옥, 녹보옥이요 둘째 줄은 녹주옥, 남보옥, 자보옥이요 셋째 줄은 호박옥, 홍玛瑙, 수정이라 하였더라.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셋째 줄을 탄생석, 마노, 수정으로, 넷째 줄을 녹옥, 청옥, 벽옥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본문에 따라 셋째 줄은 탄석, 마노, 수정이고 넷째 줄은 녹옥, 청옥, 벽옥이라 하였더라. 그것들이 금테에 박혔으니 보석이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 각기 그 이름으로 인새김처럼 새겨져 열두 지파를 나타내었더라. 그들이 흉패에 순금으로 땋은 끈 모양의 사슬을 만들었더라. 금테 둘과 금고리 둘을 만들어 두 고리를 흉패의 두 끝에 달고, 그 두 금끈을 두 고리에 달아 흉패의 두 끝에 매고, 그 두 끈의 두 끝을 두 테에 달아 에봇의 앞쪽 견장짝에 붙이고, 금고리 둘을 만들어 흉패의 두 끝에 달았으니 곧 에봇을 향한 안쪽 가장자리이며, 또 금고리 둘을 만들어 에봇 앞쪽의 두 견장짝 아래에 달았으니 곧 장식띠 위 그 이음매에 가까운 곳이라. 흉패를 그 고리들에서 에봇의 고리들로 파란 끈으로 매어 흉패가 장식띠 위에 있게 하였고 그로 하여금 에봇에서 떨어지지 아니하게 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에봇 겉옷을 짠 것으로 순전한 파란색 실로 만들었더라. 그 겉옷의 위는 그 중간에 목 같이 달았으니 갑옷의 목 같이 둘레에 깁이 있어 찢어지지 아니하게 하였더라. 그 겉옷의 가장자리에 파란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 모양을 빚어 달았더라. 그들이 또 순금으로 방울을 만들어 그 방울을 석류 사이에 겉옷 가장자리 사방에 달았으니 방울과 석류로 상호간에 달았더라. 그 겉옷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아론이 성소에서 섬길 때에 입었더라. 그들이 또 세마포를 빚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함이며 정결한 세마포로 만든 관과 세마포로 화려하게 만든 두건과 세마포로 만든 속바지를 곱게 꼬아 짠 세마포로 만들었더라. 또 금실과 파란색, 자색, 홍색 실과 곱게 꼬아 짠 세마포를 수 놓아 만든 띠를 만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그들이 또 정결한 금패를 만들어 거기에 인새김을 새겼으니 이篆文은 "여호와께 구별됨"이라 하고, 그 위에 파란 끈을 달아 그 위에 매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회막 곧 성막의 모든 역사가 이렇게 필역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전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모세에게 회막을 가져다가 그의 장막과 모든 기구 곧 그의 단, 널판, 가로장, 기둥, 받침을 가져왔고, 붉은 숫양의 가죽 덮개와 물범의 가죽 덮개와 그 병커튼을 가져왔고, 법궤와 그 채와 그 속죄소를 가져왔고, 상과 그 모든 기구와 진설병을 가져왔고, 순수한 등잔대와 그 잔 곧 순서대로 켜는 등잔과 그 모든 기구와 등유를 가져왔고, 금단과 관유와 향료와 성막 문장의 병커튼을 가져왔고, 놋단과 그 놋 그물과 그 채와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을 가져왔고, 뜰의 그 장막과 그 기둥과 그 받침과 문 병커튼과 그 줄과 그 말뚝과 성막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가져왔고,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제의 옷과 제사장 아론의 성의 옷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직분의 옷을 가져왔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니, 곧 그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모세가 그 모든 역사가 필한 것을 보니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행하였더라 모세가 그들을 축복하였더라.

출애굽기 39장은 아론의 제의복, 특히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이 새겨진 열두 보석을 단 에봇과 흉패를 기술합니다. 본문은 장인들께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심과 같이' 작업했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신뢰에 근거한 순종을 강조합니다.

Narration

성막과 제사장 의복의 완성

출애굽기 39장은 성막 이야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구출되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거할 곳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은 후에, 숙련된 장색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이제 그들의 작업을 완성한다. 이 장은 특별히 대제사장 아론의 의복에 초점을 맞춘다. 견장 부분이 있는 에봇과 네 줄의 보석으로 장식된 흉패(때때로 '판결의 흉갑'이라 불린다)에 관한 내용이다. 십이 보석 각각에는 야곱의 아들 중 한 사람의 새겨진 이름이 담겨 있다. 각 이름은 한 지파를 대표하고, 각 지파는 하나님이 택함하시고 이제 언약 공동체로 형성하고 계신 백성을 대표한다. 이 본문 전체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요지는 장인들이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지었다는 것이다(1, 5, 7, 21, 26, 29, 31절). 이것은 맹목적인 기계적 순종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이다. 백성은 보이는 영광의 구름 아래서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일하고 있었다. 1세기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그의 「고대사」에서 대제사장이 '지파들을 기념하며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시는 것에 기뻐하신다는 표징으로서 그 이름을 어깨에 지고 다녔다'고 기록하고 있다(요세푸스, 「고대사」 3.184 참조). 따라서 흉패는 가시적 설교가 되었다. 제사장은 하나님 임재 속으로 백성들을 자신의 가슴에 안고 들어갔다. 출애굽기 39장은 시내산 광야 시기에 속하므로, 지리적 근거지는 시내산이다. 거기서 율법이 주어졌고, 신적 청사진에 따라 성막이 세워졌다.

시공간 속의 그림

신앙 주제는 모세 언약 시기에 시내산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으며,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율법과 공급을 신뢰하는 법을 배웁니다.

뜻의 말: 신실한 기념비

신앙, 출애굽기 39장에서, 단순한 내면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성막의 재료 그 자체에 새겨져 있다. 세 가닥의 실이 그 의미를 함께 묶고 있다: (1) 건축주를 신뢰하는 순종. 모든 것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그대로' 만들어졌다. 장인들은 산 위에서 주어진 명령이 글자 그대로 순종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했다—아름다움이 과도해 보일 때조차, 금이 필요 이상으로 비싸 보일 때조차. 신앙은 결과를 완전히 보기 전에 먼저 행한다. (2)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실려 들어감. 가슴판의 열두 돌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대표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사장이 그들을 대신하여 메고 들어갔다. 이것은 참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영원히 행하실 일을 예시한다: 그의 백성을 아버지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데에 데려가는 것(히브리서 9:24를 더 넓은 정경적 관점에서 비교하라).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할 때,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그의 심장에 새기고 계신 분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3) 기념과 책임. 어깨에 놓은 마노석은 명시적으로 '기념의 돌'(39:7)이라 불린다. 제사장은 이 specific한 열두 지파들이 오늘 당신의 짐이라는 것을 상기하지 않고는 성소에 들어간 적이 없다. 신앙은 잊지 않는다; 그것은 가슴판에 이름을 간직한다. 유대교 전통에서 이 가슴판을 가리키는 *호셴*이라는 용어는 중보의 상징이 되었고, 민수기 27:20–21에 대한 랍비적 성찰은 그것에 부착된 우리밈과 두밈이 백성의 divine guidance에 대한 의존을 상징한다고 지적한다. 이 본문은 신앙이 내면적 신뢰(마음)이면서 동시에 외면적 짊어짐(어깨)임을 가르준다—신앙은 나타나고, 그것이 무엇을 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용용: 신뢰로 닳아진 삶을 살기

아론의 옷을 비추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첫째, 마음 위에 입고 있는 것을 점검하라. 아론의 흉패는 가시적이고 공적인 헌신이었다.信仰는 우리에게 매일 가지고 나가는 것들—우리 가족, 기도, 신념—에 대해 의도적이기를 요구한다. 필요하다면 품고 있는 이름들의 목록을 만들어라. 그것이 단순한 머릿속 파일 이상으로 되게 하라. 둘째, 그 비용을 알아차려라. 금을 두드려 실로 만들었고, 감람석을 보석으로 두른 것—信仰는 헌신이 요구하는 것을 축소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산의 신을 섬기지 않는다. 먼저 값진 선물을 주시는 분을 섬긴다. 셋째, 명령을 다시 고치지 않는 순종의 훈련을 실천하라. 장인들은 신적 지시사항에 더하거나 빼거나 개선하지 않았다. 그들의 충실함이 곧 그들의 信仰였다. 성령님이 당신에게 단지 편리한 것이 아니라 명령받은 것을 그대로 행하라고 요구하시는 곳이 어디인가? 마지막으로, 쉬라. 대제사장이 열두 지파를 성소로 들고 들어갈 수 있었다면, 더 큰 대제사장이 당신을 들고 계심을 신뢰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자신의 방식으로 수행해 들어갈 필요가 없다. 주님이 주신 이름—자녀, 사랑받는 자, 후사자—을 입고 그분이 아버지 앞에서 당신을 대표하시게 하라. 信仰와 신뢰는 그 뿌리에서, 스스로를 들고 가는 것을 멈추고 성소까지 운반되게 내맡기는 조용한 결단이다.

되새김

때로는 대제사장이 성막 입구에서 잠시 멈추는 것을 상상합니다. 어깨에 놓인 보석을 바로잡고, 에봇의 끈을 매만지며, 가슴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짊어진 무게를 느낍니다. 분명 그는 잊고 싶었을 것입니다—그 이름들이 실제 필요와 분쟁과 실패를 가진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믿음은 기억함으로써 유지됩니다. 성막 자체가 기억을 가시화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기억하셨고, 그의 제사장은 그들을 다시 기억했습니다. 오늘날 당신에게 에봇은 아마 자녀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거론하며 기도하는 금요일 저녁이거나, 잊지 못하는 친구의 한 이름을 위해 중보하기 위해 서두름을 멈추는 화요일 오후일 것입니다. 이런 조용한 행위들이야말로 믿음의 직물입니다—보이는 세상에선 보이지 않지만, 성소의 빛 속에서 빛나는 금실처럼 보통 베 위에 짜여진 것들. 주여, 우리가 짊어지는 자들을 잊지 않는 마음을 주시고, 우리를 지신 분을 신뢰할 용기를 주소서.

자주 묻는 질문

가슴판에 박힌 보석이 이스라엘 지파의 수와 정확히 일치하도록 묶여 있었은 것은 어찌된 까닭인가?

엄격한 일대일 대응은 각 지파, 각 이름이 하나님 앞에 특별히 제시되도록 보장했다. 신앙은 막연한 종교성이 아니라 특정한 삶을 특정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가슴판과 어깨판 양쪽에 모두 이름이 반복되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어깨는 무게를 짊어짐을 나타내고, 가슴은 사랑과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믿음이란 다른 사람을 짊어지는 것과 그들을 소중히 품는 것 모두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보다 더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이루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것이 반복적으로 말씀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에 대해 무엇을 가르칩니까?

믿음은 종종 보이는 결과가 도래하기 전에 순종합니다. 우리는 모든 걸음의 끝을 보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명하시는 분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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