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가장 긴 밤이 지난 뒤: 고통으로부터 떠오르는 빛의 위로로

이사야 60장은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이 가장 찬란한 위안을 준비하고 계심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이사야 60:1-20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도다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요 짙은 구름이 백성을 덮으려니와 여호와가 네 위에 임하실 것이요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nations들은 네 빛을 따를 것이요 왕들은 네 빛남의 광채를 따르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멀리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겨서 오리라 네가 볼 때에 빛을 발할 것이요 네 마음이 떨며 즐거워하리니 바다의 풍부함이 네게로 돌아오겠고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흘러오리라 미디안과 에바의 모든 낙타 곧 스바의 젊은 camel들이 너를 덮을 것이요 그들이 다 금과 유향을 가져와서 여호와의 찬송을 전파하리라 게달의 모든 떼가 너를 위하여 모아질 것이요 느바욧의 수양들이 네게 구별되어 드릴 것이니 이는 내 제단에 받들어 드리게 함이요 내가 내 영광의 전을 더 아름답게 하려 함이라 날아가는 비구름 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것들이 누구냐 보라 섬들이 나를 기다리고 다시스의 배들이 먼저 가서 네 자녀들을 멀리에서부터 돌아오게 하되 그들의 은금을 함께 가져오게 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너를 영화롭게 하신 까닭이요 여호와 곧 네 하나님이라 함이니라 이방인들이 네 성벽을 쌓을 것이요 그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니 이는 내가 진노로 너를 쳤으나 이제는 은혜로 너를 돌이키는 자라 네 성문이 항상 열려서 낮이나 밤이나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들어오고 그 왕들이 끌려 올까 함이라 너를 섬기지 않는 나라나 왕국은 멸할 것이요 그런 나라는 반드시荒凉하리라 레바논의 영광 곧 백향목과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성소의 곳을 아름답게 하고 내가 내 발을 두는 처소를 영화롭게 하리라 너를 괴롭히던 자의 자손이 굽혀 네게 나아올 것이요 너를 업신여기던 자가 다 네 발바닥에 엎드릴 것이요 너를 일컬음이 여호와의 성읍이라 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전에는 네가 버림받고 싫은 자라 지나가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영광이 되게 하며 대대로 즐거움이 되게 하리라 네가 열방의 젖을 먹을 것이요 왕후의 가슴을 빨리라 그리하면 네가 나 여호와가 네 구원자임을 알고 야곱의 전능자가 네 구속자임을 알리라 내가 놋 대신에 금을 가져오며 철 대신에 은을 가져오며 나무 대신에 놋을 가져오며 돌 대신에 철을 가져오리라 내가 평안을 네 관원으로 삼을 것이요 의를 네 감독자로 삼으리라 네 땅에서 다시 강포한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요 네 지경 내에서 패괴와 파괴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네 성벽을 salvation이라 이름할 것이요 네 성문을 찬영이라 이름하리라 네가 다시는 낮에 해의 비춤을 구하지 아니하며 밤에 달의 광채를 구하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됨이라 네 해는 다시는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은 다시는 물러가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감을 볼 것임이라 네 백성이 다 의로운 자라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이는 그들이 내가 심은 가지요 내가 손으로 만든 것으로 영광을 삼는 자라 smallest한 자가 천백이 되며 약한 자가 강대한 나라가 되리라 나 여호와가 그 때에 속히 이 일을 이루리라

이사야 60:1은 명령형으로 시작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윽고 왔음이라.' 이 장 전체는 고통받는 시온, 곧 심판을 견뎌내고 이제 신적 은총의 새벽을 목도하는 언약 공동체를 향한 회복의 시적 예언입니다. 선지자는 모여드는 재물, 돌아오는 포로, 재건된 성벽, 영원히 열려 있는 성문이라는 이미지들을 엮어냅니다 —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임재(כָּבוֹד)가 그의 백성 위에 빛나셨다는 되풀이되는 반복 문구로 틀을 짓고 있습니다.

Narration

맥락: 잿더미에서 일어선 도시

이사야 60장은 흔히 '제삼 이사야'(56–66장)라고 불리는 이사야서의 한 부분에 속하며, 기원전 6세기 후반 유다 공동체를 향한 말씀입니다. 성전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에 의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끌려갔으며, 이미 키루스의 칙령(기원전 539년)에 따라 첫 번째 귀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은 여전히 폐허 위에 있었고, 성벽은 무너진 채이며, 인구는 적었고, 세계 대제국들 사이에서 그 존재감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히 시온으로 돌아오며, 이방인들이 그녀의 빛으로 모여들고, 압제자들이 굴복하며, 성문들이 결코 닫히지 않는 날을 상상하는 예언들의 화환입니다. '내가 노하여 너를 치었으나 은혜로 너를 다시 받는다'(10절)라는 반복 문구는 신학적 중심축입니다. 고난은 실재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닙니다. 이 장은 징계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 오히려 더 큰 회복의 호 안에서 그것을 배치합니다. 원래 청중들에게 이것은 정치적이며 예배적인 소망이었고, 기독교 독자와 유대교 독자 모두에게 이후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위로의 약속과 대조되어 읽히는 성서의 문법이 되었습니다.

시공간: 무너진 문들과 낙타들의 행진

예루살렘 제1성전 시대와 바벨론 포로기에 대한 묵상, 다윗 왕정의 고난이 회복의 소망과 만나는 곳에서.

의미: 위로가 고난의 기억을 가릴 때

이사야 60장의 문법은 단순하고 파괴적입니다. 선지자는 고난에 대해 논쟁하지 않습니다. 그는 고난을 다른 곳에 위치시킵니다. 고난은 반 줄 안에서 고백됩니다. "내가 노하여 너를 쳤으나." 위로가 다음 반 줄에서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 전체에 걸쳐서: "이나 은혜로 너를 다시 취하리라." 이 시 전체는 그 은혜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 가지 움직임을 주목하십시오. 첫째, 빛이 재물보다 먼저 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네 빛이 이르렀음이라"는 1절이고, 낙타와 배들은 6-9절에 도착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번영에 앞섭니다. 공동체는 재물을 모아 스스로 위안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영광(kabod)이 그 위에 비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둘째, 위로는 개인적이지 않고 공동체적입니다. 아들과 딸들은 "먼 곳에서" 옵니다. 열방은 성읍의 빛을 따라 걸어옵니다. 왕들은 행렬을 지어 옵니다. 시온에게 약속된 평강은 공공의 구조입니다. 열린 성문, 재건된 성벽, 하나님의 발이 쉬시는 성전. 셋째, 위로는 포용적이며 심지어 전복적입니다. "이방 사람이 너의 성벽을 중건할 것이요"(10절). 한때 시온을 위협했던 바로 그 백성이 그녀의 미래를 세우는 자들이 됩니다.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들이 너 앞에 절하며 굴복하리라"(14절). 고난은 복수로 갚아지지 않습니다. 성문이 결코 닫히지 않는 성읍으로 응답받습니다. 이것이 신적 위안의 형태입니다. 그것은 과거를 삭제하지 않지만, 과거가 그 안의 백성을 더 이상 규정할 수 없는, 그토록 열려 있는 미래를 쌓아 올립니다.

적용: 당신의 성벽이 무너진 곳에서 다시 일어서라

우리가 이러한 신의 말씀을 우리의 작은 역사 안에서 어떻게 받을 것인가? 먼저 진실한 것을 말함으로 시작하라. 돌아온 포로들처럼, 우리도 우리 삶의 도시 — 직업, 결혼, 몸, 소망 — 이 rubble(폐허) 속에 있었던 계절들을 알 수 있다. 이사야는 그러한 계절들을 없던 일로 여기지 않는다. 그가 말한다, "내가 너를 쳤노라." 고백은 위로의 일부이다. 그러나 명명한 후에, 그 명령을 들으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남은 감정이 아니라 자세이다. 그것은废墟 안에서 일어서서 동쪽, 빛이 오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결단이다. 세 가지 실천이 따른다. 첫째, 당신의 하루를 공급이 아니라 현존을 중심으로 쌓아라. 이 장의 순서는 먼저 빛이요, 그 다음이 낙타이다. 아침을 업무에 뛰어들기 전에 하나님의 kabod(영광)를 당신 위에 맞이하는 기도로 시작하라; 그러면 그날의 나머지는 응답받은 아침의 결을 따르게 될 것이다. 둘째, 문들을 열어두라. 그 약속은 곧 당신을 통해 끊임없는 긍휼의 흐름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원망은 문을 닫고; 환대는 문을 연다. 오늘 누가 — 그 이방인, 그 낯선 자, 한때 당신을 상처 입힌 그 사람이 — 다시시의 배들에 의해 당신의 문 앞으로 끌려오고 있는가? 그들을 환영하라. 셋째, 영구히 피해자의 역할을 거부하라. "너는 GOD의 성, 거룩한 이스라엘의 시온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14절). 새 이름이 주어졌다. 그것을 받으라. 당신의 상처의 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멈추고, 당신의 소명의 장으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하라.

되새김

그렇게 어두운 밤이 있으니, 그때 유일하게 정직한 기도는 가장 짧은 그것이다: "빛을." 이사야 60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여 그 기도에 온전한 미래로 응답한다. 선지자는 밤이 진짜가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밤이 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당신의 무너진 성벽 동쪽 어딘가에서, 하늘이 이미 금과 유향의 빛깔로 물들기 시작했고, 낙타들이 오고 있고, 배들이 오고 있으며, 당신은 결코 고개를 숙일 줄 알지 못했던 열방들이 오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의 닫히고 녹슬고 잠긴 모든 문들이 밤낮없이 활짝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잠시 노하셨던 분이 이제 영원히 은혜로우시기로 택함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한참 동안 품어 보라. 긴 위로의 문장이 당신의 짧은 슬픔의 문장 위로 흘러넘치게 하라. 이 장이 긴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진노보다 더 많은 말씀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당신이 일어서면, 그 도시가 하는 것을 행하라. 열린 문 앞에 서라. 누가 오는지 지켜보라. 그들을 맞아들이라. 당신은 더 이상 자신의 상처의 관리인이 아니라, 주께서 고향으로 데려오시는 열방의 주인이다.

자주 묻는 질문

이사야 60장은 어떻게 고난과 위안을 연결하는가?

시편 60:10 절은 중심 고리이다: 「내가 노하여 너를 치었으나 은혜로 너를 회복하리라.」 고난이 보라되며 부인되지 않지만, 그것은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있으리니 낮에든지 밤에든지 닫히지 아니하리라」라는 말로 계속되는 더 긴 문장 안에 놓인다.

하나님이 우리를 내리치셨다면 어떻게 그분의 위안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같은 절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분노와 은혜를 한 문장 안에 놓으셨다. 은혜가 두 번째를 차지하고, 은혜가 결론이며, 은혜가 그의 마지막 말씀이다. 분노에게는 시작이 있으나, 은혜에는 그 분노를 무효화하는 '그러나'라는 접속사가 있다.

이 장이 오늘날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고난이 끝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 이는 고통 속에 있지 않다고 가장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빛을 향해 얼굴을 돌리라는 초대입니다. 낙타들은 여전히 길을 가고 있고, 성문은 여전히 준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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