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신실하신 하나님께 저주 속에서 부르짖음

시편 109편: 악인이 사랑을 저주로 갚을 때, 신앙은 결코 신실하지 않으신 하나님로 어떻게 향하는가?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시편 109:1-20

지도자를 위하여, 다윗의 시편이여. 내 찬송의 하나님이여, 말라 나를 멀리 하옵소서. 이는 악인과 거짓자가 나를 치려 하여 입을 벌렸음이라. 그들이 나를 향하여 거짓 혀를 났었도다. 그들이 의 없는 말로 나를 둘러쌌으며 무고히 나를 치었도다. 내가 사랑하나 그들이 나를 대적하여 송사하므로 내가 곧 심판을 당하노라. 그들이 선을 악으로 갚으며 나의 사랑을 미워함이로다. 그 위에 악인을 세우시고 사단이 그의 우편에 서기를 원하노다. 그가 심판을 받을 때에 죄를 얻으며 그의 기도가 죄가 되게 하소서. 그의 날은 적게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그의 아들들은 고아가 되어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소서. 그의 자녀들이 유리하며 빵을 구걸하러 다니게 하소서. 그의 채주가 그의 소유를 다 취하며 외인이 그의 재물을 빼앗게 하소서. 아무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그의 고아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게 하소서. 그의 후사가 끊어지게 하시며 그들의 이름이 다음 세대에 지워지게 하소서. 그의 아버지의 죄악이 여호와 앞에 기억되게 하시며 그의 어머니의 죄를 지우지 마옵소서. 여호와가 항상 그들을 기억하시며 그의 이름이 세상에서 끊어지게 하소서. 그가 긍휼히 행하기를 즐거워 아니하였으며 곤핍한 자와 궁핍한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살육하려고 쫓았음이로다. 저주하기를 사랑하였으므로 저주가 그에게 임할 것이요,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였으므로 축복이 그를 멀리 할 것이요. 저주가 그의 옷 같으며 마침내 물 같이 그 몸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갈지니 그가 입는 옷처럼 그에게 입혀지며 항상 띠처럼 띠이기를 원하노다. 이는 내 대적하는 자들이여, 내게 악을 말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행하시며 주께서 내게 행하옵소서. 나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합당하게 나를 위하여 행하옵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니 나를 건지옵소서. 이는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며 내 마음이 상하였사옵니다. 나는 그림자 같이 지나가며 메뚜기 같이 떨쳐 버리운 자로소이다 내 무릎은 금식하므로 흔들리고 내 살은 기름이 없어 마랐나이다 내가 또한 그들의 조소거리가 되었사오니 그들이 나를 보면 머리를 흔드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도우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대로 나를 구원하소서 이는 사람이 나를 치는 것이 주의 손인 줄을 알며 주 여호와께서 그것을 행하신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하시고 나를 위하여는 축복하소서 그들이 일어날 때에 놀라게 하시되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나를 대적하는 자는 옷을 벗어 수치와 같이 입으며 자기 치욕으로 스스로 싸게 하소서 내 입이 여호와를 크게 찬송하겠고 무리 중에서 내가 하나님을 찬미하리니 이는 빈민의 우편에 서서 그를 판단하는 자에게서 구원하실 자가 여호와시임이로다

시편 109편은 저주 시편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사단은 기만적인 혀로 둘러싸인 가운데, 그 일을 의로운 재판자에게 맡기며, 그러고 나서 하나님을 '나의 주권자'(아도나이) 그리고 '영원자'라 부르시며 그의 이름과 신실하심에 따라 행하실 것을 호소합니다. 시편의 전환점은 자기 옹호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을 신뢰하는 것으로 옮겨가는 데 있습니다.

Narration

배경과 상황

시편 109편은 다윗의 시로 인정되며 '지휘자를 위하여'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공개 예배에서 부르도록 쓰여졌음을 의미한다. '다윗의 시'라는 표제는 음성을 다윗 왕 전통 안에 위치시키는데, 그때 왕은 끊임없이 궁정 내의 음모와 배반, 무고한 고발에 둘러싸여 있었다(삼하 15-17장의 시므이와 아히도멜과 비교하라). 시편은 거짓으로 입을 열고, 미워하는 말로 시편作者的를 둘러싸고, 까닭 없이 공격하며, 사랑을 고발로 갚는 적을 기술한다. 이러한 세부 사항들은 신뢰했던 동료가 적으로 돌변한, 다윗의 삶에서 되풀이되는 양상에 부합한다. 이 시편에는 두 개의 부분이 있다. 첫째(1-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무관심하게 계시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둘째(6-20절)에서 그는 선을 악으로 갚은 자에게 신명기 28장의 언어를 빌어 일련의 언약적 저주를 선고한다. 그 다음 주요 본문에서 제공된 마무리 절들은 다시 간청으로 전환된다. "주의 이름에 합당하게 나를 위해 행하사... 나를 구원하시되... 주의 신실하심을 따라 행하소서." 이 시편의 심판 신학은 따라서 detached(분리된) 복수가 아니라 언약적 정의이다. 의로운 자가 악인에게 죽을 때까지 쫓길 때, 하나님의 이름과 위명이 걸려 있다. 여기서 믿음은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사건을 신실하심이 모든 구원의 터전이 되시는 하나님 위에 던지는 대담한 행위이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조망

다윗 시대의 통일 왕국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시편 28편에 대한 이 묵상은 이스라엘 초기 왕정 시기의 예배와 정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을 탐구한다.

믿음의 의미

시편 109편을 잡고 있는 히브리어 어근은 '아만'입니다. '아멘'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동사입니다. 다윗이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전한 시편의 26절)라고 부르짖을 때, 그는 '아멘'이신 하나님, 곧 그의 '예'가 '예'이신 하나님을 힘입어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에서 믿음은 결과에 대한 낙관도,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감상적인 믿음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품을 그의 행위에서 분리할 수 없다는 구체적이고 언약적인 신뢰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의미를 규정짓는 세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1) 믿음은 침묵하기를 거부합니다. "나의 찬송하시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다윗이 찬양하는 하나님은 먼 곳에서 구경하는 분이어서는 안 됩니다. 찬양의 존재 자체가 들으시는 하나님을 함축합니다. (2) 믿음은 의로운 재판관께 사건을 맡깁니다. 다윗은 보복을 행하는 대신 언약의 저주들을 낭송하고 그 집행의 권한을 하나님께 위임합니다. 저주 기원들은 사사로운 복수가 아니라, 그의 말씀대로 행하실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입니다. (3) 믿음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인자하심에 호소합니다. "주의 이름에 합당하게 나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기 핵심이 있습니다. 믿음은 변하지 않는 두 가지 현실, 곧 하나님의 이름(그가 자신을 계시하신 바로 그분)과 하나님의 신실하심(그가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 없으심) 위에 서 있습니다. 시편 109편의 의미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를 재판관이자 구원자로 경험하여,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를 그분께 맡기는 일입니다.

오늘의 적용

우리 자신의 '거짓 혀'가 메시지, 험담, 갈라진 시대의 거짓 이야기로 찾아올 때, 우리는 이 시편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첫째, 침묵하는 것이 외치는 것보다 더 영적이라는 거짓을 거부하라. 다윗의 첫 행위는 말함이다: '멀리하지 마소서.' 비방 앞에 침묵하는 것은 신뢰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일 수 있다.信仰은 神의 귀가 열려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말한다. 둘째, 개인적인 복수가 神에게 심판을 맡기는 것과 같다는 거짓을 거부하라. 다윗은 칼을 잡지 않는다; 그는 언약의 저주를 읊조리며 그 시행을 神의 손에 맡긴다. 저주와 bitterness 사이의 경계는 정확히 이것이다: 저주하는 자는 그 일을 넘겨주지만, bitterness 가진 자는 자기 손에 붙들고 있다. 셋째, 당신의 청원을 당신 자신의 순결함이 아니라 神의 이름과 神의 신실함에 닻을 내려라. 다윗의 주장은 '내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만하다'가 아니라 '주의 이름이 옹호되심을 받아야 합니다'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의롭게 증명해야 하는 지치는 필요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우리 것이 아닌 의 안에 안식하게 한다. 넷째, 구원이 출함을 기억하라: '모든 사람이 주의 손인 줄 알게 하소서.' 시편 109편의 神에 대한 믿음은 사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증언이 된다. 오늘 당신이 어디에 있든, 이 시편의 형태를 기도함으로써 이 시편을 기도할 수 있다: '내 찬송의 神이여, 나에게서 멀리하지 마소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행하소서; 주께서 신실하시니 나를 구원하소서.'

되새김

이 시편에는 성경 전체의 흐름이 한 가지 간청 속에 압축되어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윗은 저주들을 읊조리고, 자신의 상처들을 회상하며, 금식으로 쇠약해진 육체와 자신의 마음속에서 꿰뚫린 고통을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치 가장 중요한 것을 떠올리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주는 선하시고 신실하사 나를 구원하소서."信仰는 상처가 없음이 아닙니다. 信仰는 상처를 솔직하게 이름 붙인 다음, 그 상처보다 더 크게 하나님을 이름 붙이는 행위입니다. 나의 사랑을 비난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 그것은 세상입니다. 선하시고 신실하여 자신의 이름대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 그것은 주님입니다. 이 두 고백 사이에서 우리는 삽니다. 오늘, 당신을 향해 열렸던 '거짓된 혀'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사랑에 응답한 그 비난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찬양의 하나님께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그분 더 크게 이름하십시오. 그분은 비난 없는 삶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과 신실함이 실패하지 않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당신의 사연을 맡기십시오. 그리하면 당신 발 아래의 터전이 당신 자신의 결백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그분의 '아멘'이 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저주 시편이 어떻게 믿음의 시편로 여겨질 수 있는가?

시편 109편의 핵심은 저주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따라 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따라 그분의 심판에 맡기는 행위에 있다. 여기서 신앙은 세 가지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부르짖음, 개인적 복수의 거부,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적 인격에 근거한 간구의 근거이다.

시편 109편이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는가?

그래. 맞아. 시편 109편의 '원수'에 관한 언어를 가져와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자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로 바꾸셨네 — 저주를 제사장적 기도로 전환하신 것이니, 이것이 믿음과 신뢰의 완전한 표현이라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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