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믿음이 부름을 받을 때: 사도행전 13장의 순종적인 여정

안티오키아의 금식부터 키프로스의 선교 길에 이르기까지, 바나바와 사울/바울은 참된 신앙이 성령으로 구별된 자발적인 신뢰임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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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사도행전 13:1-20

안디오가에 있는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라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와 헤롯 왕의 젖동생 마나엔과 사울이라.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이 말씀하시되 바나바와 사울을 내게로 분리하여 내가 그들을 불러놓은 일을 행하게 하라 하시니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 그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시아로 내려가 거기서부터 구브로로 배로 향하여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 요한도 시종으로 그들과 함께 하더라 그들이 섬을 지나 바보에 이르러니 한 마술사니 거짓 선지자인 유대 사람 바예수를 만나니 그는 총독 서기오 바울의 조수가 된 지혜 있는 사람이라 서기오 바울이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그러나 마술사 엘루마스라 하는 자가 그들의 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음에서 떠나게 하려 하니 해석하면 그의 이름이 엘루마스이라 마침내 사울이니 바울이라 이름하는 자가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여 이르되 모든 간교와 모든 악행이 가득한 자아 마귀의 아들 모든 의의 원수여 네가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않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너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이매 그가 두루 다니며 손 잡아 줄 사람을 구하더라 총독이 이 행적을 보고 주의 교훈에 놀라 믿더라 바울과 그의 동행하는 자가 바보에서 떠나 빔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지나 비시디아의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더라 율법과 선지자를 읽은 후에 회당의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너희 중에 백성을 권면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여 이르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들아 들으라 이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그들이 애굽 땅에서 객거할 때에 그들을 높이고 높은 팔로 그들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셨고 또 광야에서 약 사십 년 동안 그들을养育하시고 가나안 땅에서 일곱 족속을 멸하신 후에 그 땅을 나누어 주신 지 사백오십 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므엘 때까지 사사들을 그들에게 주셨고 그 후에 왕을 구하니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의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 동안 그들에게 주셨다가 그를 폐하신 후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았으니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모든 뜻을 행하리라 하셨으니 이 사람의 씨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바 이스라엘의 구주 예수를 너희를 위하여 세우셨으니 이는 요한이 먼저 그의 오시기 전에 회개의 세례를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였으니라 요환이 자기 직역을 행할 때에 이르되 너희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내가 그가 아니라 나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의 발 신들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형제들이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너희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아 이 구원의 말씀이 너희에게 보내졌으니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 관원들이 이 사람을 알지 못하고 또 안식일마다 읽히는 선지자들의 말들을 알지 못하므로 그를 정죄하여 그 말들을 이루어 두고 또 죽임에 해당할 죄를 찾지 못하되도 빌라도에게 청하여 죽이게 하고 또 그에 관하여 기록된 것을 다 응하게 한 후에 나무에서 내려 무덤에 눕히더니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함께 올라온 사람들이 이제 백성에게 증인이라 우리가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 자녀들에게 응하게 하셨다는 기쁜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심이니 이것은 또한 시편 두 번째에 기록된 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심과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사 다시 썩음에 돌아가지 아니하게 하심이라 그가 다윗에게 이르신 바 내가 다윗의 성실한 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고 또 다른 시편에 이르시되 주께서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자기 세대において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 잠들어 조상들에게 더하니 실로 썩음을 보았으나 하나님이 살리신 이는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이 너희에게 전파된다 하였으니 또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는 모든 일로부터 믿는 모든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느니라

사도행전 13:1-20은 첫 번째 선교팀의 파송과 키프로스 섬에서 어둠의 세력에 맞선 첫 번째 성령 인도하심의 대립을 기록한다. 서기오 바울로 사건은 사울이 바울로 이름으로 변하게 되는 순간을, 그리고 신실함이 술사들보다 더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분기점이 된다.

Narration

안디아 교회와 첫 번째 선교 여행

사도행전 13장은 안디옥 교회로 시작됩니다. 안디옥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행 11:26) 세계주의적 회중이었습니다. 이 장은 다섯 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을 열거합니다: 바나바, 니게르라고 불리는 시므온, 구레네인 루디오, 헤롯 tetrarch의 젖붙인 동생 마나엔, 그리고 사울. 이 목록은 유대인과 이방인, 토착민과 디아스포라, 궁정 배경과 평범한 노동 사이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요세푸스(고대사 18.2.2; 유대전쟁 2.9.6)에 따르면, 마나엔의 젖붙이 동생은 세례 요한을 처형하고 나중에 예수를 조롱한(눅 23:6–12) 통치자였던 헤롯 안티파스였습니다. 한때 헤롯의 궁정에 속했던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예배하고 예언하는 것은 복음의 화해 능력을 스스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말씀이니, "내게 불러 주사 그 일을 행하게 하실 바나바와 사울을 내게 따로 세워라"는 것은 '선교적 소명'의 본문적 근원입니다. 누가는 신적 부르심과 인간의 파송을 신중하게 구별합니다. 성령이 부르시고, 교회가 분별하여 안수하며, 팀이 파송됩니다. 셀루기아에서 그들은 키프로스의 살라미로 항해한 뒤,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바포까지 섬을 횡단합니다. 누가복음 3:1에서 총독 베르기오 바울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바포 근처에서 발견된 비석에 의해 입증됩니다(행 13:7에 대한 주석 전통 참조). 바예수/마술사 엘리마와의 조우는 전체 단위의 전환점입니다. '마귀의 아들'이 총독의 신앙 추구를 반대하며, 이제 바울이라 불리는 사울이 성령 충만하여 일시적인 심판을 선언합니다. 총독은 '주의 교훈에 놀라며' 믿습니다. 그 여정은 계속되어 밤빌리아의 버가(요한 마가가 그들을 버리는 곳으로, 갈라디아서 2:11–14의 분쟁을 예고함)로 이어지고, 다시 비시디아의 안디옥으로 향합니다.

시공간: 동부 지중해 교회와 항로

바울의 선교 여행 기간 (약 주후 47–64년)에 사도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사마리아를 포함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유대인과 이방인 공동체 속에서 교회들을 세우고 신자들을 강화시켰다.

의미: 분리되고 보내진 신뢰로서의 믿음

사도행전 13:1–20은 믿음을 사적 의견이 아니라 성령으로 분리된 소명으로 제시한다. 성령이 쓰시는 같은 동사인 "나를 분리하라"는 레위인의 레위적 분리(민수기 8:14)와 바울의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심과 진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이니"(데살로니가후서 2:13)와 울린다. 세 가지 흐름이 나타난다. 첫째, 믿음은 행하기 전에 듣는다. "그들이 주를 섬기며 금식할 때에" 성령이 말씀하셨다. 바나바와 사울은 이미 섬기고 있었다; 그들의 부르심은 공허 속에서가 아니라 보통 사역 한가운데에서 왔다. 믿음은 극적인 중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예배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것이다. 둘째, 믿음은 공동체에 의해 확증받는다. 교회는 박수를 보낸 것이 아니라 금식하며 기도하고 안수했다. 보내는 것은 예전적 행위이다. 사도행전 4:36은 바나바가 "권면의 아들"이라는 뜻임을 상기시킨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보증했던 사람(사도행전 9:27)이 이제 그의 동행하는 자가 된다. 성령을 신뢰하는 믿음은 또한 그 부르심을 확인하는 몸을 신뢰한다. 셋째, 믿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opposition에 견딘다. 엘리마는 "총독을 믿음에서 돌이키게 하려" 그들을 대항했다. 그리스어가 흥미롭다: "믿음에서" — 총독은 이미 pistis,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원수가 그 문턱에서 그를 돌이키려 한다. 바울의 응답은 협상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clarity이다: "악마의 아들, 모든 의의 원수여." 일시적인 실명은 잔혹함이 아니라 겸손한 긍휼을 통해 하나의 기만을 저항하는 표징이다. 총독은 "주의 가르치심에 놀라" 믿는다. 믿음은, opposition을 당할 때, 가시적이 된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값을 치를 의지가 있다. 요한 마가가가 떠나고; 팀은 앞으로 나아간다. 믿음은 실망의 부재가 아니라 동료가 떠날 때 계속 걸을 결의이다.

적용: 오늘날 보내심을 받은 신앙을 살아가다

1) '들음의 예배'를 길러라. 다섯 선지자와 교사들이 성령이 말씀하실 때 이미 사역하고 있었다. 성령이 당신의 계획을 중단시킬 수 있는 곳에 말씀, 예배, 금식의 패턴을 중심으로 한 주간을 구성하라. 2) 당신의 이력서를 성령의 부르심에 내맡기라. 마내의 이름은 조용한 꾸짖음이다. 헤롯의 식탁 곁에서 자란 사람이 이제 갈릴리 스타일의 교회에서 예언한다. 지위, 상처, 가족 배경은 자격 박탈 사유가 아니라 복음의 날것의 재료가 된다. 3) 감정만이 아니라 공동체에 의해 확인받으라. 큰 순종에 나서기 전에, 성숙한 신자들로 구성된 작은 무리가 함께 기도하고 금식하며 안수해 줄 것을 요청하라. 교회는 환호하는 응원자가 아니라 covenant(언약)의 증인이다. 4) 결정의 시점에는 영적 opposition(대항)을 예상하라. 엘루마는 총독의 마음이 열려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세르기오 바울을 공격했다. 주님에 대한 당신의 '예스'가 저항을 받는다면, 그것은 혼란이 아니라 확인일 수 있다. 5) 다른 사람들이 떠날 때 머무라. 요한 마가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 갔다. 당신의 믿음은 당신 곁을 떠나는 사람들을 이겨내야 한다. 6) 말씀이 설득하게 하라. 바울은 정치적 재능으로 세르기오 바울을 이기지 못했다. 총독은 '주의 가르치심에 놀라서' 믿었다. 당신의 증언을 요염함에 맞추지 말고 성경에 중심을 두라.

되새김

당신 자신을 그 안디옥 방에 놓아보라 — 식탁 주위로 다섯 이름, 선지자들과 교사들, 각자 과거를 가진 채: 한 명은 '검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 한 명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사람, 한 명은 헤롯의 궁정에서 자란 사람, 한 명은 아직 타르수의 천막 냄새가 손에 남은 사람, 한 명은 조용한 격려자. 성령이 한 문장을 말씀하시자 그들의 남은 인생이 재배열되었다. 이번 주에 당신의 인생 위로 성령이 한 문장을 말씀하시고, 그들처럼 그저 순종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사도행전 13장의信仰는 하나님이 당신의 계획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라, 당신을 그분의 계획으로 보내시는 데 기꺼이 응하는 것이다. 총독이 믿은 것은 바울이 인상적이어서가 아니라 주의 가르침이 그 자체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의信仰가 작게 느껴진다면, 자신감을 높이지 말라 — 말씀에 대한 노출을 늘이라. 세르기오 바울은 가르침에 놀랐으니, 우리도 다시 놀라게 되자. 그리고 우리 시대의 엘리마 같은 인물들이 우리를 '信仰에서 돌이키게' 하려 할 때, 성령이 충만하여 눈을 고정하고 입을 준비된 채로, 주의 손이 구원하시기에 강하시며 필요할 때에는 겸손하게 하시는 것을 신뢰하며 서자.

자주 묻는 질문

성령이 왜 예루살렘이 아니라 안디옥에서 말씀하셨는가?

안티오크가 유대인과 이방인이 가장 열매롭게 섞여 있는 회중(행전 11:22-26)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미 복음이 문화적 경계를 넘어가 그곳으로부터 최초의 지중해 횡단 선교를 시작하시기로 선택하셨다.

사울과 바울은 동일한 인물인가? 누가는 왜 이름을 바꾸었는가?

네. '사울'은 그의 히브리어 이름이며, '바울'은 그의 로마어 직함입니다. 사도행전 13장 9절에서의 전환은 로마 총독 앞에서 이방인 사도적 정체성으로 완전히 나아가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눈이 멀게 하는 것이 엘리마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형벌은 임시적인 것이며(‘한철 동안 해를 보지 못함’) 그를 통해 총독이 신앙에서 떠나지 않도록 막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최종적인 정벌이 아니라 징계적 긍휼이다.

사도행전 13장에서 나타나는 믿음의 층위는 무엇인가?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 성령이 부르신 신뢰(2절), 총독이 구한 믿음(7, 12절), 그리고 보내심을 받은 disciple들의 신실한 순종(전체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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