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코린트에서의 밤의 음성: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라

반대가 일어나 바울이 떨려할 때, 주께서 밤의 환상 중에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하니 누가 너를 해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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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ESV
사도행전 18:1-20

이这些事情以后,保罗离开雅典,来到哥林多。遇见一个犹太人,名叫亚居拉,他本是本都人, Pontus는 선조의 본토요, 막 로마에서 갓 이 온 자라,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왔으니, 이는 클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떠나게 명하였기 때문이라。 바울이 이들에게 나아갔으니, 직업이 동일함을 인하여 함께 거하며 일을 하였으니, 그들의 직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더라。 그리고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과 헬라인들을 권면하더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내려왔을 때에, 바울이 말에 억매여, 유대인들에게 증언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더라。 그들이 대적하고 모독하므로, 바울이 옷을 털고 이르되, 너희의 피가 너희 머리 위에 있을지어다,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로는 이방인들에게 가리라 하고, 그 곳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자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과 붙어 있었더라。 회당장 크리스보가 주를 믿으매, 온 집이 다 믿더라, 고린도 사람의 많이 듣고 믿고 세례를 받더라。 밤에 비전으로 주께서 바울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말하되, 침묵하지 말라, 이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해하여 치는 자가 없으리라,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바울이 일 년 육 개월을 그 곳에 머물며, 그들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더라。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일심으로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석으로 끌고 가며, 이 사람은 법을 거스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자라 하더라。 바울이 입을 열려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만일 이것이 옳지 못한 일이나 악한 행위라면, 유대인들아, 내가 너희를 들어줄 만하거니와, 만일 말과 이름과 너희 법에 관한 일이면, 너희 스스로 살피라, 나는 이러한 일의 재판장이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고, 재판석에서 그들을 쫓아내더라。 무리가 회당장 소스테나를 잡아 재판석 앞에서 때리더라, 갈리오는 이 일들을 상관하지 아니하더라。 바울이 이 후에 여러 날 더 머물다가, 형제들에게 작별하고, 수리아로 항해하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가더라,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으니, 이는 자기가 서원하였음이더라。 그들이 에베소에 이르러, 바울이 그들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강론하더라。 그들이 더 오래 있을 것을 청하거늘, 허락하지 아니하고, 작별하며,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하고, 에베소에서 떠나 배로 가더라.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위로 올라가 교회를 문안하고, 안디옥으로 내려가더라. 잠시 거기 있다가, 떠나서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지나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더라. 이름이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있으니, 본래 알렉산드리아 사람이라, 학식이 있고, 성경에 능하며, 이 사람은 주의 도를 알고, 마음에 뜨겁게 예수에 관한 일을 정확히 가르치되, 요한의 세례만 알더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더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그를 데려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히 풀어 주더라. 그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할 때에, 형제들이 권면하고 제자들에게 그를 영접하라고 편지하니, 그가 가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을 많이 도우더라. 이는 그가 성경으로 공중에게 유대인을 강력히 이김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임이더라.

사도행전 18:9-10은 바울의 선교 사역 가운데 가장 부드러운 순간들 가운데 하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적대적인 고린도 한가운데서 회당에서의 논쟁으로 지쳐 있던 때에 새로운 유대인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을 때, 주 예수님 자신이 밤의 환상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오히려 말하되 침묵하지 말라'는 명령은 이중의 약속과 짝지어집니다 — 신적 임재('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와 신적 보호('사람이 너를 해하여 너를 치지 못하리라'). 주어진 이유는 놀라울 정도로 개인적입니다: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나님은 고린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아직 모이지 않은 그의 백성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 본문에서 믿음은 확신의 감정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 그의 종을 어둠 가운데 만나시어 그의 말로 그를 붙잡으시는 분 — 안에서의 정착된 신뢰입니다.

Narration

배경: 고린도에 있는 바울

아테네에서 치열한 지성적 논쟁(사도행전 17:32-33)을 벌인 뒤, 바울은 서쪽으로 로마의 아가야 주로 향하여 그 주의 정치적 수도이자 제국에서 가장 세계주의적이면서도 도덕적으로 악명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인 고린도로 들어갔다. 두 바다 사이의 지협에 전략적으로 자리 잡은 고린도는 무역, 이교 신앙, 로마 행정의 중심지였다. 이후 갈리오가 앉았던 유명한 심판석(베마)은 진정한 랜드마크였고,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최근에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는데(이는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클라우디우스 전기』 25:4에서도 언급된다), 이것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이탈리아에서 고린도로 막 도착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천막 제조(보다 문자적으로는 가죽 작업이나 거친 천 생산)이라는 직업을 공유했는데, 이것은 사도로 하여금 재정적 부담이 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게 한 명예로운 수공업이었다(바울이 나중에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편지하는 고린도전서 1:2 참조). 바울의 회당 사역은 그의 통상적인 패턴을 따랐으나(사도행전 17:1-2 참조), 반대가 격화되고 그가 '말씀에 쫓겨' — 복음의 긴박함에 내몰리고, 무겁게 눌리며, 강하게 사로잡혀 — 자신의 책임을 상징적으로 털어버리는 예언적 표시로서 옷을 털고 이방인을 향해转向했다. 회당장 크리스푸는 온 가정을 이루어 믿었으며(고린도전서 1:14 참조), 아마도 그의 후임자일 소스테네는 나중에 바울과 함께 고린도전서 1:1의 공동 저자로 등장한다(사도행전 19:1 및 디모데후서 4:20 참조).

시공간: 고린도의 낮과 밤

사도행전 18장은 1세기 중엽 바울의 선교 여행 가운데 Corinth와 Ephesus, 그리고 더 넓은 Greco-Roman 세계를 무대로 하며, 그곳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가장 초기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워진 시기를 다룬다.

의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정된 믿음

사도행전 18장의 신앙은 낙관도 아니며, 스스로 만들어낸 자신감도 아닙니다. 신앙은 주인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응답하는 종의 신뢰입니다. 세 가지 움직임이 이 본문의 신뢰 신학을 형성합니다. 첫째, 신앙은 반대 후에 일어납니다. 바울은 철학자들이 그저 어깨를 으쓱했던 아덴에서는 밤의 환상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한 마음으로 그를 치며" 심판 자리로 끌어낸 고린도에서 그것이 필요했습니다(행 18:12). 신앙은 정확히 사람의 적대함과 하나님의 재확신 사이의 간격 속에서 벼려지는 것입니다. 둘째, 신앙은 하나님의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위에 안식합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왜 반대가 왔는지 말씀하시지 않으며, 그것이 멈출 것이라고 약속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는 더 나은 것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출애굽기 3:12, 예레미야 1:8, 마태복음 28:20의 언약 형식과 비교하십시오). 셋째, 신앙은 선교적 지평을 가집니다. "이 도성에 내 백성이 많도다"라는 말씀은 적대적인 무리를 숨겨진 추수的人群으로 다시 규정합니다. 바울을 반대했던 바로 그 유대인들이 마지막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 사람 중 많은 자가 듣고 믿어 침례를 받더라"(행 18:8). 그러므로 신뢰는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계속 말하려는 의지, 곧 지휘관이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고 말씀하셨기에 보초岗位上 머물려는 의지입니다.

청년부: 자신의 고린도에서 주의 음성을 듣다

모든 신앙인은 이르 늦이 자갈리도 자신의 고린도 — 복음이 환영받지 못하고, 회당(자연적宗教 공동체)이 적대적이며, 세속 권력자들이 무관심한 곳에 서게 됩니다. 이 본문을 세 가지 구체적인 방식으로 적용하십시오. (1) 그 공포를 억누르기 전에 먼저 이름 붙이십시오. 바울의 공포는 함축되지만 부인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가 두려워한 것 자체를 꾸짖으시지 않고, 침묵한 것을 꾸짖으십니다. 실제 공포를 기도의 빛 속으로 끌어내십시오. (2) 이중 약속을 그 완전한 형대로 받으십시오. 주님은 presence(함께하심,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와 protection(보호하심, '너를 해하려 손대지 못하리라')를 모두 주십니다. 이것들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presence가 더 큽니다, 이는 해침이 임한다 해도 동반하심의 약속은 여전히 성립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3 참조, 거기서 바울은 나중에 하나님의 '나에게 오심'을 위로라고 기록합니다). (3) 그 18개월을 견디십시오. 신실함은 지속입니다. 밤의 환상은 일시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것은 말과 사역으로 일년 육개월을 세울 터전입니다. 추수가 익을 시간을 주기도 전에 자신의 고린도를 떠나지 마십시오. 마지막으로, 작은 동료들 — 아굴라, 브리스길라, 실라, 디모데, 디도 유스도, 크리스보 —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많은 백성'을 주목하십시오. 믿음은 드문 경우 외에는 혼자 행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동역자들과 주님이 이미 예비하신 사람들에 의해 지속됩니다.

되새김

장면을 천천히 음미하라. 등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바울은 이방인의 도시에서 빌린 방에 누워 있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님이 곁에 서 계신다. 그분은 꾸짖으러 오시지 않는다. 잠잠케 하시러 오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것은 한 선교사에게 인간적으로 가장 따뜻한 세 마디 말이다. 주목하라, 주님은 갈리오의 법정에서 승리를 약속하시지 않으며 회당에서 인기를 약속하시지 않는다. 안전하심과 함께하심을 약속하신다. 복음을 일꾼들이 품은 가장 깊은 두려움은 실패가 아니라 버림받는 것, 곧 주님이 그 얼굴을 거두시는 일이다. 이 환상은 그 두려움을 뿌리째 부순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한마디를 오늘 밤 당신의 어둠 속으로 가져가라. 당신은 이길 도성을 보지 못할지 모른다. 병원의 복도, 힘겨운 월요일, 응답 없는 기도만 보일지 모른다. 고린도에 있는 바울의 침상 곁에 서셨던 그 동일한 예수님이 지금 당신 곁에 서 계신다. 믿음은 떨리는 손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가 너와 함께 하니 아무도 너를 해쳐 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기에 그래도 입을 열어 말하려는 의지다. 오늘 밤 그 말씀을 붙드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주 묻는 질문

코린도에서 왜 주님께서 아테네에서가 아니라 바울에게 이 밤의 환상을 주셨는가?

아테네에서는 복음이 조롱을 받았지만 아직 폭력적인 반대로 조직되지 않았고, 고린도에서는 유대인들이 일어나 그를 재판석으로 끌어내기까지 했다(사도행전 18:12). 이 환상은 믿음이 강화될 필요가 바로 그때에 임한 것이었다 — 주님은 그 고난을 거두어 주시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서도 계속 말하게 하시며 바울을 강하게 하셨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직 택하지 아니된 자들도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를 수 있는가?

주께서 고린도에서 아직 모이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 이미 자기 것이라고 정하신 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믿음은 보이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 위에서 행한다. 주님의 관점에서 보 already yield은 이미 확보된 것이었다. 바울의 과제는 그것이 익을 때까지 충실히 행하는 것이다.

바울이 왜 두려워했는가?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두려움을 경험했는가?

바울의 두려움은 진실했다. 그는 아덴에서 조롱을 당했고, 고린도에서 반대했으며, 거의 혼자서 조직적인 적대에 직면해 있었다. 주님은 그가 두려워한 것을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침묵을 지키려 한 것을 꾸짖으셨다. 신앙의 거인들도 떨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뢰는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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