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

폭풍 속에서도 신뢰하기: 바울의 여정에서 믿음의 닻을 찾기

바울이 에베소의 소요를 겪고 나서 길을 떠날 때, 신앙은 고요한 바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폭풍을 걸어 가신 주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사도행전 20:1-20

소동이 그친 후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다가 권면하고 작별인사한 다음 마게도냐로 떠나갔다. 그가 그 지방을 두루 다니며 많은 권면을 한 뒤에 그리스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석 달을 지내다가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치려고 Syria로 항해하려는 것을 모략한 것을 알고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아시아까지 그를 동행한 자들은 베뢰아의 소파더이며, 데살로니가의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의 가이오와 디모데, 아시아의 두기고와 드로비모였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먼저 떠나 나를 트로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오다가 다섯 날 만에 트로아에서 그들을 만났으니 거기에서 이레를 머물렀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기 위하여 모였을 때에 바울이 그들에게 강론하니 이는 이튿날 떠나려고 한 까닭이라 그가 그 밤중까지 말을 계속하였다. 위층 다락방에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앉아 있다가 깊은 잠에 잡혀서 바울의 강론이 더 오래 끌리므로 잠에 눌려 삼층 누대에서 떨어져서 죽은 채로 안히 들리었다.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를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그의 life이 그 안에 있다 하였다. 그리고 다시 올라가서 떡을 떼어 먹고 한참을 그들과 이야기하다가 날이 밝을 때 떠나갔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살아서 데려왔으니 크게 위로를 받았다. 그때에 우리는 배에 먼저 올라 아소로 가서 거기서 바울을 받기로 하였으니 그가 이렇게 정하여 본인은 육지로 가려 한 까닭이었다. 그가 아소에서 우리를 만나므로 우리가 그를 데리고 밋레네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곳에서 떠나 이튿날 기오를 맞은 편에 오고 그 다음날 사모스에 들렀으며 그 이튿날 밀로도에 왔다. 이는 바울이 에베소를 지나려고 한 것은 아시아에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는 까닭이었으니 그는 될 수 있으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서둘렀던 것이다. 밀로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니 그들이 오매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되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태도로 너희와 함께 있었는지를 너희가 친히 아느니라 곧 유대 사람들의 모략으로 당한 여러 환난과 눈물 가운데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를 섬겼으며 또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에서나 각 집에서나 препير하지 아니하며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보라 이제 나는 마음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나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되 다만 각 성에서 성령이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하느니라. 그러나 나는 내 life을 내게 아무것도 귀하지 않게 여기노니 이는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에게 받은 직분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이라. 보라 이제 내가 너희 중에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던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니 이는 내가 궐락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온 뜻을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너희 자신을 살피며 또 모든 양 무리를 살피라 성령이 너희를 감독으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를 먹이라 하셨으니 이는 그가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 나는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와서 양 무리를 아끼지 아니할 줄을 아노라. 또 너희 중에서도 몇 사람이 일어나서 비스듬한 말을 하여 제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가게 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늘 깨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아니하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제 나는 너희를 하나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은 너희를 건설하시고 모든 성화된 자 가운데서 유업을 주시는 능력이 있느니라.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내지 아니하였으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내 손으로 일하면서 나의 필요한 것과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의 필요한 것을 채웠노라. 내가 범사에 너희에게 모범을 보였으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도와야 하고 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낫다고 말씀하신 주 예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에 그가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니 그들이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그가 자기들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근심하여 더욱 슬퍼하더라. 그들이 그를 배까지 호송하니라.

사도행전 20:1-12에서는 충성스러운 사도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 제자들을 강하게 격려하고, 마게도냐와 그리도를 여행하며, 드로아에서 빵을 떡는 모임을 갖고, 하나님께서 유두두고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것을 목격합니다. 모든 여정 속에서信仰는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굳건히 걸어가는 길로 드러납니다.

Narration

맥락

에베소에서 은장색들이 일으킨 소동 후에(사도행전 19:23-41 참조), 바울은 숨는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품에 안고, 그들을 권면하며, 마게도니아로 떠납니다. 마게도니아는 후에 누가가 '外面的争闘과 '안의 두려움'으로 묘술할 지역입니다(고린도후서 7:5 참조, 본문 교차참조 수장宝庫에서 5표의 가중치를 부여한 참조). 마게도니아에서 그는 그리스로 나아가, 거기서 석 달을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유대인의 음모가 드러났을 때에야 비로소 마게도니아를 경유하여 돌아가는 여행 경로를 변경합니다(사도행전 20:3). 누가의 여행 서술 — '우리는 무교절 다음 날에 빌립보에서 떠나고, 다섯 날만에 드로아에 이르렀다'(사도행전 20:6) — 는 단순한 항해 일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계획을 바꾸고, 동료들이 교체되는(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피모) 선교사의 고요한 맥박이되, 그분의 방향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거기서부터 주님이 지정하시는 곳으로(사도행전 19:21 참조). 드로아의 다락방은 이 본문의 영적 절정입니다. 주의 첫날에 교회가 떡을 떼기 위해 모입니다. 바울은 새벽에 떠나려 했기에 한밤중까지 이야기합니다. 유두고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잠에 지쳐 삼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상태로 거두어집니다. 바울은 그를 안고, '그의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선언하며, 떡을 떼고, 먹고,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말합니다. 교회는 '적지 않게 위안받습니다'(사도행전 20:10-12). 이 한 장에서 우리는 믿음과 신뢰가 짜여져 있는 것을 봅니다. 길 위에서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신뢰, 상 주위의 모인 교회에 대한 신뢰, 그리고 죽음 자체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그렇게 짜여 있습니다.

시공간

바울이 그리스-로마 세계를 여행하며 초기 교회들을 세우고 신앙과 신뢰로 고민하던 공동체들에게 서신을 쓰던 바울의 선교 시대.

의미

이 장에서信仰은 기분이 아니라 운동이다. 그것은 적대적인 지방들을 지나가며, 암살 모의를 피해 계획하고, 그래도 식탁에 꿇어앉아 떡을 떼다. 이 장을 괴롭히는 헬라어는 파라클레시스(paraklesis) — '권면' — 이며, 누가는 바울의 사역을 가리켜 세 번 사용한다(행 20:2, 7, 9가 그것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바울은 줄곧 제자들을 격려한다. 권면한다는 것은 누구 곁에 걸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계속 가라, 주님은 신실하시니, 마음을 잃지 말라. 이것이 도시들 사이에서 실천되는信仰의 모습이다. 그것은 형제 같은 음성처럼 들린다. 신뢰는 다시 여행의 구조로 드러난다. 바울은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그는 일곱 명의 이름 있는 동반자들의 계주팀과 함께 여행한다. 그들 각자는 같은 복음을 신뢰하도록 배운 각기 다른 도시 교회를 대표한다. 그는 자신을 바다에, 트로아스의 교회에, 등불 켜진 방에, 한 십대 소년의 연약한 잠에 맡긴다. 유두가가 떨어질 때, 바울은 당황하지 않고信仰에 관한 설교를 하지 않는다 — 그는 그 청년에게로 넘어져 그를 안고, 그의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선포한다(행 20:10). 이것이 사도적 신뢰의 패턴이다: 행하고, 말하고, 주님께서 자기 말씀을 확인하게 하라. 기적은 죽음의 부재가 아니라 그 뒤에 오는 회복이다. 따라서 행 20장의信仰은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견고한 전진, 환경이 변해도 멈추지 않는 격려, 복음을 붙드는 분께서 창가에 앉은 모든 젊은 청중의 생명도 붙들고 계신다는 확신을 뜻한다.

적용하다

첫째, 팀과 함께 걸어라. 바울은 혼자 여정을 하지 않는다. 그는 소바더, 아리스다고,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그리고 드로비모와 함께한다 — 각기 다른 교회에서 온 이들이다. 믿음은 동료 신자들과 함께할 때 강해진다; 고립은 미덕이 아니다. 오늘 주님께 기도하며, 기도함과 함께함으로 그 길을 함께 걸어줄 단 한 명의 동반자를 구하라. 둘째, 매주 첫날에 떡을 떼기 위해 계속 모이라. 드로아 교회는 "우리가 떡을 떼려고 모였을 때에"(사도행전 20:7) 모여 있었다. 주의 식탁은 신뢰의 주간 예행연습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들로 나아오며, 아직 길 위에 있는 자들로 먹는다. 셋째, 피로가 불신이 되게 하지 말라. 유두고는 깊은 잠에 압도되었고, 그 추락은 절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바울의 응답 — 품어 안고, 생명을 회복되었다고 선포하며, 떡을 떼고, 새벽까지 대화를 계속한 것은 — 우리에게 지침을 준다: 피로를 물러남이 아닌 함께함으로 맞닥뜨려야 한다. 넷째, 길이 달라질 것을 예상하라. 바울은 시리아로 항해하고 싶었으나,阴谋으로 인해 마게도냐를 지나가야 했다. 믿음은 자기 계획을 고집하지 않는다; 그것은 묻는다, "주님, 여전히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더 안전한 길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대가를 치르더라도 복음을 전하며 가르쳐라. 바울은 그의 말을 밤중까지 연장했고, 그 대가는 실재했다 — 한 소년이 창문에서 떨어졌다. 그 적용점은 설교가 더 길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실함이 종종 우리를 우리의 안락을 지나 하나님의 의존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되새김

폭풍을 막 지나온 신자들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어둠이 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가라앉고, 문이 닫히고, 조용한 목소리가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바울은 그 어둠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막 나온 참이었는데, 그 온 성이 '혼란에 빠졌던' 곳입니다(사도행전 19:29 참조). 그런데 그의 다음 기록된 행동은 제자들을 불러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흔들린 믿음의 첫 번째 약은 격려입니다. 교리보다, 전략보다, 설교의 윤곽보다 먼저 — 포옹입니다. 바울은 죽은 소년에게 '달려가서 그를 안았습니다'(사도행전 20:10). 같은 동사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사도행전 20:37-38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들은 '바울의 목을 안고 입맞추었습니다. 그가 이 말씀을 한 것을 가장 슬퍼함은, 다시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때문이더라'. 포옹은 바울의 신뢰 어휘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피할 만한 것을 만집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도망갈 만한 것을 붙잡습니다. 그는 연약한 자, 실패한 자, 죽은 자를 마치 부활의 삶이 이미 그들을 뚫고 나오고 있는 것처럼 대합니다. 오늘 당신의 여정 안에서 주님께서 어떤 포옹으로 부르고 계십니까? 어려운 대화? 돌아오지 않는 친구? 실망시킨 교회? 창가에서 잠들어가는 어린 신자? 사도행전 20장에서의 믿음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을 굽히고, 붙잡고, 그리스도가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 안에 아직 생명이 있다고 선언하는 의지입니다. 드로아의 다락방은 언젠가 온 교회가 주님과 함께 식사할 더 큰 다락방의 작은 그림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일요일에는 떡을 떨고, 월요일에는 길을 가고, 유디쿠스를 일으키신 같은 하나님이 우리를 — 반쯤 잠든 채로도 — 집까지 데려가시리라 믿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바울이 에베소 소란 이후 시리아로 직접 항해하지 않고 마게도니아를 거쳐 우회한 이유는 무엇인가?

누가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모략한 일 때문에 그가 마케도니아를 거쳐 경로를 바꾸도록 강요당했다고 기록한다(사도행전 20:3). 믿음이란 계획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명백해질 때 경로를 다시 잡을 수 있는 willingness, 곧 기꺼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 즉 예루살렘은 변함없이 굳건히 붙잡고 가는 것이다.

벨라도들이 오늘날에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유티쿠스가 깊은 잠에 눌려 삼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채로 들쳐올려졌나이다 (사도행전 20:9). 이 일화는 우리에게 피로와 모임이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경고합니다. 진정한 위험은 집회에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의 응답 — 몸을 굽히고, 끌어안고, 그 안에 여전히 생명이 있음을 선포하는 것 — 은 바로 취약한 자들을 위해 믿음이 행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20장은 무엇을 일요일(첫째 날)에 떡을 떼기 위해 모이는 것에 관하여 specifically 가르치는가?

누가는 "안식 후 첫 날에 우리가 떡을 떼기 위하여 모였을 때에" (사도행전 20:7)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주의 식탁을 한 주의 첫 날과 명시적으로 연결하는 가장 초기의 본문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신뢰하는 교회가 주님을 기념하는 고정적이고 공개적이며 공동체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즉, 선택적인 경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기초입니다.

바울은 왜 동료들을 배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앗소로 갔는가?

누가는 잠시 바울이 “친히 육로로 가기로 작정하였다”(행 20:13)고 간략히 기록하였다. 많은 주석자들은 이 시간을 고독한 묵상과 기도의 기간으로, 그리고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소집하기 위한 영적 준비로 이해한다. 신뢰가 항상 끊임없는 동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구간에서 주님은 신자가 홀로 걸어가도록 허락하시어 고요함 속에서 힘이 회복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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