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위로

레우 가문에 정착한 자들에게: 안락이 심판이 될 때

예레미야 48장은 영적 역설을 드러냅니다. 오랫동안 시험되지 않은 번영은 부패시킵니다.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안락한 안식처를 살피라 부르시는 것입니다.

BibleVibe Editorial읽기 5분
번역본:ESV
예레미야 48:1-20

모아에 대한 말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모압이여, 네보가 황폐하게 됨이 가히 슬프다, 기랴다임이 점령되어 치욕을 당하니, 견고한 성이 치욕과 놀라움에 당할도다! 모압의 영광이 없어졌고, 헤스본에서 그가 모압을 해하려 하여 모략을 베풀었도다, 비로소 이르기를 모를 그를 나라 중에서 지우자 하였도다. 너 맘멘이여, 너도 침묵을 당하리라, 맘멘은 도시 이름이니라. 칼이 너를 따르리라. 들으라,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가 있어, 멸망과 온갖 파괴가 있으니, 모아란이 왔어! 모압이 부서졌고, 그 어린 것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니, 그들이 루힛으로 올라가서 끊임없이 울며, 호로나임 내리는 길에서 괴로운 통곡의 소리가 들리도다 도망하여 너희 생명을 구하라! 그리하여 광야의 아로엘 같이 되라. 진실로 네가 네 재물과 네 보물에 의뢰하였으므로, 너도 잡히리라. 그리고 그모스가 사로잡혀 떠날 것이요, 그의 제사장들과 신하들과 함께 가리라. 파괴자가 모든 성읍에 이르리니, 피할 성이 없으리라. 골짜기가 황폐하게 되고 평지가 폐하게 되리니, 이는 여호와가 말씀하셨음이라. 모압에 날개를 주라, 이는 그가 떠나가야 할 자이니, 그가 바라보던 공중에서, 그의 성읍들이 황폐되어 그 중에 거하는 자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일을 행하기에 게을른 자는 저주를 당할 것이요, 자기 칼을 피에 머물게 하는 자는 저주를 당하리라! 모압이 젊었을 때부터 안전하였으니, 그가 그 찌꺼기에 가라앉아 온채에서 온채로 쏟아지지 아니하였으며, 그가 결코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그의 향취가 남아 있고, 그의 향기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날이 이르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를 따라 옮길 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그릇을 비우고 그의 항아리를 깨뜨리리라. 그리고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이스라엘 집이 자기가 의뢰하였던 벧엘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되리라. 어찌하여 네가 이르기를 다음과 같이 말하되, 너도 모압이 황폐하게 되고, 그 성읍들이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택한 젊은 남자들이 살륙을 당하리라, 이는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인 왕이니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모압의 재앙이 가까이 왔으며, 그의 멸망이 급히 임하니, 그 이름으로 그를 아는 자들아, 그 가까이에 사는 자들아, 다 그를 위하여 애도하여 이르기를 모압이 말하였으되, 가엾다, 강한 막대기가 부러졌도다, 위엄의 지팡이가 그러하도다! 영광에서 내려와서 갈증 중에 앉으라, 디본의 거민아, 이는 모압의 파괴자가 네 성읍에 들어가서 네 견고한 성들을 파괴하였음이니, 길 곁에 서서 살펴보라, 아로엘의 거민아,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물어 이르기를 무슨 일이 되었느냐 말하라 모압이 수치와 놀라움을 당하였으니, 울며 크게 소리 지르라! 아르논에서 전하라 모압이 황폐하게 되었다 함을 재판이 평지에 임하였으니, 홀론, 얄짜, 므바앗에, 디본, 네보, 벧디블라다임에, 기랴다임, 벧가물, 벧메온에, 그리모든 모압 땅의 성읍들, 먼 것이나 가까운 성사도 다 그 기리웃과 보스라에, 그리하였느니라. 모압의 권세가 끊어졌으니, 그의 힘이 부서졌느니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모압을 취하게 하라, 이는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자랑하였음이라. 모압이 게워서 배설될 때까지 토하리니, 그도 조롱거리가 되리라. 이스라엘이 너에게 조롱거리가 아니었느냐? 그가 도적 중에서 잡힌 적이 있었느냐, 이는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고개를 흔들었음이라. 성읍들을 버리고 바위 틈에 거하라, 모압의 거민아! 구덩이 곁에 깃드는 비둘기 같이 되라.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으니, 그가 지극히 오만하여, 그의 거만과 교만, 그의 오만과 자기를 높이는 것을 들었도다. 내가 그의 거만함을 아노니,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안의 악행, 그가 행한 악행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며, 모압 전체를 위하여 부르짖으며, 기르헤레스의 백성을 위하여 탄식하리라. 야셀을 위한 울음보다 더 크게, 너를 위하여 우노라, 시브마의 포도나무여, 네 가지가 바다를 건너 바다에 이르러 야셀에까지 이르렀도다. 파괴자가 네 무화과와 포도 열매를 쳐서 엎었느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들에서 사라졌으며, 모압의 땅에서 사라졌고, 내가 포도즙 가운데에 끝을 내었으니, 아무도 외치며 포도를 밟지 아니하리니, 그 외침은 더 이상 외침이 아니니라. 헤스봇에서 엘랄레까지 부르짖는 소리가 있으며, 야하스까지 소리를 높이며, 소알에서부터 호로나임과 에글랏셀리샤야까지 이르렀도다. 님림의 물도 또한 황무지가 되리라. 모압 가운데에 내가 끝을 내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제단 위에 제사하며 그 신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끊으리라. 그러므로 내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운명하며, 내 마음이 기르헤레스의 백성을 위하여 피리 같이 운명하리니, 그러므로 그가 얻은 이익이 사라지리라, 이는 내 마음이 거기에 이를 것임이라. 모든 머리가 대머리 되고 모든 수염이 깎였으며, 모든 손에 상처가 있고 허리에 굵은 베를 띠었도다. 모압의 모든 지붕과 그 모든 거리에서 애통하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없도다, 이는 내가 모압을 아무도 탐내지 아니하는 그릇 같이 부수었음이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가 저를 어떤가! 슬퍼하며 부르지 자! 모압이 어찌하여 돌아서서 수치를 당하였느냐! 모압이 모든 그 이웃에게 조롱거리와 놀라움이 되리라.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오르며 모압을 향하여 날개를 펼치는도다! 기리웃이 점령되며 견고한 성들이 빼앗기리라. 그 날에 모압의 용사들의 마음이 해산하는 여자의 마음 같이 되리라. 모압이 나라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리니, 이는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스스로 자랑하였음이니라. 너 모압에 거하는 자여,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너를 향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리라, 함정에서 나오는 기리는 올무에 걸리리라.

예레미야 48:11–12 — "모압이 어려서부터 평안하였으니 그는 그 찌꺼기 위에 고요히 앉았으며 거기에서 그릇에서 그릇으로 옮겨진 적이 없으며 포로된 적이 없으므로 그의 맛이 변하지 아니하였고 그 향기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그를 기울게 할 사람을 그에게 보내리니 그들이 그 그릇들을 비우고 그 항아리들을 깨뜨리리라." 히브리어는 매우 인상적인 포도주 제조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흔들리지 않은 침전물은 고귀해 보이지만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술을 만듭니다. 영혼도 이와 같습니다. 고난의 부재가 가장 위험한 때일 수 있습니다.

Narration

문맥: 모압의 멸망과 여호와의 말씀

예레미야 48장은 '열방에 대한 신탁' 모음(46–51장)을 모압으로 시작한다. 모압은 룻의 후손으로 된 지파로서 여리고와 사해 맞은편 동쪽 고원에 거주했다. 이름이 거론된 성들 — 느보, 기랴다임, 헤스본, 마드몬, 호로나임, 루힛, 아로에르 — 한때 자랑스럽던 요새들의 행렬을 이루며 이제 애통하라는 소환을 받는다. 바벨론은 이름 없는 도구로 등장하고('약탈자가 모든 성에 이르리라'), 그 지리적 배경은 분명히 요단 강 동쪽, 모압 평원에 있다. 정치적 배경은 기원전 7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 첫 성전 시대의 황혼기다. 유다의 마지막 왕들은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레반트 전역을 재편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종속국이면서도 경쟁자였던 모압은 자신의 보물과 신 그모시가 자신을 보호해 주기를 희망했다. 예레미야 48장은 그 희망을 성읍 하나하나씩 해체하며, 11–12절의 포도주 제조자 이미지로 정점에 이른다: 흔들리지 않는 그릇은 가득 차고 향기롭게 보이지만, 그 안의 포도주는 찌꺼기로 두껍게 엉겨 있다. '고난과 위로' 주제는 이 장에서 날카로운 모서리와 함께 도래한다. 본문은 고통을 감상화하지 않는다. 모압의 재앙은 잘못 놓인 신뢰의 결과로 제시된다 — 처음에는 '재물과 보화'에, 다음에는 그모시에, 그 다음에는 '우리는 용사요 전쟁에 담력 있는 자들이라'는 자랑에. 이 장에서 고난은 자의적이지 않다. 사랑만으로는 영혼을 깨우기에 충분하지 않을 때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자비로운 폭력이다. 위로는 차례로 '그의 가까이 사는 모든 자, 그를 이름으로 아는 너희 모두'(17절)에게 제공된다 — 한 나라의 몰락조차도 가까이에서 애통하는 자들의 연민을 위한 통로가 된다. 이 장은 이렇게 복음의 패턴을 예고한다: 하나님은 치유하기 위해 상처를 입히시며, 호로나임에서 올라오는 비통의 외침이 예레미야 48:47에 암시된 미래의 회복을 위한 서곡이 된다.

현장에서: 모압 고지와 포도주 제조자의 형상

첫 솔래이 절단을 가로지르는 위협적인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추방과 격변의 시대를 안고 모압 평원에서 비추어진 묵상이 펼쳐집니다.

의미: 은혜의 도구로서의 고난

예레미야 48장에는 '고난과 위로'에 대한 그리스도인적 독해를 형성하는 세 가지 신학적 흐름이 흐르고 있다. 1. 고난은 잘못 놓은 신뢰를 드러낸다. 모압의 첫 번째 죄는 7절에 분명히 드러난다. "네 재물과 네 보물에 의지하므로 너도 사로잡히리라." 칼이 오기 전에 마음이 이미 자신의 신을 택함하였으니, 그 신은 언제나 무한자의 자리에 놓인 유한한 것에 불과하다. 고난은 그 거짓을 벗겨낸다. 보물이 비워질 때, 우리는 참으로 사로잡히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과연 알았는지 발견하게 된다. 2. 고난은 하나님의 손에서 나올 때 교정적 성격을 지닌다. 신학적 위로는 징벌적 고난과 정련의 고난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리지 않음을 요구한다. 예레미야는 모압의 재앙을 언약적 어휘 안에서 제시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그 이름이 왕이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나님은 단순히 약탈자를 허용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다'(12절), 마치 포도주를 따르는 일꾼을 보내시는 항아리主人的樣 하신다. 깨어진 항아리와 비워진 그릇은 잔혹함이 아니라, 그대로 남겨두면 마실 수 없는 것으로 굳어버릴 찌꺼기의 고통스러운 방류이다. 히브리서 12:6이 이것을 메아리한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disciplining하시느니라." 징계는 위의의 반대이 아니라 위의의 숨겨진 형태이다. 3. 위로는 택함이 아니라 명령이다. 17절은 놀랍다. "그를 위로하라, 그 근방에 사는 모든 자들이여, 그 이름으로 그를 아는 모든 자들이여!" 심판을 선포하시면서도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으신다. 이 장에서 위로는 먼저 감정이 아니라 소명이다. 고통받는 자를 '이름으로 알'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호로나임에서의 부르짖음을 우리 자신의 애통으로 들어갈 의무를 지게 한다. 신약은 이것을 급진화한다.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위로는 포도주가 따라지는 세상에 대한 교회의 첫 번째 사역이다. 종합하면, 이 장은 신자 안에서의 고난이 하나님의 따름(dé­can­ta­tion)으로서 기능함을 가르준다. 고통스럽고, 심지어 산산이 부수지만, 순종과 신뢰의 맑은 포도주를 방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위로는 항아리를 깨뜨리신 바로 그 손이 언젠가 새 항아리를 채우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인 "말일에 내가 모압의 사로를 돌이키리라"는 단순한 주석이 아니라 인봉이다. 하나님의 징계의 사역은 언제나 회복을 향해 굽이친다.

적용: 우리의 안주함을 분별하며, 우리의 위안을 받기

예레미야 48장은 안주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말합니다. 따라서 가장 구체적인 적용은 자기 검토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모압처럼 '끝이까지 사로 잡히지 않은' 곳, 즉 편한 그릇에서 한 번도 쫓겨나지 않은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가 뒤에 숨는 그것은 재물일 수 있고, 명예일 수 있고, 교리적 확신일 수 있으며, 혹은 단순히 값 싼 순종이 부재한 것일 수 있습니다. 찌꺼기에 고인 채로, 우리는 그것의 침전물을 진짜 내용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실천은 정직한 고백입니다. 고인 그릇들을 주님 앞에 가져가며 물으십시오. 나 안에서 그릇에서 그릇으로 따라진 적이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상실, 어떤 떠남의 초대, 어떤 값 비싼 이웃, 어떤 불편한 소명이 내가 찌꺼기가 집처럼 느껴졌기에 피했던 것이 있습니까? 이름 붙이는 일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일입니다. 곧 일어날 그곳을 말하며, 거짓 신뢰를 말하며, 다가올 비움을 말합니다. 두 번째 실천은 불편함을 선물로 삼기는 것입니다. 따라 붓는 자가 올 때, 즉 진단이든, 배신이든, 소명을 건너는 일이든, 전염병이든, 다른 종류의 추방이든, 그것을 단지 적의 행위로만 해석하기를 거부하십시오. 옛 성도들과 함께 물으십시오. 주님이 이 사람을 '나를 따라 붓는 자'로 보내신 것은 아닌지. 고통은 마지막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흔히 필요한 중간 말이 됩니다. 예레미야 48장의 깨진 그릇들은 48장 47절의 '행운이 회복되리라'는 약속을 위한 길을 예비합니다. 세 번째 실천은 17절의 사역을 이루는 것입니다. 당신의 세상에서 모압 사람을 찾으십시오. 우상들이 무너졌고, 그들만의 사당이 이미 사로 잡혀 간 그러한 자들을 말입니다. 멀리서 비웃으며 서 있지 마십시오. '그 이름을 아는 자는 다 그와 함께 슬퍼하라.' 당신이 먼저 받은 위로를 가져오십시오. 당신의 집을 여십시오. 곁에서 함께 걸어가십시오. 터전이 금 간 자들을 경멸하고 싶은 유혹이 있는 교회와 문화 속에서, 예레미야 48장은 위로는 선택적 친절이 아니라 순종이라고 단언합니다. 마지막으로, 두 약속을 함께 붙잡으십시오. 따라 붓는 자가 온다는 것과, 행운이 회복될 것이라는 것을. 이제 그 긴장 가운데로 살아가십시오. 비우시는 하나님은 또한 다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릇들을 깨뜨리시는 하나님은 오히려 새 포도주를 따라 부으실 분이십니다. 이 두 가지 진리, 곧 징벌로서의 고난과 약속으로서의 위로는 어떤 계절을 통해서도 그리스도인이 숨 쉬는 안정된 공기입니다.

되새김

만군의 주여, 제가 스스로의 찌꺼기 위에 가라앉아 있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편안의 성벽을 높이 쌓고 그것을 평화라 부르었습니다. 제가 언제나 입 밖에 내지 않는 이름들의 보물을 신뢰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의 긍휼의 잔을 보내주소서 — 진노가 아니라 사랑으로 — 제가 흔들림 없이 일상에 취한 그릇의 가짓된 향기가 당신을 위해 쏟아진 영혼의 깨끗한 향기로 양보되게 하옵소서. 이웃들을 위하여 — 헤스본이 갓 무너지고 호로나임이 고통의 소리로 떠들썩한 그들을 위하여 — 제가 구경꾼으로 서지 않게 하옵소서. 제가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도록 가르치소서. 제 입이 애도의 어휘를 배우게 하소서. 제 손이 떡을 날리는 데 빠르고 제 존재가 침묵을 실어 나르게 하옵소서. 그리고 남겨두신 약속, 당신이 회복하시는 '말세'를 위하여 — 제가 그 미래를 이미 맛보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제 현재의 고난이 미래의 기쁨의 포도즙틀 되게 하옵소서. 깨진 모든 병이 당신이 여기 계셨다는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당신의 인내하시며 상한 손으로 저를 따르시어, 끝내 제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작은 규모로나마 반영하게 하옵소서. 아멘.

자주 묻는 질문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모압에게 이토록 엄중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엄격함은 잔혹함이 아니라 신실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듯 모압에게도 말씀하신다. 거짓 의지에서 참하신 구원자로부터 백성을 불러내시는 것이다. 강한 말씀 이면에는 존중이 있다 — 하나님은 흐트러지지 않은 침전물을 건전한 것으로 여기시지 않으신다.

"항상 그릇에서 그릇으로 부어 옮기지 않는다"는 것은 복인지 저주인가?

꿈들지 않는 자가 없으면 역설적 축복이 저주가 된다. 시련을 동반하지 않는 영적 안락은 침전되어 굳어버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따라 쏟아붓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니, 그리하여 그 향기가 새롭게 피어오르게 하신다.

고난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위로가 어디에 있습니까?

위로에는 두 개의 레일이 있다: 예레미야 48장 47절의 미래적 약속('말세에'), 그리고 함께 슬퍼하라고 가까운 자들을 부르는 17절의 현재적 호소이다.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버려두시지 않으신다; 상처 곁에서 철야하도록 공동체를 부르신다.

기독교인이 안락함 속에서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는가?

규칙적으로 자신을 살피십시오. 나의 찌꺼기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바닥에 굳어져 있습니까? 한 번도 깨지지 않은 그릇들을 주님께서 깨뜨려 주시도록 구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따라 쏟아지고 있는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을 품어 안으십시오. 영적 각성은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됨입니다 — 하나님께서 쏟아 부으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그리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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